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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자이너 정 Jun 03. 2023

무경력으로 두 회사에서 동시에 오퍼 받을 수 있던 이유

경력 없이 취업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UX 디자이너가 되기로 부트 캠프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하게 됐을 때, 가장 큰 딜레마는 무경력이었다. 그나마 이력서에 써져 있는 내용이라고는 부동산 일, 갤러리 일, 그리고 여기저기서 전시회를 하며 작가 활동을 한 일 외에 다른 자잘한 일들이었다. 부트 캠프에서 만든 포트폴리오는 아주 기본적인 것들만 포함된 베이스 정도의 느낌이었고, 그나마도 포트폴리오 안에 있는 케이스 스터디들은 부트 캠프 동기들과 2-3주씩 작업하여 만든 가상 케이스 스터디들이었다. 실제로 UX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2-3주 안에 끝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고 생각해도 되는데 케이스 스터디를 열고 2-3주에 걸쳐 만든 작업물이라는 것을 읽으면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는 무경력 초짜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게 된다. 물론 주니어를 뽑는 회사들 같은 경우에는 기본에 충실한 케이스 스터디들을 보면 학생작업이라는 점을 눈감아 줄 수 있지만 보통 그런 경우는 대학교에서 UX 관련 학과를 공부하거나 막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사회 초년생들의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른 직종에서 건너오는 이직자의 경우에는 그래도 갓 학교를 마친 졸업생보다는 조금 더 다듬어진 콘텐츠를 기대하게 된다. 내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특히나 다른 직종에서 이직을 하거나 대학교 때 UX 관련 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경우에는 실제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개발한 그들의 transferable skill에 초점이 더 맞춰진다. 이게 꼭 나쁜 점만은 아닌 게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하던 다른 직종에서도 어플라이 할 수 있는 스펙이나 경험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런 부분들을 중심적으로 나의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고 디자이너로서 나의 정체성과 강점으로서 어필할 수 있다면 오히려 내게 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들을 엮어 강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스토리 텔링이 잘되고 커뮤니케이션에 뛰어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UX 관련 일만 한 사람보다도 역으로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나 또한 어떻게 하면 나라는 사람을 디자이너로서 브랜딩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단순히 나의 케이스 스터디를 읊어내고 내가 UX 디자인에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는 나 자신을 상품화하여 바라보면서 인터뷰어를 나라는 상품을 사는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나의 고객에게 나의 장점을 크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심했다.


무경력자로서 인터뷰 때 인터뷰어의 마음에 좋은 잔상을 남기는 것은 스토리텔링, 대화를 주도하는 자신감, 그리고 잘 짜인 프레젠테이션이다.


스토리 텔링은 얼핏 봤을 때 전혀 연계성이 없는 나의 경험과 배경들을 나라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이다. 내가 왜 대학교 때 순수미술을 공부했고, 거기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으며,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전시회를 하며 겪은 바와, 오랜 시간 창작을 하고 작업을 하면서 비판과 피드백을 경청하고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함, 결론적으로 미술에 등을 돌린 이유(지금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다)를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 이후 나의 길을 찾아가면서 시도해 봤던 많은 직업들과 시도들, 이를 테면 미술재료를 수입해 사업을 하려다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때문에 실패했던 일, 처음 부동산 계약을 성공하고 부동산 중개업자가 된 일, 그렇게 많은 손님들과 사람을 상대하면서 얻었던 교훈들, 그 길로 시작한 로스쿨 준비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시작한 UX 디자이너로 이직 준비. 이력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조각들이 나라는 필터를 통해서 한 편의 서사로 재편집되면서 인터뷰어와 채용 결정권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하나의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대화를 주도하고 이야기의 흐름을 컨트롤하는 것은 내면에서 나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인터뷰를 하러 가면 회사에 지원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긴장하고 기가 죽고 평소에 하던 이야기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최고의 결과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여기서 배운 교훈으로 다음 인터뷰를 더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이 사람들도 한 때 나와 같은 위치에서 인터뷰를 한 사람이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 격려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갖자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내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preparedness이다. Preparedness라는 것은 곧 준비됌 이고 내가 해야 될 숙제를 마치고 인터뷰에 임했다는 것이다. 보통 빠르게 전화로 스캐닝을 하고, 얘기해 볼 만한 후보자라는 생각이 들면 첫 번째 인터뷰를 스케줄 하게 된다. 이 단계에서 보통은 프레젠테이션이라던가 따로 집에 가져가는 take home test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련 경력 하나 없이 조각나있는 이력서 내용과 내 배경을 그 사람들이 한눈에 파악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 쓰지 않게 되더라도, 간단한 나의 소개, 가장 자신 있는 케이스 스터디 요약본과 내가 이 회사에 궁금한 점 등을 포함해서 15분짜리 발표 슬라이드를 만들고 시간을 재면서 발표 연습을 했고, 마지막 5분에서 10분 정도는 그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Q&A 시간으로 남겨두었다. 아무 경력도 없는 이직 후보였지만, “15분짜리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 봤는데 한번 보시겠어요?”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한 회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렇게 틀을 잡아놓고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면 30분가량 심지어는 한 시간가량 계속되는 질문 공세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더욱이 무경력인 상태에서 그 많은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은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하지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나면 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생기기 때문에, 내가 발표한 내용을 위주로 질문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고, 내가 준비를 완벽하게 해 놨다는 전제하에 인터뷰어가 하는 질문에 아주 성실하고 바람직한 대답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어색한 정적이 흐르거나, 대답을 몰라 허둥지둥 대며 식은땀을 흘리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하는 나의 태도도 자신감 있게 변할 수밖에 없다. 가끔 대답이 힘든 질문이 나오더라도 이미 나와 내적 친밀감이 쌓인 상태이기에 인터뷰어들도 내가 한 작은 실수들에 크게 여의치 않고 지나가게 된다.


