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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05. 2023

친구를 창조하다.



아, 물론 내가 창조한 나의 아기는 아기의 주장이 생기기 시작하면 놔주어야 할 일시적 영혼의 단짝이라고 해두자.



보통 산후조리원 2주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기는 약 생후 15~20일 안팎이다.

태어났을 때에 비해 몸무게가 1kg 정도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리원에서 보았을 때랑 또 다르게 아주 작고 연약하게만 보이는 나의 친구.

이 친구는 1부터 10까지 내 손이 가지 않는 부분이 없다.

먹고, 자고, 깨서 울다가 놀고, 먹고, 자고, 깨서 울다가 노는 비교적 규칙적인 패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일상은 규칙적이게 돌아가지 않는다.

이 작은 친구의 성장을 위해 안고 모유를 먹이거나, 혹은 분유를 타 먹이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젖병이나 공갈젖꼭지 따위의 자잘한 설거지거리가 모여서 어느덧 싱크대를 가득 채우게 되고 잠시라도 설거지나 정리를 해야겠다 싶으면 한편에서 주룩주룩 소리 없이 모유나 분유를 게워내고 있는 가녀린 내 친구.

가제 손수건은 내 친구의 턱받이가 되기도 하고 작은 이불이 되기도 하고 모자가 되기도 한다.

제 할 일을 마치고 장렬히 전사한 가제 손수건에서는 내 친구의 쿰쿰한 토 냄새와 달큼한 냄새가 풍겨온다.



아직 시력 확보가 되지 않아서 내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는데 나를 또렷하게 쳐다보는 우주 같은 눈방울이 신기해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내 친구얼굴에 비해서 비대한 내 얼굴이 매우 부담스럽겠지만 봐도 봐도 신기한 게 내가 창조한 친구인 걸 어떡하랴.



창조된 내 친구에게는 '무언가 함께 하는 즐거움' '나를 즐겁게 해줘야 할 의무' '나의 개인적인 시간을 위한 배려' 등을 기대하면 안 되는 까다로운 스타일이긴 하지만 원래 친구라는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데에서 우정으로써의 사랑이 싹트는 것이다.








아기가 클수록 나와 같은 음식을 먹고 나와 비슷한 옷을 입기 시작하고 나와는 다른 취미를 가지기도 한다.

같은 현상을 보고 나와 다르게 생각할 때.

내가 창조한 친구라는 타이틀에서 '내가 창조했다'라는 사실을 역사 속으로 묻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부모보다 더 즐거운 존재, 함께 하고 싶은 존재, 가치관이나 신념이 잘 맞는 존재가 생길 것이다.

어쩌면 하루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도 있다.

부모가 모르는 아이의 모습을 알게 되는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창조한 친구에서 이제는 '그냥 친구' 되어버린 나의 딸에게



내가 하지 못하는 게임을 즐겨하고 레벨을 높여가며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

내가 먹지 못하는 단무지를 짜장면에 돌돌 말아먹는 모습

내리는 눈에 질색하는 내 앞에서 두 팔 벌려 눈을 환영하는 모습



나는 하지 못했고, 하지 않았고, 하지 않았을 일을 곧 잘하는 나의 친구는 신기하기도 하고 이질적이기도 하다.

아기가 태어난 이래로 휘둘렀던 강력한 권한이 사라짐이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영원한 엄마만의 친구로 남는 아기는 세상을 느낄 수 없다.

세상을 가질 수 없다.

모든 생명은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 한때 창조주였음을 자만하지 말자.



그 옛날 아기의 우주 같은 눈동자가 신기해서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는데 이제는 나와 다른 우주를 만드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해서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창조주의 권한으로 아기를 나만의 친구로 여길 수 있는 시간은 이리도 빨리 끝났지만 그녀가 그녀만의 우주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나는 우리 딸의 우주에서 가장 선하게 반짝이는 별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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