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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Nov 06. 2023

29.재혼한 남편만 먹을 수 있는 마지막 등갈비 김치찜

딸보다 두번째 사위를 더 챙기는 장모님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친정엄마는 새 식구가 들어와서 바빠졌다.
우리 집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새 식구가 집에 잘 적응하도록 하는 게 본인의 임무라는 듯 엄청 신경을 쓰셨다.

남편도 나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해도 사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인지 계속 물어가며 노력을 하셨다.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사위가 감자채볶음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 다른 반찬은 영 안 먹더라, 김치찌개는 좋아하더라 등등의 정보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에 비해 남편은 우리 집의 시스템에 무척 놀라워하며 적응을 해갔다.

빨래통에 빨래를 넣은 지 하루 만에 다시 돌아온다고 신기해했다.

장을 봐오면 처음에는 냉장고에 직접 넣었는데, 나중에 다시 착착 정리되어 있는 모습에 또 놀라워하며 다음부터는 우리 엄마가 정리하도록 놔두었다.

내가 처음부터 그래도 된다고 말했거늘 ㅎㅎㅎ

우리가 아무리 정리해도 엄마의 정리는 따라갈 수가 없다고!


남편은 나보다 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국계라 그런지 주2회 재택근무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툭하면 재택근무를 한다.
사무실 에어컨이 고장 났다고 재택하고 출장 간다고 재택하고...
아무튼 겁나 부럽다.
연애 때는 그런 여유시간으로 내 스케줄을 맞춰주니 너무 좋았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맨날 집에만 있는 백수 같아서 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힘들게 잠도 잘 못 자고 야간 근무를 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아침에 집에 들어가면, 씻지도 않고 기름진 얼굴로 반겨주는 남편이라니...
우리 딸이 왜 일은 엄마가 더 많이 하는데, 아저씨가 돈을 더 많이 버는지 궁금해하는 지경이었으니까.

여하튼 사위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친정엄마는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 같았다.

빨랫감이 늘어난 것뿐만 아니라, 남편이 아침저녁으로 샤워하다 보니 욕실 곰팡이 걱정에 청소도 늘었다.
겨우 입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인데 냉장고와 과자창고 비워지는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장을 이렇게 자주 봐야 하는 것이었나 싶을 정도였다.
원래 우리 집 3대 모녀들이 뭘 잘 안 먹기는 했지만 남자 하나 들어왔다고 이렇게 달라지는 게 놀라웠다.
남편은 나보다도 먹는 양이 적은 데 말이다.
내가 근무하느라 집에 없을 때 재택근무를 하는 사위의 식사를 챙겨주는 게 엄마의 주고민이 되었다.
대충 차려주라고 해도 어떻게 그러냐며 쉽게 긴장을 풀지 않으셨다.
찌개 하나만 올려놓으면 너무 식탁이 부실한 거 같아서 민망하다나?
근데 남편은 메인 메뉴 하나만 먹는 스타일인데;;;

우리 엄마의 김치찌개를 엄청 좋아하는데;;;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가끔 주말에 집에 오는 장남인 오빠를 위해 엄마가 한상 가득 차린 날이었다.

메인 메뉴는 등갈비 김치찜.(생각만 해도 침이 고인다.)

우리 엄마 요리는 진짜 맛있다.
전라도랑 강원도가 섞인 요리 스타일인데 정말 맛있다.

엄마는 그냥 우리 3남매가 먹성이 좋아서 그런 거라고 자기가 요리를 특별히 잘하는 건 아니라고 했는데, 글쎄...

뭐 어쨌든 우리 남편도 친정엄마의 요리를 좋아했으니 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ㅎ


문제의 그 등갈비 김치찜을 만든 날 남편은 일이 있어서 그 자리에 없었다.

나와 오빠, 입맛 까다로운 우리 딸까지 모두 엄청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러다 내가 딸에게 고기 발라주느라 몇 점 못 먹어서 추가로 더 떠오려고 일어섰다.


그 순간 엄마가 소리쳤다!
"그거 0 서방 꺼야! 먹지 마!"


허얼~ 아니 나 친딸 맞나? 서운해서 살겠나 이거...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정서방 뭐 차려줄지 맨날 고민되고 힘들다고! 이거 나중에 줘야지!"


와... 진짜 내가 데려온 그 0 서방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진 건 맞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찌그러졌다.
그래도 혹시나 친오빠가 더 먹고 싶으면 꼽사리 낄 수 있으니까 본능적으로 오빠 찬스를 쓰려고 했다.
"오빠, 오빤 더 안 먹어?"


바로 엄마가 끼어들었다.
"니네 오빠 다 먹었으니까 내가 그러지. 오빠 먹는다고 했으면 벌써 줬지!"


와... 서러웠다.
이럴 수가!

나는 어쩔 수 없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잘 우러난 국물과 김치로 식사를 마쳤다.

결국 그 김치찜은 나 출근한 사이에 남편과 딸이 다 먹었다.

냉정하고 무뚝뚝한 딸보다 싹싹하고 이야기 잘 들어주는 사위가 더 이쁜 걸까? ㅠㅠ

맛있는 등갈비를 못 먹어서 속은 상했지만, 어쨌든 모두들 잘 적응해 가는 것 같아서 내심 기뻤다.

등갈비 김치찜. 또 해 먹으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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