프레젠테이션을 구성할 때는 아까 말했듯이 간략한 자기소개와 가장 자신 있는 케이스 스터디 한 개 혹은 경우에 따라 두 개까지 준비하고, 마지막에 Q&A 시간을 남겨둔다. 발표 시작 전에 마지막에 5-10분간 질문 시간을 남겨두었다고 미리 알려주는 것도 프레젠테이션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질문을 하더라도 질문자가 “아까 마지막에 질문시간이 있다고 했지만… 미안하지만 너무 궁금하다”라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질문하게 되고 빠르게 대답하고 계속해서 발표를 진행할 수 있고 이런 경우조차도 아주 드물다. 처음 자기소개는 틀에 박힌 이야기보다는 좀 더 자신을 더 깊이 알아 갈 수 있는 내용들이 좋다. “어느 학교를 졸업해서 어떤 공부를 했고, 이런 경력이 있습니다”는 아주 틀에 박힌 형식이다. 내 취미, 일을 하지 않을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는 일들, 나의 엉뚱한 성격 등 회사 밖에서 친구로서 나를 만났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하면 내용을 고르기가 쉬워진다. 나 같은 경우는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린 것, 막걸리 빚는 것, 그리고 복싱을 위주로 이야기를 했다. 비 오는 날 파전과 내가 직접 빚은 막걸리로 손님을 대접하는 데서 느끼는 기쁨, 한국인으로서 나의 문화적 배경에 대한 그리움, 평소에 다른 사람들 위주로 맞춰주기만 하던 내가 복싱을 하면서 배운 내적 단단함, 작가로서 그림을 그리는 나의 자긍심, 등 나의 취미와 관심사들을 회사 밖의 나의 모습과 연관 지어서 얘기하면 짧은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좀 더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 그다음 케이스 스터디는 포트폴리오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내용을 써도 무관하다. 포트폴리오에도 올라가 있는 내용이지만, 여러분의 시간을 아끼고 좀 더 심층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이 케이스 스터디에 넣었다고 하고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팀의 일원으로서 수행하는 업무가 대부분인데 나의 역할을 어떻게 설명하냐는 것이다. 보통은 팀원과 같이 일 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너의 업무와 네가 해낸 성취를 위주로 이야기를 하라는 조언들이 많다. 분명히 좋은 말이지만 나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이 팀과 어떻게 협동했고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방법으로 함께 일했는지에 대해 얘기를 한다. 물론 팀원과 사이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지만, 나 같은 경우는 정말 합이 잘 맞는 팀과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진정한 팀워크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나는 케이스 스터디 발표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연히 나의 역할에 초점을 맞출 거었지만, 정말 좋은 팀이었고, 내가 한 일도 팀원들이 도와준 부분이 있고 그들의 일도 내가 적극적으로 도왔다. 너무 좋은 경험이었고, 무조건 적으로 팀이 함께 이뤄낸 성취라는 것을 이 케이스 스터디를 발표하기 전에 꼭 preface 하고 싶다 “고 붙였고, 이 말을 들은 인터뷰어들은 하나같이 아주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었다. 팀과 함께 한 일을 모두 다 내가 했다면서 내가 무조건적으로 중심이라는 식으로 풀어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케이스 스터디 발표를 끝낸 후에는 15분짜리 발표를 완벽하게 준비해 온 것에서 일단 좋은 인상을 남기고, 인터뷰어들은 나를 무수히 많은 후보자들 중의 한 명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알게 된 듯한 기분을 갖게 된다. 이렇게 첫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대부분 두 번째 혹은 파이널 라운드 인터뷰를 잡게 되고, 그때는 내가 첫 번째 인터뷰때 하지 못했던 회사에 관해 내가 궁금한 점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내가 따낸 네 개 회사와의 인터뷰를 모두 이런 식으로 진행했고, 그중에 3개 회사와 마지막 라운드까지, 그리고 두 군데에서 최종 오퍼를 받게 된다. 부트 캠프 졸업 후 3개월 만에 무경력으로 취업에 도전한 결과였다. 오퍼를 받지 못한 마지막 회사 한 군데는 나와 다른 후보자 한 명, 총 두 명이었는데 이런 경우는 내가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저 다른 후보가 회사에 더 잘 맞는 인재였다고 생각한다. 두 개 이상의 오퍼를 받으면 회사들과 연봉 협상을 할 때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데, 아쉽게도 내 첫 직장은 오퍼를 받았다는 사실에 심취해 딱히 연봉 네고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최근에 새로 이직하게 된 회사에서는 연봉 협상을 시도해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게 됐는데 기회가 되면 어떻게 연봉 협상을 하는지, 어떻게 대화를 시작했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를 따내었는지에 대해 한번 써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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