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투명하고 불분명한
또 한 해의 끝자락, 모든 게 불투명하다. 언제 명료했던 적 있었나? 애써 희망을 말하지만 늘 어영부영, 얼렁뚱땅 뭐 하나 야무진 매듭 없이 한 해가 지나가곤 했었다. 그러고 구체적 형상 없는 막연한 기대를 걸어 놓기.
지나온 내 인생이 늘 회색 구름 뭉텅이 아래 부슬비가 내리고 복잡한 골목들이 가지처럼 제멋대로 뻗친 거리 속 같다. 폭우가 쏟아져 한바탕 진창도 아니고, 배경에 어울리는 스릴러가 펼쳐지지도 않는, 그저 조금 더럽고 부산스럽게 사람들이 제 갈 길을 가는 데 나는 뭘 해야겠는지 모르는. 그런 잿빛의 하루들.
가끔은 내가 유령같이 느껴진다. 흔적 없이 일상을 부유하고 기억되지 않는 존재감으로 말미암아. 한 존재의 미미함은 너무나 진부한 문제지만 그 미미함을 어떻게든 버텨보려 나름 애쓰는데 결말은 늘 정해진 것처럼 미적지근하다. 해피도 새드도 아닌 엔딩.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 모른다. 반복되고 망설이고 후회하고 수치스럽고 실패하는 것. 날씨는 자주 바뀌기보다는 오래 정체된다. 깜짝 선물처럼 맑아지지도 계시 같은 한 줄기 빛이 나를 감싸는 것도 아니다. 이 회색빛 무대에서 나는 내게 주인공이지만 이 극 전체에선 아니다. 주인공이 되고픈 생각은 없지만 나도 내게 맞는 배역을 찾고 싶다. 방향을 이미 아는 이처럼 익숙하게 걸음을 떼고 사람들 틈에서 내 연기를 펼치고 싶다.
다시 익숙하게 공허하고 불분명한 연말을 맞이하며 단 한 번이라도 명료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애초에 삶은 그렇게 명확히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또 한 해가 간다. 나는 무엇을 입고 선택하고 말해야 할까. 아무도 관심 없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을 일들을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사실이 외롭게 느껴진다. 누구나 가진 자신만의 외로움임을 알면서도 그렇다.
*커버사진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