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글부글 끓지만 다이어트를 했다.
2024년에 들어서고 다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연애 때 남편에게 잘 보이려 열심히 움직이던 나는 사라졌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직장인만 남았다.
쉬는 날엔 집에서 잠만 자기 시작했고, 시간이 나도 산책은 어쩌다 가끔!
아침엔 반드시 빵을 먹는 남편은 출근하는 내 아침까지 챙겨주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엄마까지 사위가 들어왔다고 밥때를 맞춰 꼬박꼬박 맛있는 식사를 차려주셨으니 살이 안 찔 수가 없었다. (나만 있을 땐 대충 먹었으면서 ㅠㅠ)
그러던 어느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남편과 산책을 꾸역꾸역 나가면서, 스스로가 참 못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러다가 다시 뚱뚱하던 때로 돌아갈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둘째 출산 후 불어난 살을 20킬로 이상 뺀 후로 6년 동안 꾸준하게 관리를 해오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동안은 연애 중이라 긴장상태였고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는 거라 괜히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나 다시 살찌면 어떻게 할 거야?"
"또 그 소리하노?"
"아니~ 내가 조금만 먹어도 살이 잘 찌는 체질이니까 그렇지~"
"관리 잘하면 되지. 내가 도와줄게."
"참나. 그게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내가 설명했잖아. 애초에 사람들이 다 오빠 같지 않다니까? 인내심, 식욕 그런 타고난 게 다 다르다고."
"그래~ 그래~ 어쨌든 나는 여보가 건강상 65킬로는 안 넘었으면 좋겠다."
"뭐? 65킬로? 65킬로?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뭐... 그 이상 넘으면 건강에 안 좋잖아. 그러니까 하는 소리지."
"그게 나한테 할 소리야? 내가 몸무게에 신경 안 쓰는 것도 아니고! 그걸로 스트레스 엄청 받는 거 오빠가 제일 잘 알잖아!"
나는 남편 입에서 그냥 니가 어떤 모습이어도 사랑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뿐이었는데, 남편은 내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저런 소리를 했다.
단단히 삐진 나를 달래겠다는 생각으로 내뱉었는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 내가 짜증 나서 내 속을 더 긁으려고 그랬는지, 남편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왜 그렇게 짜증을 내노! 내가 뭐 못할 말 했나. 그러니까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는 소리지. 65킬로만 안 넘게 잘 관리하라고. 내가 뭐 55킬로 만들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잖아!"
"뭐? 55킬로? 55킬로는 어디서 나온 숫잔데? 55킬로? 55키로면 어느 정돈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그래! 내가 아량을 베풀어서 55킬로 말고, 65킬로 안 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게 그렇게 큰 잘못 이가?"
"뭐? 아량? 허..."
나는 정말 할 말을 잃어버렸다.
결혼한 지... 재혼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나한테 쩔쩔매던 그 남자는 사라져 버렸다.
아량을 베풀어서 65킬로라니...
사실은 55킬로를 원하는데... 자기가 아량을 베풀어서... 65킬로라니... 세상에...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살에 대해서 만큼은 모든 여자가 예민하다는 것을!
그래서 남자들은 절대로 여자들에게 살쪘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걸까?
프렌즈도 안 봤나?
시트콤 프렌즈 시즌3 3화 "The One with the Jam" 일화에 보면 연인 간에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솔로가 되고 마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게 바로 살이다!
"나 살쪄 보여?" - "아니!"
"저 여자가 나보다 예뻐?" - "아니!"
"거시기 크기가 중요해?" - "아니!!!!"
무조건 아니라고 대답해야만 하는 질문들이다.
여기 망설였다가는 바로 아웃인 거다. ㅉㅉㅉ
그러니까 내 남편이 여태까지 솔로였겠지...
정말... 하아...
내 불안을 모르는 걸까?
남편은 내가 이런 식의 불안을 내비칠 때마다 항상 어이없어했다.
내가 살이 찌거나 못생겨져서 남편의 마음이 식을까 봐 불안해하는 걸 이해 못 해했다.
자기가 도대체 갈 데가 어디 있냐는 식이었다.
치......
내 눈에 왕자님인데 세상 어떤 눈 삔 여자 하나가 또 걸려들 수도 있지.
그래서 오징어 지킴이지. 안 그래?
아무튼.
그 얘기를 듣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남편은 곡해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이미 속마음을 들어버린 걸 어쩌랴.
뚱뚱한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할 줄이야. ㅡㅡ
그냥 지금 만난 게 다행인 거겠지.
지금 만날 운명인 거였겠지.
그래도 내가 과거 못난이였던 그 시점에 만났다면 지금처럼 잘 안 됐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과,
일어나지 않을 미래에 혹시라도 겉모습에 실망해 바뀔 수도 있는 건가 싶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이건... 시간이 가면 해결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