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길담서원'
“어느 순간 지저분하고 땀에 젖은 옷이 자랑스러워졌어요."
1. 책방과 책방지기
안녕하세요, 책방지기님!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길담서원은 서울 서촌에서 12년 동안 '스터디 민주주의를 실험'하다가 공주에서 다시 문을 열게 된 책방이에요. 책을 읽고 공부모임을 하고 글을 쓰면서 삶의 전환을 생각하고 있을 때, 일 때문에 우연히 방문한 공주시 원도심이 마음에 들었어요. 현실적인 문제로는 급등하는 월세 때문에 고민이 깊었는데 서울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책방을 유지하며 현재를 사는 것 이상을 상상하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공주로 옮겨와 우리의 활동을 이어가면서 책방으로 뿌리를 내릴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어요.
‘길담서원’은 무슨 뜻인가요?
'길담서원'에서 '길'은 지속적인 움직임을 의미하고, '담'은 잠시 기대어 있을 수 있는 쉼을 의미해요. 길과 담은 곧 해와 달, 음과 양, 들숨과 날숨의 관계죠. 또, '서원'이라는 말에는 한 권의 책을 오랫동안 반복해서 읽는 것, 앎이 행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것, 소수의 인원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공부하는 것과 같은 조선시대 서원의 교육 방식을 현대사회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어요.
길담서원만의 북 큐레이션 방법이 있나요?
자서전적인 도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자서전이나 평전 같은 것들을 읽어보면, 이 사람들은 누구를 지배하지도 않았고 누구의 지배를 받지도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길담서원에 오시는 분들이 자서전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본인의 내부를 살피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요.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요.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과거의 한가로운 시간이 사라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할 기회도 없어졌어요. 쉬는 것을 게으른 것으로 몰아가면서 여유를 부리는 것을 터부시 하고, 유한계급이 자신들의 한가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사상을 다른 계급에게 계속 주입했다고 해요.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현재의 삶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고, 제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어요.
2. 나만의 리듬으로 나만의 춤을 추는 삶
서울에서 12년 동안이나 책방을 운영하다가 공주로 내려온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저는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난 후 그것을 떠나야 할 때에는 미련이 남아서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데, 그렇게 큰 결정을 내리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해요.
해보고 싶었던 새로운 실험들을 다 해보았기 때문에 딱히 미련이 남지는 않았어요. 요즘 많은 책방에서 북토크나 강연이 열리는데 사실 책방에서 전시, 음악회, 작가와의 만남, 원서 강독 등을 진행하는 건 저희가 먼저 시도했던 것들이에요. 먼저 통인동에서 6년 동안은 강연 중심으로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옥인동으로 이사해서 6년 동안은 듣는 것에서 더 나아가 직접 읽고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도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세나 내고 살지, 대지에 발을 단단하게 딛고 주도적인 삶을 살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고 느낀 뒤로는 쭉 나만의 리듬으로 살 수 있는 곳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에 미련 없이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공주의 길담서원에서도 실험해 보고 싶으신 것이 있나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자서전이나 평전을 읽으며 삶의 변화를 모색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2박 3일이든, 일주일이든, 함께 지내면서 같은 책을 같은 장소에서 읽는 방식의 독서 모임이죠. 우리밀로 빵을 구우려면 보통 1박 2일이 걸리는데 이 시간 동안 책을 읽고 토론하고, 산책하고 와서 구워진 빵을 먹고, 또 산책하러 나가고. 이런 식으로 천천히요.
오래된 집을 고쳐서 직접 만드신 책방이라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어요!
