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진 Nov 28. 2023

나의 직업을 통한 감사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반복되는 거짓말로 진짜 늑대가 나타날 때 마을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양치기 소년’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로, 지금 이 시대 가짜 뉴스가 난무하는 현실에 걸맞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지난 과거에는 고정식 텔레비전과 라디오, 지면 신문을 통해 사회의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었지만, 급성장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접어들면서 핸드폰을 통해 이동하며 여러 방송 채널을 시청할 수 있다. 거기에 사람들이 관심 갖고 구독하는 영상 플랫폼은 당연 ‘유튜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튜브는 구독자가 많을수록 크리에이터에게 수입이 발생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에게 관심을 이끌만한 주제로 가까이 다가간다. 특히 사건 사고를 다루는 뉴스는 기자들의 영역이었으나 현재는 기자 외에도 일반인이 플랫폼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나는 어느 시골의 작은 마을, 언론사에서 취재와 기사를 다룬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지면 신문을 발행했지만, 신문 발행을 하기 전에 인터넷상에 쟁점이 될 만한 보도가 먼저 유포된다. 그러다 보니 현재는 인터넷신문과 영상 콘텐츠로 방향을 돌렸다. 그나마 타인보다 발 빠른 정보력으로 지역의 사건 사고를 취재하지만, 대한민국의 정부를 이끄는 정치 관련 보도는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거기에 정치적 성향이 중도를 고수하지 않는 언론사나 극단적인 유튜버들은 상대를 비방하여 정치적 기득권을 쟁취하기 위한 과장된 뉴스가 난무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극좌 우파 세력들이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일조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정치 관련 뉴스가 아니더라도 보는 관점과 대상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사람은 대다수 주관적이며 자기합리화를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또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또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무엇이 객관적인가를 가늠한다면 그 기준의 잣대는 다수 의견에 따르는 것에 무게를 둘 때도 있다. 


기자는 자기 의견을 기고로 길잡이를 제시할 수 있지만, 결론을 단정 지을 수 없고 판단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 일에 나름대로 매력 있는 것은 사실 그대로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늦게나마 가슴에 새겨진 만학도의 꼬리표도 글쓰기의 일환으로 전문 지식을 쌓고자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그렇다고 나이가 젊다면 경제적 수입을 고려하지만, 직업에 이어서 글 쓴다는 자체는 물질과 거리를 어느 정도 둔 것이 맞는다고 언급할 수 있다. 대형 언론사는 고수입이 보장된다고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시골의 작은 언론사에서 돈벌이를 생각한다면 취재와 글쓰기는 어려울 것으로 사료된다.


지난 학기에 배운 ‘30만 원으로 사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황현산 교수가 집필한 ‘어떤 시인에 대한 줄거리’는 시인들의 삶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만큼 시를 쓰면서 경제적인 측면은 그리 넉넉함을 추구하지 못할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서 황현산 교수의 시인을 향해 묘사한 ‘30만 원으로 사는 사람들’이란 내용은 왠지 정겹기만 하다. 


젊은 학생들은 꿈과 계획이 있어 문학을 전공하여 목표를 향해 펼쳐 나가지만 만학도의 꿈은 젊은 학생들에 비해 포괄적이지 못하며, 하고자 하는 길은 좁지만 그래도 나만의 목표는 설계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을 떠나 문예 창작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은 작은 것들이 지금은 그 작은 것에 소중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관심 대상에서 벗어나 무심코 지나칠 때가 있었지만, 문학을 전공하면서 스쳐 지나치지 않고 다시 한번 관심과 경청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문학을 연출하는데 나에게는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학이 가져오는 나의 변화는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마인드로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요즘 들어 취침 시간도 줄어드는데 하루도 짧게만 느껴진다. 무엇인가를 하긴 했는데 결과가 그리 만족하지 않다. 그렇다고 게으른 것도 아니고 주어진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창 시절은 내가 좋아하지 않은 과목이 다수 차지하다 보니 하루가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졌다. 그나마 즐겁게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보면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 있고... 그런 것을 보면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때 하루가 짧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내가 원하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닌듯하다.


습관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한 뒤 출근하고 하루 수 십 통의 메이링 서비스를 확인하고 취재와 글을 쓰다 보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그리고 저녁에는 틈틈이 밀린 공부를 시작한다. 반복되는 하루의 과정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일과가 동일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스스로 많게만 느껴진다. 이는 불만도 아니다. 그냥 어리광 같지 않은 어리광을 표현하고 싶은 것 같다. 누군가는 내가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가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을 말로 전하면 서서히 그 말은 어디론가 사라지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기록이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어나는 현실을 사진과 글로 표현한다. 


이렇게 문학과 기자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글을 쓴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의 초석이 되어 나의 삶까지 지도하는 것과 다름없는 길잡이 역할의 주인공이 지금의 교수님이다. 나에게는 그런 교수님들이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기억 한다. “내가 첫사랑을 했다는 것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