“한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유기적 생명체 와도 같다.”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아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몸집을 키워나가기도 하고, 일시적으로 정체되기도 하며, 때로는 자연스럽게 소멸하기도 한다.
대전에는 소멸을 앞두고 있다가 기적처럼 되살아 난 한 작은 마을이 있다. 우리는 그 속에 존재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곳을 이루는 사람들에 관한 글을 써 보기로 했다.
대전의 역사는 1905년 경부선 철도의 개통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대전에서 ‘철도’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그중에서도 대전역 뒤 편 철도관사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었던 ‘소제동’은 대전의 정체성이 집약적으로 담겨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조금 더 특별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소제동’은 꽤 오랜 기간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홀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왔다. 오래된 관사 촌 건물의 형태만 남아있는 회색 빛 마을에 지나지 않았던 소제동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아 빈집과 폐허가 즐비한 채로 매일 그저 낡아 갈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소제동의 모습은 암울했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거리에 즐비하던 회색 빛의 관사 촌 건물들은 다양한 컨셉의 카페와 식당들로 채워졌고, 사람들은 이 이색적인 공간에 주목했다. 낙후되고 열악하여 발길이 끊겼던 관사 마을의 건물들이 하나의 콘텐츠로서 사람들에게 소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색적인 공간은 더 많은 사람들을 소제동으로 불러 모았고, 한 데 모인 사람들은 더 이상적인 공간들을 추구해 갔다. 로컬키트는 바로 이 선순환의 굴레에 주목했고, 각자의 위치에서 소제동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해 보았다.
소제동을 채우는 사람들, 관사마을
다양한 컨셉과 취지로 소제동의 공간들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소제동을 기반으로 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한 다양한 요식업 및 문화 사업을 진행해 온 부동산개발 회사 ‘관사마을’을 찾아갔다. 그들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소제동의 오프라인 공간들을 운영해오고 있을까? 그들이 채워 나갈 소제동의 모습에 대해 들어 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관사마을이 어떤 기업인지 소개 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광역시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다가 2년 전에 관사마을 주식회사 대표로 오게 된 정태일입니다. 관사마을은 2018년 10월에 설립되어서 올해로 설립된 지는 5년째 되었고요, 대전의 정체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소제동의 철도 관사 마을을 중심으로 하여 문화 예술을 증진하려는 목적으로 지역 활성화 차원에서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소제동은 어떤 동네인가요?
소제동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우선 대전의 역사부터 알아야 해요. 대전이라고 하는 도시는 현재 145만 명이 사는 광역시지만, 19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하천 3개가 흘러가고 주변은 전부 다 농경지만 있던 곳이었어요. 그런데 1905년 경부선 철도가 놓이는 과정에서 대전역이 들어서게 되면서 대전이 혁신적인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어요. 당시에 철도 관련 종사자들이 거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되는데 그곳이 여기 소제동 철도 관사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 100년의 근대 역사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라고도 볼 수 있죠.
관사마을에서 직접 기획하셨던 ‘소제동 아트벨트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지역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목표로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철도관사를 복원하여 ‘소제동 아트벨트’라는 이름의 복합문화예술타운으로 새롭게 재 탄생시킨 프로젝트입니다. 쉽게 말해서, 소제동을 아카이빙 하는 공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소제동을 다녀가는 이들에게는 대전의 역사와 미래가치를 느끼는 공간이자 대전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행복의 장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수도권과의 문화적 격차 해소를 목표로 대전 지역의 문화 발전을 위한 전시,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아요. 저희는 사람과 예술 사이의 적극적인 소통을 추구합니다.
소제동에서 공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관사마을’만의 철학이 있나요?
가급적이면 뭐든지 살리려고 노력해요. 나무가 있으면 나무도 다 살리려고 노력하는 거고, 공간이 있으면 그 공간도 그대로 최대한 살려서. 그래야 주변과 잘 어우러지고 소통이 잘돼요. 주변의 골목길, 그리고 하천과 어떻게 소통해서 연계시키느냐, 그게 핵심이에요.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되, 그걸 현대적인 의미로 재해석하는 과정이죠 사실.
소제동에서 공간을 운영하고 계신 입장으로서 앞으로 소제동에 더 바라는 점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현재로서는 소제동에 음식점 및 카페들이 대부분인데 여기에 문화와 예술 및 체험 공간들이 더해지면 좋겠어요. 새롭고 다양한 공간적 시도들이 이루어져 문화와 예술, 음식과 볼거리의 집합체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소제동이 쇼핑 또는 체험, 혹은 휴식 등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공간으로 변화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매거진 구독자들에게 소제동의 매력을 한 문장으로 어필한다면?
맛과 멋과 여유로움이 있는 공간이요. 와보면 아실 거예요.
소제동을 살리는 사람들, 글로우 서울
소제동의 잠재력을 일찍이 발견하고 마을 살리기에 앞장섰던 민간 도시 재생 기업이 있다. 바로 용산구 이태원에 본사를 두고 있는 ‘글로우서울’이다. ‘글로우서울’은 어떤 점에 이끌려 소제동을 찾게 됐고, 어떤 지점에서 재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을까? 용감하게 개척자의 길을 자처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반갑습니다. 저는 공간솔루션 기업 ‘글로우서울’의 대표이자 메인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유정수라고 합니다.
