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上野)의 번잡한 골목을 조금만 벗어나면 유시마(湯島)라는 동네가 나온다. 유시마에 아주 유명한 진자가 있다. '진자(神社)'라는 곳은 정치적이고 부정적인 곳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야스쿠니진자(靖國神社) 때문이다. 전범들 위패 모셔 놓고 제사지내는 곳이니까. '진자'라는 곳은 별의 별 신을 다 모시는 다양한 개인 종교의 공간이다.
고마진자(高麗神社, 高句麗神社)라는 곳은 이름 그대로 일본으로 건너 온 '고구려' 출신의 왕족을 기리는 진자다. 이 진자는 출세하려면 꼭 가봐야 하는 진자로 유명하다. 출세나 입신양명 방면에 전문성을 갖춘 진자라는 거다. 일본 진자는 다양한 장르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 예를 들어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은 연습생에게 효험이 있는 진자가 있기도 하다. 자기를 괴롭히는 상사에게 복수하는데 효험을 가진 진자도 있단다.
이렇듯 진자는 다양한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다. 여튼 오늘은 식당 얘기니 진자 얘기는 다음에 한 번 더 하기로 하고.
공부 잘 하게 만들어 준다는 진자근처 닭요리집
유시마텐진(湯島天神)이라는 진자(神社)인데 학문의 신을 모신단다. 좋게 말해 학문의 신이지, 내 새끼 좋은 대학 보내주십사 빌러 오는 곳이다. 한국보다 더 노골적인 학벌사회 일본에서 이런 진자는 각광 받을 수밖에 없다. 도쿄 시내 중심에 이런 진자가 있으니 인기 없기가 더 힘들다.
커다란 간판 때문에 찾기가 쉽다
유시마텐진 정문에서 똑바로 100미터 정도만 걷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야한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오야코동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식당이 나온다. 100년 이상 됐다는데 일단 외관은 나름 현대적이다. 원형 그대로 있는 집은 아닌듯하다.
닭요리 하나로 100년 이상, 저녁에 다양한 구이들 맛볼 수 있어
늦은 점심 시간, 한 무리의 손님들이 떠나고 홀 안은 텅 비었다.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노포라는 흔적은 여기저기 보인다.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줌마가 혼자 서빙을 하고 있다. 주문을 하는 다소 어눌한 말투 때문인지 내 얼굴을 잠시 쳐다본다. 그러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정갈한 행주로 느릿하게 세월을 훔치듯 테이블을 닦는다.
서빙하는 아줌마는 약간 퉁명스럽게 오야코동 가격만 알려준다. 딴 걸 시킬 생각은 하지 말라는 신호다. 대부분 그걸 시키는 모양이다. 100년 동안 한 길로만 달려왔다는 닭고기 전문점의 점심 메뉴는 단 2가지다. 오야코동과 오야코동 세트다. 점심의 유이한 메뉴 중 다른 하나인 오야코동 ‘세트’를 시켰다. 일본에서 뭘 먹을 때 웬만하면 '세트'를 시키는 게 낫다. 손톱의 때만큼이라도 이득이 된다.저녁 메뉴도 보니까 전부 닭(鳥) 요리다. 당연히 닭꼬치가 주종인데 똥집, 가슴살, 날개 등 부위별로 다양한 구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 것만 파겠다는 거다.
반숙이 아닌 3분의1숙 계란이 얹혀진 오야코동과 통통하지는 않은 닭날개 튀김
콧물 같은 비주얼의, 비린내를 잔뜩 머금은, 내 취향은 아닌 오야코동
3분쯤 지났을까, 구수한 닭냄새를 머금은 오야코동(親子井)이 먹음직스럽게 등장한다. '오야코동'에서 오야코(親子)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뜻이다. 동(井)은 덮밥을 뜻하는 '돈부리'의 줄임말이다. 그러니까 '애비인 닭과 자식인 계란을 함께 얹은 덮밥' 정도로 해석하면 되겠다. 세트에는 비쩍 마른 닭날개 튀김이 추가되고 닭고기를 연필 깎듯이 얇게 저며 내 올린 사라다(샐러드)가 같이 나온다. 닭국물은 예상대로 심심한데 뒤에 뭔가 특별한 향이 감돈다. 이게 매력있다. 시치미(七味)를 조금 뿌려 봤다. 풍미가 살아났다. 살코기라고는 별로 없어 보이는 비쩍 마른 닭날개 튀김은 의외로 담백하고 맛있다.
그런데 정작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인 오야코동은 내 입맛에는 별로 였다. 계란을 반숙도 아니고 거의 불만 살짝 스친 상태에서 밥 위에 올려준다. 고체라기보다는 액체에 가깝다. 그 콧물 같은 느낌은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식감도 식감이지만 감당하기 쉽지 않은 닭 비린내도 함께 올라온다. 일본 사람들은 반숙도 아닌 ‘들’숙에 가까운 상태의 이런 계란을 잘도 먹는다. 하기야 닭고기를 날로도 잘 먹는 사람들이니 이 정도 비린내야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실제로 '토리사시미'라고 해서 닭을 생으로 해서 먹고 가끔 식당에서도 메뉴로 보인다.
닭 하나로 백년. 여기에도 장인 정신이 있네
‘토리츠네(鳥つね)’는 ‘언제나 닭, 항상 닭, 늘 닭’ 이런 뜻이다. 닭 하나로 100년을 버텨온 집다운 고집이 이름에서도 보인다. 장인 정신이 여기에도 있네 싶다. 일부러 찾아서 갈 집은 아니지만 공부 못 하는 자식이 눈앞에 아른 거린다면 일본 여행 가서도 유시마텐진진자 가서 가볍게 한 번 들르길 바란다. 자식이 다시 생각나면 비릿한 오야코동 한 그릇 하는 것도 좋으리라. 맛은 모르겠지만 이 집 닭 요리를 먹으면 살은 안찌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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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3-42-2 Yushima(유시마), Bunkyo City(분쿄구), Tokyo 우편번호 113-0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