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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사 Mar 12. 2024

답답하고 힘겨울 때 이유를 찾는 방법

마음은 답을 알고 있다



스물넷에 시작된 불면증이 제법 심각했다. 새벽 2시에 자려고 누우면 6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7시가 되어 겨우 잠들고 오후 1시에나 일어났다. 밤이 되면 도돌이표였다. 아무리 자려고 애써도 소용없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여러 생각들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창밖으로 여명이 들어왔다. 복도식 아파트 바깥으로 새벽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컸다.

하루는 이렇게 또 시작되는데 나만 어제를 붙잡고 누워있는 듯했다. 슬퍼졌다. 가끔 울었다. 베개 한쪽이 젖어들면 다른 쪽으로 돌아 누웠다. 어쩌면 이렇게 한심할까 싶었다. 수면싸이클이 엉망이라 자고 일어나도 하루가 내 맘 같지 않았다. 이미 늦게 시작한 하루에 뭘 채워 넣어도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그럼 헐겁게 보낸 하루를 후회하고 비난하느라 또 잠이 오지 않았다. 분명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답답하고 힘겨운데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어쩌다 불면증이 생겨 이 지경이 됐는지 기억도 잘 안 났다. 나도 내 마음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좀처럼 잠을 못 드는 날들이 반년쯤 지났다. 나는 그날도 늦게까지 뒤척였다. 매일 밤마다 뜬눈으로 지새워서인지 불 꺼진 방안이 훤히 다 읽혔다. 형광등의 길쭉한 그림자와 그 옆으로 난 벽지 무늬까지 뻔했다. 나는 순전히 우연한 기회로 내 마음에게 이유를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답답하고 힘들어해? 잠은 왜 이렇게 또 못 자? 하나씩 천천히 물었다. 그러자 마음이 술술 답을 해줬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마음이 순순히 답해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마음이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



Q.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왜 이렇게 잠을 못 자는 거야?

A. 잠이 올 수가 없어. 생각할 게 너무나 많아.


Q. 무슨 생각인데?

A. 미래에 대한 생각.


Q. 왜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건데?

A. 내가 미래에 잘하고 있을지 걱정되니까.


Q. 잘하고 있다니… 정확히 뭘?

A. 여러 가지. 하지만 지금 가장 큰 건 취업에 관한 거지. 이제 곧 졸업반인데 취업 준비를 하나도 안 했잖아.


Q. 취업준비라면 이제라도 하면 되잖아.

A. 이제 와서? 너무 늦지 않았어? 다른 동기들이 준비하는 것 좀 봐봐. 이제와 따라잡기엔 너무 늦어버렸어. 취업 카페에 올라온 글들 봤어? 다들 진작 준비해서 대기업에 가더라. 그 사람들한테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야 준비하는 내가 뭘 하겠어.


Q. 지금 준비해도 얼마든지 괜찮은 곳에서 일할 수 있어.

A. 대기업이어야 해.


Q. 대기업에 가고 싶다는 거야?

A. 가고 싶은 건 아니야.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Q. 왜?

A. 그래야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Q.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은 게 너한테 그렇게 중요해?

A. 난 아빠가 무서워. 대기업에 가지 않은 나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워. 아빠는 늘 나한테 엄격했잖아. 기대가 높았잖아. 그런 아빠를 실망시킬까 봐 괴로워. 얼굴을 들 수가 없어.





그날 새벽에 여기 적힌 것보다 더 많은 질문과 더 많은 대답이 오고 갔다. 내가 비로소 불면증의 시작점을 알아낸 밤이었다. 처음에는 아무 이유 없이 들이닥친 듯 한 불면증이었지만, 마음과 문답을 주고받으니 서서히 이유가 드러났다. 문답 초입에는 취업 스트레스 때문인 줄 알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마음의 대답에 아버지가 많이 거론되었다. 불면증의 진짜 답은 아버지와 내 관계 속에 답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너무 많이 기대하고 너무 적게 표현하였으며 너무 먼 거리를 두곤 했다. 나는 이십 대 후반이 되기 전까지 아버지를 늘상 두려워했다. 이십 대 중반, 취업을 앞둔 나는 아버지가 내 미래에 대해 얼마나 많은 가치를 두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반하는 결과를 낼까 봐 지레 겁먹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를 알고 나니 그다음 순서를 밟는 것이 쉬웠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내 삶은 나의 것임을 확인하고, 다시 자신감을 얻는 데에 많은 시간과 명상과 눈물과 연습이 필요했지만 결국 모두 해낼 수 있었다. 방향을 알면 그곳에 도달하는 것은 언젠가 이루어질 일이었다. 마음과의 문답은 그 방향을 확실히 하는 과정이었다.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답답함이 사라졌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단순히 취업 준비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게 명확해지자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이 줄었다. 불면증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나아졌다.  


그 뒤로도 나는 알 수 없는 답답함과 스트레스가 찾아오면 마음에게 묻는다. 하나씩, 천천히 묻는다. 알맞은 질문을 던지면 마음도 답을 해준다. 가끔은 마음이 답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질문들이 있다. 이따금 마음은 회피하기도 한다. 너무 큰 질문을 던지거나 모호한 것을 물으면 그렇다. 큰 질문은 잘게 쪼개서 물어보자. 모호한 것은 다듬고 정리해 물어보자. 그러면 마음은 반드시 답을 준다. 그 답을 곱씹다 보면 내가 헤쳐나가야 하는 진짜 문제를 깨달을 수 있다. 문제가 뭔지 안다면 해결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니 속이 갑갑하거나 괴로우면 마음에게 물어보자. 스무고개 하듯 물어보자. 그럼 마음은 친절하게도 나 자신을 알아갈 수 있는 키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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