우리가 삶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내 삶의 근간이 흔들렸을 때 내가 먹고살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즉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없다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몸을 쓰면서 사는 삶을 살아보려고 했어요.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시간 아깝게 공부하고 글 쓰고 강의하면서 살지 왜 그러느냐고 걱정해 주시기도 하셨는데, 저는 더러워졌던 게 깨끗해지고 안 되던 게 돌아가면서 무언가가 하나씩 변화되는 그 과정이 1년간 집수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전기 공사하고 배관 공사만 빼고 다 우리가 했어요. 원래 수리하는데 1억 가까이 견적이 나왔었는데 둘이 직접 해서 천만 원도 안 들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사실 이런 일을 하면 옷이 되게 더러워져요. 그래서 처음에는 항상 옷을 갈아입고 나갔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 지저분하고 땀에 젖은 옷이 자랑스러워졌어요. 옆집도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공사하시던 분이 찢어진 옷에 테이프를 탁 붙였더라고요. 그게 너무 멋있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테이프를 붙인 작업복을 입고서 카페에도 가고, 식당에도 가고 그랬어요. ‘이제 나는 소비자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삶 속에 있구나’하고 신이 났죠.
어떻게 하면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나다운 삶으로 살 수 있을까요?
사실은 사람마다 다 자기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지고 태어나잖아요. 그런데 그 고유성을 드러내면서 사는 삶의 방식을 학교 교육에서 가르쳐 주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 똑같이 사는 방법만을 꿈꾸고 줄 서기만 하는 거죠. 자기만의 고유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개발해서 그 분야에서 다층적으로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길러주는 게 학교 교육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저도 이만큼이나 나이가 들어서야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저는 이게 책으로부터 온 거예요. 좋은 책을 좋은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오랫동안 반복해서 읽었던 힘이 나다운 삶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아요.
3. 공주, 그리고 길담서원
길담서원은 왜 이곳에 자리 잡게 되었나요?
서울에서 책과 함께하는 다양한 실험들을 했었잖아요. 전시를 앞두고 어떤 작품을 전시할지 의논하기 위해서 작품을 보러 공주에 처음으로 와봤어요. 신관 터미널에 내리니까, 공주대 미대 교수이시면서 화가이신 분이 저희를 픽업하더니 원도심으로 와서 제민천을 따라 쭉 이야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우금치까지 올라가고, 그다음에는 공산성, 황새바위성지, 무령왕릉 이렇게 쭉 설명을 해주시는데 반해버린 거예요. 그런데 또 그분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와서 이곳에서 책방 같은 공간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셨어요. 맞아떨어진 거죠.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이곳을 마음에 두게 된 것이 아닐까요?
길담서원의 책방지기로서 꼭 이루고 싶으신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뽀스띠노'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어요. 뽀스띠노는 우편배달부를 뜻하는 말이에요. 우편배달부는 창작자도 아니고, 기획자도 아니고, 메신저잖아요. 서울에 있을 때 제가 하는 일은 그런 사람이었죠. 기획자로서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하고, 메신저로서 화가나 강연자들을 모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역할을 했어요. 공주의 길담서원에서는 메신저보다 창작자로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 창작자로 사는 삶 이전에 나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능력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웃이 내 삶의 방식을 인정해 주는 관계가 형성되어야겠죠. 인간은 타자 없이는 살 수 없고, 모든 존재는 관계 맺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그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몫인 것 같아요.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차근차근 해나갈 뿐이지요. 그 과정을 통해서 몸과 정신의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며 백 년 이상 가는 책방의 토대를 '즐겁게' 놓고 싶어요.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으니까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길담서원’에게 ‘공주’란 무엇인가요?
공주는 백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인 가치가 잘 유지되고 있는 곳이에요. 많은 도시가 역사적인 고유성을 잃어가고 있는데 공주는 아직까지 지역의 고유성을 간직하고 있어요.
공주는 고층건물이 없는 넓게 펼쳐진 하늘, 그 하늘 아래 고대시대 유적부터 근대 유적까지 일상생활공간에 녹아들어 있는 보기 드문 도시예요. 가까이에 논밭이 있어 허리 굽혀 농사짓는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 유적과 삶이 유리되지 않고 얼크러져있는 느낌이에요. 게다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이 불가능한 골목과 골목이 다양하게 이어지는 도시지요. 이런 도시에서 우리도 우리만의 작은 무늬를 하나 만들고 있어요.
글·사진: <local.kit in 충청> 문화팀 김현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