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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18. 2023

우울 장애 일상 - 1년만에 외출




명명백백 분리하자면 난 대인기피증, 즉 사회불안장애가 아니다.

대인기피증은 대부분 사회적 상황에서 긴장과 불안을 경험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 받을 수 있는 상황이나 무언가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불안감, 두려움, 수치심을 갖는 것.

불안감을 일으키는 상황을 피하고자 노력하게 되면서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데 이것이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대인기피증은 진단기준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DSM-IV-TR, 2000).


(1) 하나 또는 그 이상 사회적 상황이나 활동 상황에 대해 지속적인 두려움이 있다.

(2) 두려운 사회적 상황에의 노출은 거의 매번 불안을 유발한다.

(3) 자신의 공포가 지나치거나 비합리적임을 인지하고 있다.

(4) 공포스러운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려 하고, 피하지 못하면 불안과 고통을 경험한다.

(5) 이로 인한 고통이 직업적, 기능적, 사회적 영역을 심각하게 저해하거나 공포로 심한 고통을 받는다.

(6) 18세 이하인 경우 기간이 6개월 이상 되어야 한다.

(7) 공포나 회피가 물질이나 일반적 의학적 상태로 인한 것이 아니며 다른 정신 장애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

(8) 만약 일반적 의식적 상태 또는 다른 정신 장애가 존재할 경우, 진단 기준 (1)에서의 공포는 이것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사회 불안 장애 [social anxiety disorder]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나를 집 안으로 이끄는 것은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우울장애로 인해 사회적 역할 수행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진 탓이다.

게다가 가족들간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한 20살 무렵부터 우울장애로부터 오는 신체화증상과 무기력, 불면증상이 심해지면서 밖으로 나갈 에너지가 고갈됨을 느꼈다.

사회적 상황을 수행 하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없다.

'일' '업무적'으로 사람을 만나야 할 때는 싫고 좋음의 주관적 견해 없이 외출하고 있고 외부에 노출되었다해서 불안감이 유발된 적도 없다.

게다가 바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내가 참전해 있는 이 전쟁터의 존재를 알지 못할만큼 나는 아프지 않아 보이는 사람이다.



다만 내가 존재 하는 상황 자체가 불안하고 숨쉬며 사는 '지금 이 순간'에 비관적이라 외출 할 수가 없었다.

길을 걸으면서도 죽지않고 살아 있음이 슬퍼 울었다.

고층을 올려다보면 낙하의 두려움을 느끼는 자신이 한심 했다.

아무렇지 않게 바깥에서 활동 하는 사람들이 경멸스럽고 동시에 나약한 내가 부끄러웠다.



죽고못살던 분신처럼 느꼈던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거나 흥미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아주 가까운 사람들도 마주하기 싫었다.

외출했을때 엄마의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올때나 긴장감이 엄습할때면 공황장애를 일으켰기 때문에 나의 병적인 모습을 노출 시키고 싶지 않기도 했다.

20살때도 약 일년동안 바깥에 나가지 않고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었을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자살충동이 너무 강해서 한번도 외출 약속을 하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언제쯤 외출을 하게 될까 기약이 없었는데 1년만에 외출 하게 된 계기는 별 다를 것이 없다.

이 나이쯤 되니깐 기본적인 경조사마저 참여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완벽한 고립을 뜻한다.

나 스스로를 놔버릴 수도 있음을 뜻하더라.

20년지기 친구의 결혼소식, 그러니깐 청첩장을 꼭 만.나.서. 전해주고 싶다는 말은 마지못해 나를 일으켰다.






친구들과 늘 만나는 종로5가가 약속장소로 정해졌다.

부모님이 종로에서 가게를 하기도 했고 광화문과 종로에서 회사를 다닌 적도 있으니 언제와도 익숙한 곳이다.

지금은 가회동~익선동~을지로를 따라서 젊은 세대들의 감성으로 많이 바뀌었다지만 내 눈엔 25년전과 비슷하다.

