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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27. 2023

우울 장애 일상 - 2023년의 마지막 정신과 방문기



2023년 한 해도 부지런히 다녔다.

정신의학과 라도 다녀야 우울장애를 치료하고 싶은 의지가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게 나 스스로를 위한 건지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은 마음인지 모르겠기에 의미와 견해를 버리고 습관처럼 방문하기로.

약 복용에 끊김이 없었고 상황에 맞게 약 용량을 조절하기도 했다.

여름 문턱에서 자살 시도와 자해하기도 했지만 겨울이 되자 차츰 안정기에 들어섰다.

갈등의 주원인이 되던 가족들과 연락을 끊었다.

연락을 끊고 한두 달은 환청, 죄책감, 두려움, 분노에 시달렸다.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을 당연스레 지켜봐 주고 묵묵히 그 자리에 있던 존재가 정신건강의학과였다.







머리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과 행동이라는 걸 아는데...
그런 생각을 막을 수 없고 또다시 잘못된 행동을 반복하는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약을 먹고도 그러는 것을 보면 좌절감도 크고요.
우리가 늘 이야기해오던 주제였을 거예요.
나를 힘들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요인들을 차단한다고 해서 내가 그것들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워지기까지는 변화와 시도, 때론 훈련이 필요하다고요.
그렇다면 전 변화하고 싶지 않아요.
혼자 있는 것이 좋고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아요.
나를 찾는 사람들이 불편하고요. 
그건 전부터 바라던 상황이고 지금도 계속 지속하는 상황이죠?
그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거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수용받았을 때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거나 불편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매번 그렇진 않을 거예요.
저도 가끔은 사람들 사이에서 힘을 얻기도 하니깐요.
근데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러 갈 힘이 나지 않아요.
힘이 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이전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해보면서 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수 있죠.
미미씨가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일들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많죠?



변화를 위해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되거나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일이 꼭 생기진 않아요.
그리고 미미씨는 항상 그런 점에 유의하니깐요.
약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큰데 더 이상 약을 증량할 수 없어요.
이제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점은 다 하고 계세요.
이제 약이 아니라 제 생각과 행동 변화에 따라서 기분과 감정이 변화될 거란 말씀이신가요?
미미씨가 불편하게 여기던 점들은 이미 약들로 보완하고 있어요.
때론 기분과 감정이 우리 몸에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미미 씨는 기분과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기분과 감정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많은 약을 먹고 있죠.
저도 언젠가 단약 하기를 바라긴 하는데... 단약 할 생각을 하면 너무 겁나네요
그건 아직 나중의 일이라고 생각하죠.
미미씨도 불편한 감정을 치료하고 싶고 지금보다 더 나은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 이곳에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와 이야기 나누는 동안 일종의 깨달음이라든지 위안을 얻었다면 이 공간에서만 한정하지 않고 이 공간을 벗어나서 다른 행동을 해보시길 권해드려요.
물론 본인이 내켜야 하는 것이지만 항상 더 편안한 감정이나 삶은 원하시잖아요.

그리고 이제 미미씨를 괴롭히던 존재와 대상은 없고 기억과 상상만 남아 있어요.
미미씨가 이곳에 오셔서 할애하는 시간과 돈은 아주 소중해요.
그것 또한 미미씨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노력이자 투자죠.
그렇기에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에 대해 두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실제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거나 다른 감정으로 환기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도 동의해요.
이제는 실제로 저를 불편하게 하는 대상이 제 옆에 존재하지 않아요.
맞아요.
미미씨가 그런 대상으로부터 벗어난 거죠.
그러니 미미씨를 괴롭게 하는 두려움과 상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요.
그러기에 내가 생각하는 두려움에 직면하거나 아니라면 다른 상황과 생각을 맞닥뜨려 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고요.



아직 더 성장해야 할 것 같네요.
지금도 잘하고 계세요.
약은 증량하지 마시고 되도록이면 필요시약도 드시지 말고 긴장이나 두려운 감정이 들었을 때 최대한 끝까지 견뎌보려고 해 보세요.
네!
3주 동안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과 고민하는 문제점은 늘 비슷하다.

어느 한계점에서 허들이나 뜀틀을 넘지 못하듯이 내가 넘지 못하는 감정의 벽이 존재하고 선생님은 내가 그 벽을 허물거나 혹은 넘을 수 있도록 조언한다.

나는 주저앉아있는데 힘내라고 손을 이끄는 응원이 아니라 함께 앉아서 기다려주는 느낌이라 마음이 편안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에 안주하기도 했지만 말마따나 나는 치료실 밖에서도 성장해야 한다.

약으로 할 수 있는 우울장애치료가 충분하다면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내년의 나는 행동할 수 있을까?

매년마다 새로운 목표를 다짐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목표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확신하지 않으련다.

나에게 행동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을 만나서 친밀감을 쌓거나 관계를 맺는 것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것

정도가 될 텐데 아직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다소 찝찝하지만 여유로움이 현재 상황이 편안해서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이런 편안한 감정을 조금 더 느끼고 싶다.

(현실에 안주하도록 나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도 엄청난 변화이다. 나는 스스로 무언가 하지 않는 나 자신을 쓰레기라 생각했다)


다만, 나에게 행동해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냥 숨지만은 않기로.

스스로 나설만한 힘도 의지도 없지만 주어진 만남이나 변화의 기회를 외면하지 않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사담으로, 나는 정신의학과 선생님의 "3주 뒤에 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세요."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나의 안정과 안녕을 빌어주는 고마운 느낌과 살아있으라는 따듯한 말의 힘을 느껴진다.

누군가의 삶에 안정을 줄 수 있는 능력은 얼마나 큰 값어치인지...

한 해도 나의 살아있음에 일조해 주신 선생님도 건강하고 편안하게 2023년을 마무리하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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