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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열음 Apr 12. 2024

마흔준비_② 느리게 달리는 거북이

- 슬기로운 마흔 생활을 위한 생각의 시작 _ 나는 왜 게으를까?

빨간색 글씨로 종이 위에 ‘매일 할 일’이라고 적어둔 일들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어 둔지 2주째. 해야 할 일의 대부분은 매일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자 결심이기도 했다. 별 3개까지 달고 순서대로 줄 지어선 다짐들은 종이 위에서 망무석이 된 것처럼 마음을 짓누른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하루에 한 글자도 쓰지 않는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나는, 왜, 어째서, 매일 차일피일 미루여 글을 쓰지 않을까? 



이상은 무라카미 하루키. 현실은 초등 작문 교실 수강생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 전, 열혈 독자로서 책이 손에서 떨어질 날이 없었다. 수많은 소설은 나를 키우는 자양분이었다. 하지만 높아질 대로 높아진 눈에 글을 쓰는데 독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내 실력이 반영되지 않은 높은 이상과 기준점으로 쓰는 일은 매일 나를 갉아먹는 좌절감을 직면하게 한다. 


오늘도 나는 글 대신 고통.hwp를 저장한다. 

나는 ‘내 글 구려요’라는 지독한 병을 앓고 있는데, 이 병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하나, 자신이 지금 쓰레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다.

  둘, 내면에 자체 검열기를 장작하고 있다.

  셋, 한 줄 쓸고 자체 검열기를 돌려 수정하고, 또 한 줄 쓰고 수정하는 쓰.지를 무한 반복한다.

  넷, 결국 글을 완성 짓지 못하고, 자신의 고통만 완성시킨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종일 글에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상관없지만, 나는 생활인이자 아내이며, 엄마이기 때문에 알바도 가야 하고, 밥도 해야 되고, 애들도 챙겨야 하고, 집 안일도 해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쓰.지는 점점 더 심해지고, 결국 끝내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D드라이브 어딘가에 처박혀 잊혀져 간다.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한 경험은 다음 글을 주저하게 만든다. 


잘하지 못하는 건 결국 실패다 

인정욕구가 높아 자기 발전적 일과 성취적인 일을 좋아한다. 문제는 좋아하면 되는데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이런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랐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제대로 안 할 거면 하지 마!” 


지금의 나라면, "제대로 하고, 못 하고를 떠나 일단,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나는 오랫동안 저 말에 묶여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과정 속에서 얻는 크고 작은 시행착오는 곧 자책이자 실패였다. '잘하는 것'이 곧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하지 못하는 건 결국 실패다’란 공식이 내 안에 깊게 뿌리를 내렸고,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를 실패로 여기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종합해 보자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노트북 앞에 앉을 만큼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왜 나를 글을 쓰고 싶은가? 한 장을 쓰는 것도 어쩔 땐 하루 이상의 시간이 걸릴 만큼 지독히 비효율적이며, 내 글에 대한 확신이나 믿음도 없다. 재미있게 잘 쓰는 재능도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안 쓴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토록 글이 쓰고 싶은 걸까? 그럼에도 내가 쓰고 싶은 이유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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