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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과장 Jan 09. 2024

명왕성에서 본 지구

15년 전 대연동 신한은행 아저씨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지나고 보니 대학생 때가 가장 불안했던 것 같다.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학생때 해야 할 일 - 공부 - 만 하고 달려오다가(그리 잘한 것도 아니지만) 대학생이 되고 나니 아무도 나에게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없고, 그저 새로 사귄 사람들, 모임들을 쫓아다니느라 바삐 보냈다. 그러다 어느새 3학년이 되고 진로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친구들은 공부를 더 하거나 시험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깊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교내 은행을 가게 되었는데 - 왜였는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창구에서 업무처리 대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아저씨께서 대뜸 ‘명왕성에서 본 지구’ 사진을 보았냐고 물어보셨다. 아뇨?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나에게 '우리가 굉장히 티끌 속에 살고 있더라고요. 뭐 하러 아등바등 사냐 싶어서요.'라고 이야길 하셨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고 나서야 사진을 찾아보았다. 성인이긴 하지만 설익은 낯선 학생에게 대뜸 저런 이야길 하실 정도면 많이 힘드셨나 보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어 새삼 죄송스러워진다. 그 아저씬 아셨을까? 15년 후 어떤 서울 외곽지역의 중년이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것을.

  회사생활을 1x 년 다니면서 운 적이 꽤 많은데, 눈물이 차오르는 나에게 괜찮아? 한마디로 펑펑 울린 사람도 있는 반면, 더 힘든 사람도 많다고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네던 사람도 있었다. 쌀쌀맞게 굴던 동료에게 이런저런 걸로 속상하다 했더니 니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속상해하냐는, 여전히 시크한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된 적도 있고. 어느 날엔 퇴근했는데 내 얼굴이 영 아니었는지 남편이 말없이 안아줄 때 크게 감동받은 적도 있었지만(따악 한 번) 그냥 때려치라고 할 땐 돈은 누가 버냐 싶다가도 그래 믿고 그만둘까? 싶기도 한 날이 있었다. 언젠가는 남편이 퇴근하면 일 얘기만 한다고 툴툴댔는데, 내가 위로가 필요하다고 가까운 사람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한 것은 아닌가 미안했다.

  오늘은 복도에서 옆파트 후배님을 마주쳤다. 독감으로 아프다더니 오랜만이었다. '안 과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라는 싱그러운 인사에 나도 모르게 '아니요,,, 너무 힘드네요. 징징거려 죄송?'이라고 툭 던졌더니, '징징대는 거 저는 너무 괜찮아요 맘껏 하세요.'란다. 너는 모를 거다 나의 징징거림이 얼마나 심한지를.

  오늘 어떤 기사를 보고 위로가 필요한 날, 혼자 삭히는 것보다, 지인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징징대고 싶은데 들어주겠냐고 말 걸어보는 게 어떨까.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한다면 빙긋이 웃으며 15년 전 그 아저씨처럼 명왕성에서 본 지구를 보여주고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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