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에 갈 때면 늘 습관처럼 차이나타운에 들른다. 100년 이상된 중국집이 지천에 늘린 곳이 요코하마다. 어느 나라에 가든 중국 요리는 가성비다. 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볼록해진 배를 잠시 진정시키려면 걸어야한다. 운하를 따라 걷는 바닷길도 좋지만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 쪽으로 가는 것도 좋겠다. 그러려면 모토마치(元町)로 가야한다. 모토마치는 강남역 같기도 하고 가로수길 같기도 한 번화가다. 명품숍도 있고 엣지있는 가게도 있고 거리 공연도 펼쳐지는 묘한 거리다.
오래된 서양식 고건축물들이 즐비한 '야마테' 거리는 요코하마에서 만나는 유럽이다
야마테에서 다시 모토마치로 내려 가다가 만난 우치키빵
모토마치를 지나쳐 언덕으로 올라가면 멋진 서양식 고건축물들이 유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야마테(山手)가 나타난다. 오래된 서양 집 구경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요코하마 가면 꼭 한 번 찾아가볼만한 곳이 이 곳 야마테다.
야마테에서 근사한 서양 주택을 감상하고 바다를 바라보다가 다시 모토마치로 내려간다. 하얀 4층짜리 건물의 1층 상가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 곳이 바로 일본 최초의 빵집이자 식빵(욕 아님)의 원조로 불리는 우치키(ウチキ) 빵집이 있다.
하얀 건물의 우치기빵. 가장 오래된, 가장 맛있는 빵집
지금도 줄 서서 먹는 '사실상' 일본 빵집의 원조
일본에서 현존하는 빵집 중 가장 오래된 곳은 도쿄 긴자에 있는 기무라야(木村屋)다. 1869년부터 영업을 시작했으니 150년이 넘은 노포다. 우치키빵집은 원래 1866년에 영국인이 요코하마베이커리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1888년에 수습으로 일하던 우치키 씨가 가게를 물려받아 새롭게 창업한 것이 우치키빵집이다. 사실상 현존하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빵집인 것이다.
정말 놀라운 건 창업 때부터 큰 변화 없이 레시피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인으로부터 시작된 빵집이다 보니 ‘잉글랜드’라는 이름의 빵이 오랫동안 이 가게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잉글랜드’는 창업 당시부터 줄곧 같은 제조법으로, 직접 재배한 호프종을 사용하여 공장에서 만들고 있다. 150년이 지났는데도 한결 같은 맛을 유지하고 늘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SIINCE 1888'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150년 빵집의 3가지 비결
처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 빵집이 특별하다거나 대단하게 느껴지는 점은 없다. 그냥 외관은 평범했다. 빵을 선택하고 바로 계산하면 된다. 그런데 확실히 프로세스가 간결하고 빠르다. 작은 가게에 비해 직원이 많았는데도 분업이 상당히 잘 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적은 시간에 가장 많을 빵을 팔 수 있는 시스템이다.
지금도 인기가 있는 비결의 핵심은 ‘품질 관리’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초창기 레시피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균질하고 예측 가능한 맛을 제공한다. 요식업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해진 양만 팔기 때문에 재고가 거의 없다. 늦게 가면 원하는 빵을 먹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오전 일찍 온기가 가라앉지 않은 우키치빵을 가장 먼저 먹는 것은 축복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우치기빵을 먹으려고 줄을 선다
무심한 듯 남다른 디자인 감각
한 가지 더 특별한 점을 꼽자면, ‘디자인’ 개념에 눈을 떴다는 점이다. 우키치 빵집에 들르면 대단한 인테리어나 눈에 띄는 장식도 없는데 무슨 얘기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체코 미술가 알폰소 무하의 그림처럼 보이는 여인 디자인이 들어간 빵 봉지와 에코백 등이 묘하게 매력 있다. 첫 눈에 봐도 최근 디자인은 아닌 듯 약간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움이 느껴진다. 다른 식빵 봉지에 새겨진 그림 등도 운치가 있다.
촌스럽지만 정겹다
서울의 <태극당>이라는 오래된 빵집이 생각났다. 옛날 디자인 그대로의 포장지를 쓰는데 그게 무척 정겹다. 빵 봉지에서 옛날 디자인을 발견하고 푸근함을 느끼다니. 옛 것이 주는 따뜻함으로 잠시 가던 길 멈추고 지난날을 회상하게 만든다. 그게 오래된 것의 힘이다. 만약 요코하마에 가게 되면 우키치 빵집을 꼭 들러야 한다. 그것도 오전 일찍. 빵이 다 팔려서 헛걸음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