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서 자랑할 몸매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청첩장 모임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다. 예전에 일 하던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는데 복도에서 만난 캡틴PA친구(나에게 운동할 수 있게 자극을 주었던)에게 요즘 운동 열심히 한다고 오른팔을 들어 올려 구부리며 근육자랑을 했다. 같이 듣던 청첩장 모임 일행이 운동 왜 이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는데 순간 대답을 못 했다. 그러게, 나 운동 왜 하지?
그러다 토요일에 출근한 짬에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며 겨드랑이를 문대던 그때 문득, 그것에 대한 대답을 찾은 것도 같다. 그전에 살쪘을 때 나는 행복했었지만 일하다가 애들 데리고 다른 cell 가서 미팅할 때나 사람들 만나러 갈 때 혹시나 애들이 ‘이런 돼지랑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라는 시선을 느낄까 봐가 운동의 시작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물론 이 전에 부정맥 이야기도 썼고 남편이 찍어준 사진 속 내 모습이 너무나 거대해서 보기 싫었던 적도 있었고. 계기들은 아주 많았지만 거울 속 나 스스로를 볼 때 좋지 않았다. 행복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게 돼지라서 너랑 일하고 싶지 않아. 니 몸 관리도 못하는데 일은 잘하겠냐?라고 직접적인 이야길 한 것은 아니다. 뒤에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우리 층 여자 중 내가 제일 덩치가 큰 것 같다. 어?? 쓰고 나니 정말 그렇다. 키가 나보다 큰 친구가 있지만 장원영 스타일이다. 그냥 기골이 장대하다. 거기에 살도 붙으니 아마 내가 여자 중에 몸무게로 원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층 남자분들 중에서도 돼지라고 불려도 좋을 몇몇이 있긴 하지만 아주 소수다. 내가 그 무리와 동일시될까 봐 두려웠다. 근데 이게 날 운동하게 만들었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랬다. 일도 잘하는데 자기 관리도 잘한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틱하게 살이 빠진 게 아닌 데다 나는 뼈말라 인간이 될 수 없다는 PT 선생님의 팩트폭격도 있었다(물론 앞 문장의 필요조건인 ‘일도 잘하는데’부터가 탈락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지방은 조금 빠지고 근육은 늘어 보기엔 이전보다 몸매는 조금 나아 보일 수 있겠지만 무게차이는 별로 없고 덩치는 오히려 더 커진 것 도 같다. 일 년간 열심히 한 결과가 이렇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층 돼지 같은 남자분들을 보아도 별 생각이 없다. 전보다 더 쪘네. 하고 끝.
아무도 내게 ‘운동 그렇게 하는데 왜 살이 안 빠져?’라고 말한 적도 없고 내가 그만큼 노력을 안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나 스스로에게 그런 시선을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실제로 누가 그렇게 물어본다면 부끄럽지 않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느낀 그 시선은 무얼까. 나 스스로 만들어낸, 나에게 당당하지 못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 아니었을까.
다시 돌아가 운동을 왜 하느냐에 대해 답을 다시 하자면 그냔 기분이 좋아서다. 그냥 운동하는 내가 좋다. 점심시간 땀 흘리고 밥을 먹더라도 샤워하고 상쾌한 내가 좋다. 누군가는 여전히 같이 미팅 다닐 때 애들에게 저런 돼지랑 일해서 싫겠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있으니 아무렇지 않아 기분이 좋다. ‘그냥 돼지 아니고 근육 돼지거덩요!’ 그러니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스스로 작아질 땐 생각해 보자. 자신에게 자신 있나요? 없다면 기분이라도 좋아질 무언갈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