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바꾸는 생각에 대하여
퇴근 후 집에서 마시는 맥주를 인생의 가장 큰 낙으로 여기는 직장인 이자와 미유키. 그녀는 맥주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고 행동한다. 짜릿한 그 첫 모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친근해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일본 드라마 '반주의 방식’ 이야기다.
내게도 그녀만큼 첫 모금이 아주 중요한 음료가 있다. 바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운동을 끝내고 서둘러 집 앞 카페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미리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후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빨대를 빠르게 꽂는다. 그리고 얼음과 샷이 섞일 수 있도록 한쪽방향으로 재빠르게 돌린다. 지금까지 물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손에 든 커피가 더욱 간절해진다. 하지만 한번 더 참아야 한다. 이제 막 부어진 뜨거운 샷은 얼음을 녹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 모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차가운 커피를 들이켰을 때 머리가 쭈뼛해지는 그 띵한 기분이란! 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내게는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게 하는 참 별것인 루틴이다.
며칠 전. 기분 좋게 욕조에 몸을 담갔던 날이었다. 따뜻한 물에 풀어진 몸의 나른함을 느끼며 차가운 커피 한 모금 딱 마시려는 순간. 아뿔싸. 손이 미끄러져 커피를 놓치고 말았다.
“아악! 내 커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는데, 그만 모두 욕조 안에 쏟아버렸다. 텅 빈 플라스틱 컵이 욕조 안에서 둥둥 떠다녔다. ‘에씨, 그냥 마실 걸. 괜히 멍청하게 참아서. 아끼다 똥 됐네.’ 시작도 못 한 하루가 모두 망가진 느낌이었다.
“망했네”하며 일어서려는데 오래된 동네 목욕탕에 있던 은은한 한약 냄새가 나던 ‘한방탕’처럼 막 머신에서 내린 것 같은 고소한 커피 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욕실 전체가 커피 향을 뿜어내는 거대한 커피 머신이 된 것만 같았다. 망했다는 생각이 커피 향의 입욕제로 바뀌자 망한 하루가 호사로운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만약, 그때 짜증만 부렸다면 그 이후의 나의 하루는 어땠을까?
그날 아끼다 똥 된 커피가 말했다. 좋은 기분이 좋은 생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린 생각이 좋은 기분을 만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