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는 그냥 서비스직으로 남는게...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두번째 만남에서 서비스직인지 생산직인지를 대놓고 물어볼 정도였지만, 2세에 대한 고민은 답이 안 나왔다.
남편은 처음에는 언제나처럼 자기는 뭐든 상관없다며 나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하아 ㅠㅠ
나는 애 욕심도 많은 편이라 낳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적절히 닮은 아이라니!
그것만큼 사랑스러운 게 어디 있을까?
이혼하고 35살이 될 때까지는 무조건 낳을 생각이었다.
둘째를 28살에 낳았으니 나이 차이도 그때까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남동생이랑 7살 차이였으니까.
그리고 평소 자매들을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워서 가능하다면 딸에게 자매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 번은 실패했지만 두번째는 정말로 꿈꾸던 온전한 가정을 꾸려보고 싶었다.
그런데 35살이 넘고 37살이 되기까지 재혼을 못하면서, 딸과 나이 차이가 10살이 넘어가게 되면서부터 아이는 포기했다.
이혼도 재혼도 모두 아이에게는 원치 않는 사건이었을 텐데,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씨 다른 형제까지 만들어주는 건 너무한 것 같았다.
그래서 재혼할 남자를 찾을 때에도 미혼남이나 애 없는 돌싱남은 좀 부담스러웠다.
아이를 엄청 원할 것 같은 왠지 모를 의무감 때문에.
아무튼 당시 서비스직이라고 대답했던 남편은 원한다면 언제든 생산직으로 바꿀 테니 말만 하라고 했고, 나는 고민이 시작됐다.
친정엄마는 결혼 초반까지는 절대 애를 낳지 말라고 반대를 했다.
그런데 막상 사위와 같이 살면서 손녀와 잘 지내는 걸 보더니 슬 마음을 바꾸었다.
또 내가 당시 직장에 다니는 걸 너무 힘들어하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라에서 양육비도 100만원씩 준다고 하니 그동안 못해 본 육아휴직도 맘 편히 해보라며 은근히 임신을 권했다.
첫째, 둘째 때는 돈 버느라 바빴으니까...ㅠㅠ
시댁에서는 의외로 시아버님은 애 하나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든다고 현실적인 이유로 반대하셨고, 시어머님은 낳으면 좋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권하셨다.
남편의 아이들이 둘 다 딸이라 아들을 강력히 원하실 것 같았는데 정말 의외였다.
그 옛날에도 시아버님은 형제가 많으면 상속 싸움이 난다고 자식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셨는데, 손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은 결혼하고 같이 살아보고 생각해 보자고 결정을 미뤘다.
같이 살면서 예상보다 훨씬 더 우리 가족과 적응을 잘하고 특히나 친정엄마와 딸과 남편의 관계가 좋아지는 게 거듭 확인될수록 나는 포기했던 아이에 대한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아이들의 생각을 물어봤다.
당연히 아들은 동생에 대해 맘대로 하라며 아무 생각이 없었고;;;
딸은 엄청 싫어했다.
초등학교 6학년이니 그냥 엄마가 임신했어도 싫어했을 터였다.
같이 사는 딸의 의견이 제일 강력했으니 머리로는 낳지 말아야겠구나 싶다가도 이상하게 자꾸 아이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진짜 심각하게 육아휴직이 하고 싶어서 애를 낳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고민도 했다.
길 가다 아이를 보면 그저 너무 예쁘고, 인터넷으로 돌아다니는 짤만 봐도 이쁘고, 그렇게 자꾸 낳고 싶은 마음은 커지는데...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주택담보대출, 늘어만 가는 아이 학원비, 날로 올라가는 식자재 물가, 노후 준비 등 낳지 말아야 할 이유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더더 사랑하게 될수록 남편과 나를 닮은 아이를 상상하게 되고, 그 가상의 아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남편은 결혼하고 나니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 했다.
아이를 낳으면 둘 다 힘들어져 사이가 나빠질까 봐 걱정을 했다.
지금 너무 좋은데 이 행복을 깨고 싶지 않다고 했다.
솔직히 그런 발상이 신기했는데, 아마도 나는 독박육아를 하면서도 그 문제로 전남편과 다투거나 한 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고, 남편은 전아내와 아이 양육 문제로 많이 싸워서 그런 것 같았다.
한 번은 아이 양육에 대한 긍정적인 나의 태도가 이해 안 갔는지, 남편이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애들이 어릴 때 원인을 알 수 없이 계속 울고 칭얼댄 적 없냐고 묻는데, 이상하게 기억이 잘 안 났다.
분명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그렇게 힘들었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나한테 애들 양육이 그랬다.
그냥 더 많이 사랑을 못 준 것 같아 아쉬웠고, 엄마 아빠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다시 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ㅎㅎㅎ
근데 남편은 자신은 너무 힘들었다며 다시 그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이 돌보고 키우는 게 보통 일이냐고 얼마나 희생을 해야 하냐고 정말 잘 생각해 보라며 엄청 겁을 줬다.
그래서 나는 지금 오빠 테니스 치고 게임하고 그런 거 못할까 봐 애 낳기 싫어하는 거냐며, 그런 거라면 취미 생활하게 해 줄 테니 걱정 말라고 지금처럼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지만 여전히 완고했다.
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낳으면 변할까 봐 두려운 거냐고 안 그럴 거라고 내가 애들 키우는 거 보면 알지 않냐고 했지만 여전히 두려워했다.
결국엔 또 자기 양육방식과 내 양육방식이 너무 달라서 싸울 것 같다고 하는데,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키우라고 나는 오빠를 지지하겠다고 해도 안 먹혔다.
자존감이 낮은 나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우울해졌다.
그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머릿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맴돌았다.
'내가 부족해서, 내가 별로여서 남편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가 보다.'
나는 그냥 남편 닮은 아이를 너무 낳고 싶은데 남편은 어떻게 그런 마음이 안 드는지 서운했다.
테니스 동호회에서 이상한 '딸 낳는 법' 같은 써먹지도 못할 건 뭣하러 외워오는지...
남편은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시술 날짜까지도 받았지만 결국 취소를 했다.
사실 정관수술한 지 10년이나 지나 다시 연결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정자가 만들어질지도 모르고, 나도 나이가 있어 임신이 될지 안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진짜 그냥 가상의 아이를 두고 낳니 마니 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시도라도 해보고 싶은데 막상 임신이 되면 낳게 될 걸 우리 둘 다 아는 건지, 남편은 그렇게 그냥 서비스직으로 남게 되었다.
나도 아이는 포기하자고 마음을 먹긴 먹었는데 완전히 포기가 안된다.
자꾸만 아이가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