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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Dec 21. 2023

한쪽소설-아빠의 소식

아빠를 애증하는 사람의 인생 한켠 엿보기

아빠가 돌아가셨다.

"여보세요? 박민지 씨? 듣고 계세요? 괜찮으신가요?"

아빠의 사망 소식을 전해준 경찰이 아무 말이 없는 나를 부른다.

"아... 네... 괜찮아요. 어디로 가면 된다고 하셨죠?"

경찰관이 일러준 병원에 가보니 아빠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한다.


아빠가 확실하다.

아빠가 죽었다.


어떡하지?

일단 엄마랑 민수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민수는 어떻게 연락하지?

하아... 엄마는...


온갖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떠오르다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생각들이 떠오르다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죽은 아빠를 앞에 두고.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이 인간이 언젠간 이런 식으로 죽을 줄 알고 있었다.

시체가 멀쩡한 상태라는 게 조금 놀라웠을 뿐.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도 알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소식을 들은 엄마는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짜증 난다.

그렇게 울 거면 이혼은 왜 했지?

나한테 아빠를 전부 떠넘겨놓고 왜 이제 와서 울지?

엄마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든다.

아빠와 우리를 버리고 떠날 때는 언제고 착한 척일까.

엄마가 장례식장에 오든 말든 상관없다.

어차피 난 혼자인 게 익숙하다.


군대에 있는 민수에게 연락을 하려고 인터넷을 뒤져 부대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그래... 결국 그렇게 됐구나. 미안해. 내가 여기 있는 바람에 누나 혼자 고생했네. 휴가를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볼게. 아마 보내주지 않을까."

"어... 뭐... 보내주겠지. 혹시 안되더라도 괜찮아. 굳이 안 와도..."

"그렇긴 한데. 그래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누나 혼자만 다 떠안을 필요 없어. 나도 이제 성인이니까."

민수의 반응이 너무 덤덤하고 의연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뭔가 충격을 많이 받을 줄 알았는데...

남자는 군대 가서 철이 든다고 하더니 그런 건가?

아니면 내가 민수를 너무 어리게만 봤던 건가...


이제 고모 차례다.

고모... 하아... 골치가 아프다.

한참을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족이라는 알량한 의무감에 버튼을 눌렀다.

"고모. 민지예요. 저 지금 ㅇㅇ장례식장인데요. 아빠가 돌아가셔서 연락드려요."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아빠가 돌아가셨다고요."

"아니... 이게 무슨...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 정훈이가 왜 죽어!"

"아까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어요. 논두렁에 쓰러져 있는 걸 누가 발견했는데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술 먹고 집에 가다가 발을 헛디뎌서 논두렁에 넘어진 것 같은데 날이 갑자기 추워져 그대로 동사한 거 같아요. 근처가 다 논밭이라 CCTV도 없고 확인할 방법이 없다네요."

"아니! 그게 말이 되니? 우리 정훈이가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어! 무슨 말도 안 돼! 근데 너는 어떻게 된 게 목소리가 그렇게 차분하니? 아빠 죽은 애 맞아?"

계속해서 아빠의 죽음을 인정 못하고 나를 탓하는 고모의 외침에 짜증이 확 밀려와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다.


고모는 이럴 때만 우리 정훈이라며 아빠와의 애정을 과시했다.

아빠가 어릴 때 자신이 업어 키웠다며 갖은 위세를 떨면서 아빠가 잘 나갈 때 그 값을 톡톡히 받아가 놓고는, 정작 아빠 사업이 위태로워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칼같이 모른 척했다.

그래놓고 이제와 우리 정훈이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엄마는 올지 모르겠고, 민수는 올 수 있다고 해도 내일이나 도착할 것 같고, 고모는 보나 마나 우리 욕이나 잔뜩 하고 있겠지.

오늘 밤은 나 혼자 여기 있어야 하는 건가.


아빠의 영정사진이 어색하다.

아빠 웃는 모습을 본 게 언제였더라...

휴대폰을 겨우 뒤져 찾은 사진이었다.

10년 전 온 가족이 필리핀에 놀러 갔을 때 찍은 사진.

사진 속 아빠는 행복해 보인다.

곧 닥칠 불행을 전혀 모른 채로 온전히 행복한 모습.


그때 기억이 떠오르는 게 싫다.

아빠는 죽을 거면 교통사고로 죽을 것이지 논두렁에 빠져 죽을 건 또 뭐람.

교통사고로 죽으면 보험금이라도 나왔을 텐데...


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빠와 마지막으로 나눈 전화 통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아빠! 제발! 그렇게 살 거면 차라리 죽어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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