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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단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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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Nov 04. 2023

28.딸과 재혼한 남편만 집에 남게 되어 생긴 일

걱정이 무색하게 자유를 만끽한 딸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조승우는 명불허전!

조승우 주연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보러 갔다.
3층에서 남편과 한번 봤는데 조승우 연기가 너무 좋아서 1층에서 가까이 다시 보고 싶었다.
친정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내 맘을 알아주어 우리 착한 남편이 어렵게 1층 좌석 2장을 확보해 주었다.

그렇게 수요일 평일 저녁 공연을 친정엄마와 보러 가려니 딸을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다.

거의 5시부터 11시까지 6시간 동안 집을 비우는 건데 남편과 같이 산지 겨우 한 달 반 정도밖에 안 되었던 터라 , 낯을 가리는 딸이 아저씨와 둘이서 집에 있으려 할지 걱정이 됐다.

만약 딸이 싫다고 하면 남편이 엄마랑 가라고 하던가 아니면 친정엄마가 안 가기로 하고 딸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걱정이 무색하게 딸은 몇 시에 돌아오냐고 묻더니 너무도 쿨하게 다녀오라고 했다.

아저씨가 집에 들어온 후로 방에서 나오지도 않다가 이제 조금 익숙해진 상태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쿨한 반응에 살짝 놀랐다.

어쨌든 엄마와 나는 1층 코앞에서 조승우의 연기를 생생하게 즐겼다.
3층에서 보는 거랑은 정말 달라서 이런 공연은 가격이 그 가치를 하는구나 싶었다.
알고 봐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비교하는 재미가 있어 더 즐거웠다.

친정엄마도 무척 재밌어하는 게 느껴져 뿌듯했다.
그렇게 우리가 즐겁게 뮤지컬을 보고 있었을 때, 딸은 우리보다 더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떠나고 둘만 남자,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자유다~"를 외치며 소파에 드러누웠다.
엥? 우리가 있을 때도 지 맘대로 있으면서?
자기 혼자 집에 있으면 무섭다고 전화하는 애가?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저녁도 자기가 좋아하는 마라탕을 주문했고, 아저씨한테 유튜브를 보면서 먹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으니까 엄청 좋아하면서 먹었다.
연신 "너무 자유롭다~"를 외치면서 할머니와 엄마가 없는 집을 즐겼다.
혼자 있기는 무서운데 잔소리 안 하고 뭐든지 다 해주는 아저씨가 있으니 굉장히 좋았나 보다.

저녁을 먹고 실컷 휴대폰을 하고는 얼마 안 가 지루해졌는지 쇼핑을 나갔다.
내가 둘이 가라 할 땐 아저씨 불편하다고 싫다 하더니 무슨 마음이 불었는지 둘이서 근처 아웃렛을 갔더라.
그렇게 쇼핑을 가서는 아저씨가 이거 저거 옷 골라주고 입어보라 하고 사진 찍어서 비교해 주고 사고 싶으면 다 사라고 하니까 딸은 완전 신이 났다.
할머니랑 가면 이 옷은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된다 잔소리가 많고, 엄마인 나랑 가면 쇼핑에 취미가 없어서 대충 반응하니 재미가 하나도 없었는데, 아저씨는 딸의 모든 니즈를 척척 맞춰주니 엄청 좋아했다.
실컷 고민하다 옷을 사고 나오면서 신발을 보고는 "옷에 어울리는 신발이 있나..." 한마디에 아저씨는 바로 "신발도 사자! 함 골라봐라!" 했고 거기서 할머니와 엄마한테서는 느껴보지 못한 자유로움을 더 느꼈다.
모자를 보고도 같은 과정을 거쳤지만 막상 써보니 맘에 안 들었는지 사지 않았다.

쇼핑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민이 만수르가 된 기분을 체험할 수 있는 다이소로 갔다.
다이소에서 아저씨는 "원하는 거 다 골라봐라." 했고 딸은 잔뜩 신이 나서 열심히 골랐다.
맨날 돈 아깝다, 그런 걸 왜 사냐, 사지 마라, 이런 얘기만 듣다가 저런 소리를 들으니 웬 떡이나 했을 것 같다.ㅎ
다이소에서 애가 골라봤자 모두 3~4만원이었고, 옷과 신발도 취향껏 골라서 20만원이었다.
남편이 딸의 보좌를 정말 완벽하게 해냈다.

진짜 잘한다. ㅎ

집에 와서 딸은 다이소에서 산 곰돌이 팩을 하고 드러누웠다.

만족스러운 하루의 마지막으로 팩은 필수지. ㅎ


우리가 집에 들어서자 딸은 눈치를 보면서도 오늘 산 옷들과 물건들을 자랑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할머니는 이런 걸 샀다며 핀잔을 줬고, 나는 너무나 즐겁게 아저씨랑 시간을 보낸 딸이 어이가 없어 웃었다.

그냥 각자 휴대폰이나 하다가 우리를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알차게 아저씨를 부려먹다니... ㅎ

누가 내 딸 아니랄까 봐;;;

누가 재혼 생활이 어렵다 했는가... 하하하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는 역시 팩이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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