특유의 냄새와 언제나 붐비는통에 서로의 팔뚝이 닿아야 하는 1호선 지하철.

할아버지라고 하기엔 젊고, 아저씨라고 하기엔 고된 주름을 가진 남자들이 허름한 바람막이를 입은 채 침을 찍찍 뱉으며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던 노상에 그들은 없지만 멀지 않은 어딘가에서 술잔에 하루를 따르고 있을 것이다.



더이상 옛날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는 옛날 기억을 막을 수 없어서 종로에서는 만나지 말자 했건만 우리는 익숙한 것을 따른다.

어릴 적 그랬듯이 종로로 모인다.

모양새가 꼭 탑골공원을 서성이는 비둘기 같다.



친구들은 1년반만에 만나는 것이다.

그 사이에 결혼을 준비하는 이도 있고 업무 차 외국으로 출국한 친구도 있다.

자기 가게를 차려서 새출발을 시작한 이도, 자기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친구도 있다.

나는 변한 것이 없다.

나만 변한 게 없다 했더니 친구들은 내가 제일 변했단다.



나는 미미가 이렇게 일찍 결혼 할 줄 몰랐지~ 벌써 초등학생 엄마구?
그래, 엄마되더니 얘도 많이 얌전해졌어. 크크크.
옛날에는 진짜 어디로 튈 줄 몰랐는데~ 애들이 너 닮으면 애들 무지하게 쫓아다녀야겠다.



친구들 입을 통해서 듣는 나는 낯설다.

그때 나는 어떤일이 있었는지 생각나지 않고 하루하루 죽고 싶었던 감정들만 떠오르는데 친구들은 내가 했던 일, 말, 글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쾌활하게 하루를 지냈는지, 누군가를 다정하게 챙겼는지, 따듯하게 편지를 쓰거나 글을 썼는지, 낭만이 넘쳤는지 따위를 들으니깐 약간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눈물이 왈칵 날 뻔 했다.

나의 하루는 남의 눈에는 온화하고 따듯하고 열정적이었는데 정작 나에게는 지옥 같았기에.

괴로운 현실에 울부짖던 발악은 남들에게 쾌활함으로 비추어졌다.

내가 받고 싶었던 온정을 나누었을때 나는 따듯한 사람으로 보였고 마음이 터질 것 같아서 쓰는 시나 글 따위는 나를 낭만적으로 포장해줬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날 더 소중하게 생각해주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항상 그 자리에서 그대로라고 생각했고, 친구들이 너무 변해버려서 쫓아갈 수 없다 생각했다. 앞서 나가지 말라며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대로였고 내가 바꼈다는 걸 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네가 결혼을 하게 되면 내 친구 보다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써의 역할이 더 우선될거야.
그게 당연한거고 그렇게 되어야 하지만 난 그것에 서운함을 느낄지도 몰라.

가장 먼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난 친구의 부재감에 따른 두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장난하냐?
물론 내가 있는 곳은 달라지겠지만 너랑 내 사이가 어떻게 변해겠어?
나는 너가 나에게 온다면 항상 똑같을거야 

미미야
나는 너가 꼭 사라져버릴 것 같았어
항상 갑자기 사라지고 나타나고 사라지고 나타났으니깐.
나타날때마다 넌 변해있었는데 너가 원하는 꿈에 다가가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어
그래도 넌 언젠가 사라질 것 같아
근데 안그랬으면 좋겠어
내가 그냥 그 자리에서 기다릴게



나는 아직 살아있음 자체가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살아 있는 것

자해 하지 않는 것

옛날 기억을 떠올리지 않는 것

적당히 자고 적당히 먹는 것

아무일도 없으니 아무 고민 하지 않는 것



당연한 것들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되도록 나는 계속 약을 먹고 치료 받고 스스로와 싸우고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승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조금 부끄러워진다.



1년만에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비어있던 가방에는 청첩장과 친구들의 배웅이 담겨있다.

살아 있으면 이런 외출을 하는 날도 있다.

적당히 잘 먹고 적당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외출.

이런 감정과 느낌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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