소제동 초기 재생 사업에 뛰어든 민간 기업으로 ‘글로우서울’이 많이 언급이 되는데, 소제동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저희는 재생 사업 부지를 선정할 때, 우선적으로 부동산 가격에서 심각한 비대칭이 발생한 지역들을 찾아요. 대전이 사실 딱 그랬죠. 주변의 발전된 시가지들에 비해서 대전역 인근의 소제동이 특히 지대가 저렴하고, 그만큼 낙후되어 있었어요.
그럼 낙후된 소제동을 처음 직접 목격했을 때의 감정은 어떠셨나요?
전 사실 너무 좋았어요. 100년 넘게 보존된 가옥들을 서울에서 실제로 볼 기회가 없으니까. 그런 낡은 집들을 보면 되게 창작 욕구 같은 게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낙후된 도심을 재생한다는 게 말로만 들어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낡은 건물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재생을 해야 하다 보니까 건물의 복원 작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느꼈어요. 소제동에 있는 ‘치앙마이 방콕’이라는 매장의 경우가 특히 그랬는데, 오래된 곡물 창고로 사용되는 건물의 낡은 벽체를 그대로 사용하고 싶어서 원형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애를 많이 먹었죠.
그럼 분명 재생 과정에서 아쉬운 점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가장 크게 남는 아쉬움은 무엇인가요?
소제동을 상업적인 공간으로서는 성공시켰지만, 주거 공간 및 문화적 공간들이 더해져 사람들이 정주하는 공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까지는 해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글로우서울의 공간들을 보면 모두 테마가 독특하고 뚜렷하다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소제동 공간 브랜딩 과정에서는 어떤 테마를 고려하셨는지 궁금해요.
한 테마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테마였어요. 여러 사람들이 즐겁게 쉬다 갈 수 있는 곳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들이 녹아 있는 다채로운 공간들을 만들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철도가 있다고 해서 모든 공간에 철도와 관련된 콘텐츠들만 넣게 되면 오히려 식상해질 수 있잖아요. 다채로운 콘텐츠를 위해 그만큼 다채로운 매력들을 발견하면 되는 거죠.
글로우서울은 사실 공간솔루션 기업이지만 이 공간들이 모여서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이 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도시 재생에 관한 대표님 만의 견해가 있다면 자유롭게 말해주세요.
도시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곳과는 차별화되는 지역만의 로컬 컨텐츠를 잘 드러내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까 싶어요. 소제동은 관사 촌의 ‘근대 건축물’들이 그 역할을 했고, 저희의 이전 프로젝트였던 창신동에서는 ‘절벽마을’이라는 이색적인 마을의 특징이 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보통 단순히 낡기만 한 건물들, 혹은 이야기나 소재 거리가 없는 동네는 재생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추가적으로 성공적인 도시재생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의 영역만으로도 자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의 예산에 의존하여 움직이는 도시 재생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고, 금방 다시 무너지게 되죠. 자립하여 지속할 수 있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화 체계를 형성 해야만 기반이 탄탄한 도시 재생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대표님이 추구하시는 도시 혹은 공간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일단 "아파트가 아니어도 사람들은 살 수 있다." 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 사람들도 아파트만 남아있는 도시를 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주택형 집을 지으나 수십 층 높이의 아파트를 지으나 용적률 때문에 사실 토지의 효율은 비슷하거든요.
대부분 ‘핫플’로 조명되는 강북의 지역들도 오래된 주택 단지 속에 존재하는 좁은 골목길들이 여전히 살아있고, 그 곳에서 피어나는 문화와 예술 컨텐츠들이 있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거거든요. 그 ‘길’이라는 개념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아파트 단지의 무자비한 확산을 막아야 하겠죠.
하지만 요즘 추세는 지방 조차도 아파트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점이 아쉬워요. 저는 사람들이 마당과 자연, 그리고 ‘길’이 주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소제동을 누리는 사람들, 시민
마을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곳을 매일 살아가고, 경험하는 시민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소제동에서 열린 ‘대전동구동락축제’에 찾아가 각종 부스 운영자들 및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 수많은 굴곡들을 거쳐온 오늘 날의 소제동을 누리고, 맛보고, 체험하는 이곳 시민들에게 ‘소제동’이라는 마을은 어떤 공간일까?
소제동(대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어디인가요?
소제동(대전)에 꼭 생겼으면 하는 공간은 무엇인가요?
나에게 소제동(대전)이란?
되살아난 마을, 소제동에는 그들이 존재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소제동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제동이라는 마을을 이루는 데에 있어서 관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달랐지만 확실한 건 그들 모두에게 ‘소제동’을 아끼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제동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이 마을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지방 소멸 문제 및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요즘, 쇠퇴하던 소제동 마을의 눈부신 재생 사례에서 발견한 지속 가능한 도시의 가능성은 다른 소멸 위기 도시에도 긍정적 사례가 될 것이다. 도시의 삶과 죽음은 어쩌면 그곳을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로컬키트’는 곳곳에 존재하는 이러한 삶의 기로에 주목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도시의 생동감을 글로 전한다.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글·사진: <local.kit in 충청> 문화팀 김상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