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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과장 Aug 22. 2023

커피 한 잔에 빌린 그대를 향한 나의 맘

일터에서 드립커피 마시기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한 때 나의 지루했던 회사 생활에(정말 일이 적어서 지루했다) 재미난 일들을 해 왔던 친구들이 있었다. 별명을 빌어 ‘차오나시’와 ‘한선’이라고 해 두자. 그래봤자 주 1회 사내 커피 동호회 참여하기, 점심 먹고 같이 커피 내려마시기, 점심에 자주 외식하기, 주 2~3회 정도는  퇴근 후 수영하고 편의점 맥주 먹기 정도? 기상천외했던 일 들은 아니지만 돌아보니 소소하게 회사 근처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려했었네.


  커피 동호회는 처음 발을 들이기까지 조금 힘들었다. 그냥 카누 마시면 되지 무슨 커피 동호회야?라는 마음이 더 컸지만 못 이기는 척 차오나시 따라서 한번 가 봤는데 회의실이었던 공간에 퍼지는 커피향기를 황홀히 맡으며 들어갔다가 어느새 동호회원들께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또 동호회원 분들이 얼마나 정성스레 드립을 하시는지. 똑같은 원두로 누가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맛 차이도 확연히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새 금요일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내 모습에 신기해하다 시간이 흘러 사업장을 옮기게 되면서 동호회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동호회를 할 때 자연스레 평일에도 내려마시게 되었다. 차오나시가 팀 staff께 요청해서 그라인더가 탕비실에 생기게 되었고 내 즉시상 상금으로 드립 세트를 사고 그 밖에 원두와 필터는 팀 내 커피 동호회원들 어떤 때는 파트 원 들과 N빵으로 구매했다. 지금의 사업장에 이사 올 때도 그대로 들고 왔었는데 그때와는 달라진 멤버들과 함께 8시 20분 오전 미팅 끝나고 커피를 내려마셨다. 물을 끓이고 두세 번 식히면서 원두에 물을 붓고 뜸을 들이고 물이 똘똘똘 떨어지길 기다리면서 나눈 대화들 덕분일까. 커피 필터에 물이 스며들듯 모른 새 가까워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소소하게 주말에 있었던 일이나 좀 전에 미팅에선 이렇게 얘길 했었어야 했다 류의 복기까지. 방금까지 털린 내 멘탈은 동료들 덕에 보드라운 담요 덮고 잠시 쉬는 듯한 온기도 느껴졌다(물론 갓 내린 커피는 따뜻하긴 하다).


  동호회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7~8년 정도 흐른 것 같다. 멤버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같이 커피 내려 마시면서 부서 사람들과 애정도 생기고 또 나의 드립 실력도 늘어만 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상무님이 되신 당시 부장님께서도 내 드립커피를 맛있다고 자주 칭찬해 주셨다. 칭찬을 연료 삼아 드립 하는 기계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다가도 아무렴 어떻나 드리퍼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머핀 같은 커피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포근해지는 것을.


  문득 요즘 지내는 이곳에는 커피와 함께 내려가는 낭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일터에서 낭만을 찾아야 하니?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갓 내린 드립 커피 한 모금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 얼마나 맛있는데. 상무님께 마지막으로 커피 드린 적이 언제일까. 커피 내리는 여유가 없어진 걸까. 다시 시작해 볼까? 이름하여 빵드립이다! 내 돈 내산으로라도 다시 시작해 봐야 하나? 이것도 다 애정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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