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이쁘면 처갓집 말뚝보고도 절 한다더니 ㅋ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올해가 엄마 환갑이다.
그래서 형제들이랑 10년 전부터 모은 돈으로 여행 준비를 했다.
이번 6월 황금연휴에 가려고 작년 11월부터 비행기와 숙소를 알아보았다.
미혼인 오빠와 남동생, 엄마와 나, 그리고 딸.
아들은 정말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저쪽에서 해외는 위험하다며 허락 안 해줘서 이번에도 포기.
친권을 완전히 나눠가져서 나는 아들 여권을 만들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아들 성인되면 같이 다니든 해야지...
여행 준비 당시에는 남편과 사귄지 7개월 쯤 됐을 때라, 남편을 어떡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대로만 문제 없이 진행되면 결혼할 것 같긴 한데...
시간이 또 많이 남은터라 호옥시나~ 그 사이 어떤 예상못한 일이 터져서 헤어지면 어떡하나.
그런 걱정이 있었지만 그래도 제주여행 이후 확신이 생겼던 터라 같이 가는 걸로 하고 계획을 잡았다.
오빠와 남동생은 여기에 관심도 없고 회사에 휴가를 낼 수 있니 없니 시큰둥했다.
으으으... 진짜 형제만 아니면 어휴...
그렇게 끔찍히 엄마를 생각하면서 이런 건 왜 또 발 빼는지...
결국 가장 큰 도움이 된 사람은 남편뿐.
당시 코로나가 풀리고 여행 수요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실시간으로 오르는 비행기값에 혀를 휘둘렀다.
'괜찮겠지' 하고 늦장 부리다가 일주일 차이로 결국 원하는 비행기표를 놓쳤다.
이런저런 검색을 엄청 해보았지만, 결국 부산 출발&도착은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산에서 출발하고 도착은 인천으로 하기로 하고 표를 구했다.
나중에 보니 진짜 비행기 값이 두 배는 올라서 너무 놀랐다.
미리해서 그나마 그 가격으로 갔다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혹시나 오빠나 남동생이 그 사이에 결혼한다고 여자를 데려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좋은 건지...
아무튼 엄마는 자식 셋을 모두 데리고 여행을 간다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또 갈 수 있으려나...
진짜 어휴...
가족 여행은 너무 어렵다.
오냐오냐 키운 딸 비위 맞추랴, 엄마 체력 생각하랴, 장남인 오빠 눈치 보랴, 피곤하다는 남동생 신경 쓰랴...
아이고... 힘들다.
남편마저 우리 가족이랑 어울리지 못했으면 정말 더 힘들었을 뻔 했다.
남편은 우리 가족을 보면서 혼자 킥킥대며 너무 재밌어했다.
나 같은 사람이 여러 버전으로 있는 것 같다나?
친오빠가 베트남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역사를 늘어놓는거나, 안 먹는다고 해놓고 주면 결국 다 먹는 거나, 나랑 똑같다고 했다.
남동생은 막내라 눈치 잘 보고 군말 없이 궂은 일을 스스로 해내면서도, 힘들다고 징징대는 게 나랑 비슷하다고 했다.
친정엄마와 딸이 나와 똑같다는 건 같이 살면서 매일 매일 충분히 느끼고 있었고...
남편의 시선으로 보는 우리 가족 모습에 몰랐던 사실을 나도 알게 되었다.
유전자의 힘인 건지 환경인 건지 사고방식이 놀랍도록 비슷한 게 신기하긴 하다.
남편이 말하기 전까진 진짜로 서로가 비슷하다는 걸 못 느꼈으니까.
그냥 진짜 다르다고 답답하다고 불평불만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가족들 성향이 서로 너무 비슷해서 동족혐오 그런 거라 같이 있으면 불편한가보다.
내가 가족들에 대해서 투덜대며 막 뭐라고 하면 자기가 보기엔 다 똑같다며 웃어대는 남편을 보자니 얄미웠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 사이에서 편하게 있는 것 같아 안심되었다.
자기는 외동이라 그런 것들을 못 느껴봤다고 그냥 재밌단다.
가족들이 속으로는 서로를 되게 아끼는데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말투도 거칠어서 남들이 보기에는 좀 삭막하다.
그래서 그런지 전남편은 우리 가족을 무척 어려워하고 불편해했다.
전남편네 가족은 굉장히 서로 살갑고 친했기에 더 그런 걸 수도 있다.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는 아빠 쪽 가족을 더 좋아했으니까... 뭐...
어쨌든 지금 남편은 우리 가족을 어려워 안하고 편해하니까 참 안심이 되었다.
남편 말에 따르면 각자 자기 할 일하고 서로 노터치하고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게 자기 스타일이라고 좋다고 했다.
또 자기는 부산 거친 말투를 평생 듣고 살아서, 전라도+서울말이 섞인 우리 집 말투는 무슨 말을 해도 너무 부드럽게 들린단다;;; 하하하
이럴 수도 있구나...
사람에 따라 정말 받아들여지는게 다르구나...
하긴 나도 남편이 하도 자기 엄마가 좀 그렇다고 엄청 겁줬는데, 막상 만나니 내가 느끼기엔 하나뿐인 아들을 사랑하는 그냥 평범한 시어머니였다.
말을 직설적으로 하시는 것도 꼬아서 말하는 것보다 백배천배 나았고, 겉과 속이 똑같으셔서 바로 바로 알 수 있으니까 편했다.
자기 자식이 최고고 이쁜거야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지 뭐.
남편은 전 결혼생활 중에서 고부갈등이 이슈였어서 그 부분을 많이 걱정하긴 했는데, 그게 괜찮은 거 같으니 자기도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가게 된 3박4일 베트남 다낭 여행은 마지막 날 엄마를 걱정시키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지만, 그래도 남들 다 하는 효도 한 번 했다는 뿌듯함을 가지고 돌아왔다.
쓰리룸에 비치프론트인 겁나 비싼 다낭 빈펄리조트로 가서, 나는 그냥 리조트에서만 지내도 좋던데 아직 미혼인 오빠와 남동생은 그렇지 않았던 거 같다.
내가 생각한 가족여행은 진짜 그냥 푹 쉬다 힐링하고 가는 걸 생각했는데...
오빠나 남동생이나 맨날 회사 일에 야근에 치여서 힘들어 하니까... 그럴 줄 알았는데... 허허허
미혼은 혈기왕성한지 자꾸만 관광을 하고 싶어했다.
엄청 덥고 힘든데 ㅠㅠ
그래도 어찌저찌 적당히 일정을 잘 조율한 거 같다.
남편이 없었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것 같고 남매 싸움 한번 났을지도. ㅋㅋㅋ
이제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
언젠가 엄마가 한 번은 그런 소리를 했다.
전남편 그놈은 나랑 그냥 같이 잘 살았으면 지도 편하고 이런 거 다 누리고 살 수 있었을 건데 멍청하게 왜 이혼했는지 모르겠다고.
나도 애가 2이나 있는데 진짜 걔가 왜 그랬는지 이해도 안가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릴하는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걔랑 아직도 살았으면 걔가 사고 친 거 내가 다 뒤치닥 거리 하느라 집도 못 사고 빌빌댔을 거야! 걔랑 헤어져서 이만큼 살 수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