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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 Dec 12. 2023

우울 장애 일상 - 나에게 칼을 들이대는 사람들



며칠 전, 새엄마 생일선물로 꽃다발을 샀다가 '허투루 돈을 썼다' 며 쇠자로 맞은 초등학생의 기사를 봤다.

꽃다발은 미움과 증오의 칼날 끝에서 산산조각 나버렸겠지.

쓰레기통에 처박혀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는 가정학대로부터 구조되어 친척들과 살고 있다는데 쇠자로 맞고 밥을 굶어야 했고 성탄절날 집에서 쫓겨났을 때 기억도 구조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미움과 적대감의 칼날을 쉽게 들이대고 그 칼을 마주한 사람은 오랫동안 칼날을 마주 보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 칼날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 수도 있고, 나 스스로 그 칼을 잡아서 나를 찌를 수도 있다.






나에게도 나를 위해서 나에게 칼을 들이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조언은 너무나 날카로워서 마음이 아팠다.

말에도, 마음에도 형체가 있다면 그 말은 아주 섬세하게 갈아진 칼날 같은 것이고 내 마음은 회가 떠지듯 정교한 칼날에 포가 떠져 있진 않을까?

대놓고 칼로 마음을 찌르는 짐승 같은 인간들도 있지만 움푹 찌르지 않고 가늘게 베어버리는 인간들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회사에서 듣는 은근한 압박

기분 나쁘지만 반박하기 오묘한 비아냥

핏줄임에도 물보다 진하진 않은 친척들의 간섭과 미화된 추억들

희생을 사랑과 배려라고 생각하는 가족들

가만히 있으니깐 우정도 가만히 있는 줄 아는 친구의 청첩장



뭐, 지금 생각하자면 대충 이런 것들.

나에겐 '너를 위해서 하는 말' '네가 세상물정을 몰라서 해주는 말'을 해주는 엄마와 언니로부터 칼춤이 시작된다.






모든 가족들과 15살 이상 차이나는 나는, 그들의 성숙함에 가히 도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에 대한 이야기나 나를 위한 이야기 대부분, 나의 미숙함을 비웃거나 꾸짖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상황 회피하기, 나에 대한 이야기 주제를 돌려버리기가 일상적이었다. 내가 아무 얘기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6살 때인가 7살 때인가

엄마생일에 꽃다발을 샀다.

어린 내가 볼 때, 엄마가 꽃을 좋아한다고 느꼈고 매일 일만 하는 엄마에게 '꽃'은 너무나 이색적인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엄마는 감동받았다.

엄마는 살면서 꽃다발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면서 지금까지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꼈다.

곧이어 언니는 알지도 못하는 애가 바가지 쓰고 꽃을 샀다며 내 손을 잡고 꽃집으로 쳐들어(?) 갔다.

애한테 바가지 씌운 거 아니냐며 꽃집 사장과 언쟁을 높이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무언가 했기 때문에 나는 또 잘못한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다음 해에는 엄마 바지를 샀는데 엄마는 당장 가서 환불했고 그 옷가게를 지날 때마다 "고마운데 앞으로 생일선물 사지 마라"라고 했다.

아버지 생신때 드렸던 핸드폰 고리는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박혔고.



언니들이 하는 이야기에 한마디 거들기라도 하면 "우리니깐 네 얘기 들어주는 거야. 어디 가서 얘기하지 말고 있어라"며 나의 대인관계를 아주 날카롭게 코칭해 주었다.

나는 나서는 게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커가면서 언니들은 내가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게 문제라고 했다.

나는 눈물이 많은 아이였던가?

내가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큰언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마다 큰언니에게 꿀밤을 맞았다

큰언니가 결혼하지 않고 우리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9살, 이불에 돌돌 말려서도 맞아보고 재수 없으니깐 신혼집에 오지 말라고도 들어왔다.

그 후로 큰언니를 그리워하며 울었던 적이 있는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상황에 감정을 숨기는 것이 나에 대한 비난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는데 성장하고 보니 이 방법은 그들의 칼날로 나를 찢고 있는 것과 똑같았다. 나는 성격도 자기주장도 생각도 , 무엇하나 분명함 없이 희미하게 자라났다.



너는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몰라

네가 뭘 알아, 내가 해봤어?

너는 공부밖에 안 해봤으니 사회를 몰라

너는 엄마가 사랑해 주잖아

너는 아버지가 살아있어서 먹고살 만하잖아



내가 알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내가 모른다 해서 나를 얼마나 많은 칼날에 마음을 베었던가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그때 몰랐던 무엇을 더 알게 된 거지?






사람들은 언제고 마음이 베일 수 있고 마음을 베어버릴 수 있다.

나 또한 누구에게 칼날을 겨누었을지 모른다.

사실 우울장애를 앓으면서 청소년기부터 20대 초반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많이 미숙했고 많이 실수하지 않았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칼날을 겨눈 적이 있다면 기꺼이 그 칼날을 빼서 나에게 돌리리.

나로 인해 생긴 상처가 있다면 사죄로 어루만지고 그처럼 아파해주리.

나 역시 상처를 돌보지 못했고 지금도 돌보지 못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나로 인해 이처럼 아픈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상처를 돌볼 여유와 성숙함은 없지만 나는 나의 과오를 사과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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