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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elle Oct 13. 2023

지나온 집과 공간의 흔적 되짚기

추억을 기억한다 - 마닐라의 멋드러진 콘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해외발령으로 온 가족이 필리핀으로 떠났다. 


 좁아터진 주공집에서 나와 이민가방과 각종 짐들을 이고지고 난생 처음 마주하는 거대한 비행물체에 앉아 4시간 반정도의 시간을 지나 우리 가족은 마닐라 국제공항에 내렸다. 비행하는 내내 창밖을 내다보며 내 밑에 구름밭, 바다, 작은 집들...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코를 바짝 유리창에 붙이고 내려다보며 경이로워 했던 순간이 생각난다.

이쁜 유니폼을 입은 친절한 언니가 밥을 갖다줬는데 엄마는 이미 엄마 양쪽에 7살,4살 동생 둘을 끼고 매우 분주하셨기 때문에 나는 차마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이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K-장녀의 '눈치껏 내가 알아서 하자 그냥' 레이다는 역시 때에 맞춰 발동한다.

게다가 나는 엄마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있었다.


마침 내 옆에 앉아있던 외국인이(아마도 필리핀인 이였던 것으로 추정) 나의 어색한 상태를 눈치챘는지 나에게 말도 걸어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면서 밥을 먹고 치우고 하는 과정을 도와줬었다. 나의 인생속에 그런 순간의 친절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상기하며 나도 기회가 온다면 꼭 그런 어른이 되야지...


헝클어진 머리와 꾀죄죄해진 피곤함, 낯선 나라에 도착한 두려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생소함 - 이 모든 도전의 불안함과 두려움이 '이제 우리 집은 여기다~' 하고 차에서 내려 찬란한 빌딩의 로비를 본 순간 싸-악 사라졌다. 

먼저 필리핀에 가셔서 집과 학교, 생활 편의시설 조사, 차.. 등등 낯선 땅에서 부인과 아이셋을 먹여살릴 무게감을 감당하고 계셨던 아빠가 우리가 앞으로 살 곳이라고 소개해주신 집은 주공아파트와는 모든 면에서 비교가 안되는 초 럭셔리 콘도였다. 


아빠가 금색 테두리가 번쩍번쩍한 널찍한 엘레베이터에 타고 18층을 눌렀다. 고급스러운 띵- 소리와 함께 문이열리고 밝은 주황빛 조명이 반짝반짝 반사되는 유광타일 복도를 지나 우리집 문앞에 아빠가 섰다. 여기다!

문 손잡이도 그렇게 고급진건 처음봤다. 키를 넣고 돌리면서 동시에 손가락으로 레버를 눌러야 문이 열리는 구조였는데 그것조차 너무 신기했다. 들어가자 마자 계단이 먼저보인다. 집이 복층이였던 것이다.

집안에 계단이 또 있어? 계단이?? 동생과 우당탕탕 계단을 힘차게 올라가서 방들을 구경한다. 방이 3개였고 모든 방에 화장실이 하나씩 딸려있었다.

안방과 작은방엔 이미 침대도 있었는데 특히 안방의 화장실이 아주 기가막혔다. 세면대 2개, 바깥 풍경을 보며 몸을 욕조에 누일수 있는 구조와 햇빛이 쫙 들어오던 큰 유리창. 우와- 우우와아- 우와아아아아!

우리 진짜 여기서 살아? 진짜? 우와? 와?!


그리고 우당탕탕 내려와서 거실과 부엌을 뛰어다닌다.

넓-찍한 거실과 표현하긴 어렵지만 열살짜리가 보기에도 고급스런 천장 조명들.

푹신한 6인 소파.

6인용 대형 원형 식탁... 식탁? 

식타-악?


한사람 들어가면 꽉- 들어차던 그 어둑했던 주공의 부엌. 일자형태의 좁은 부엌에서 우리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매일 부엌일을 하신걸까.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일절 불만스럽다거나 불평하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적어도 우리 앞에선. 늘 그때 그 상황에 맞게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역할로 최선을 다하셨던 모습이였다.

엄마가 부엌일 하고 계실때 내가 뭐 찾으러 들어가면 더 좁아져서 나가라~ 소리를 귀에 박히게 들었더니 부엌은 내가 들어가면 안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지금도 엄마집에가서 부엌에 들어갈때는 엄마의 공간에 내가 침입하는것 같을때가 있다.


넓찍한 사각형의 공간형태로 싱크대 앞에 큰 창이 있던 상쾌한 부엌. 부엌바닥에 하얗고 큼지막한 네모타일들이 눈에 선하다. 여기서 우리 삼남매가 둥글게둥글게를 해도 엄마 왔다갔다 하시는데 1도 타격이 없을거야- 할 정도로 넓었다. 

와! 엄마! 이것좀봐! 엄마!! 이것도 있어!! 엄마!! 우와 우와!! 너무 좋아 진짜!! 우와!!

물만난 강아지들 처럼 집 구석구석 뛰어다니는 우리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엌안쪽으로 가면 방이 또하나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내가 아떼! 하고 부르며 쫒아다녔던 상주 헬퍼들의 공간이였다.  이것마저도 참 흥미로운 공간이였다. 필리핀 사람이 우리랑 같이 살아? 같이 사는거야??진짜?


여기서 정점을 찍었던 것은

7층과 3층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였다. 수영장.....?

엘레베이터타고 내려가면 수영장이 있대!!  오디오디? 바바바바 밑에 있어?!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수영장이다.


이 콘도에서 살면서 빈부격차- 라는 것을 경험했다.

요즘 서울에 짓는 고오급 아파트들을 보며 이 콘도 생각을 많이 한다. 입주민들만의 공간. 돈을 낸 사람만이 소유하고 영유할 수 있는 그 아름답고 깨끗한 배타적인 공간...


1층 로비에는 실탄이 장착된 총기를 소지한 가드들이 5-6명 근무한다. 우편물, 피자주문..이런건 절대 배달원이 올라갈 수 없고 무조건 해당 호수에 전화해서 방문자를 확인하고 헬퍼나 주인이 직접 픽업하러 내려온다.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5-10살 정도 되는 어린 아이들이 창문을 두드리며 아이들이 팔고있는 꽃 목걸이, 껌, 과자등을 사달라고 눈빛을 보낸다.  

한번 사기 시작하면 계속 온다고 절대 열어주면 안된다고 아떼가, 드라이버가 (기사도 있었다) 얘기해준다.

왜 이들을 돕지 못하지...? 나는 지금 학교 가는 시간인데 얘네들은 왜 학교를 안가고 여기에 있는거지?


이 질문은 결국 내가 국제개발분야로 뛰어들게한 가장 큰 경험이기도 하다.


필리핀의 그 콘도. 아직도 잘 있을까-

밤에는 은은한 조명도 켜놓을 수 있었던 계단.

하얗고 환했던 부엌.

마닐라시내가 내려다 보이던 뷰.

삐까뻔쩍했던 손잡이.

라탄소재의 6인용 식탁.


부내 철철 흐르던 그 콘도.

오늘도 그 7층 수영장에서 열심히 돌고래 잠수하고 있는 한국 어린이들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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