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외국인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말하는 관점의 변화
“Annyeonghaseyo!
I’m Wilson, nice to meet you!”
저는 저를 소개할 때 장난스럽게 영어로 소개하곤 합니다. 특히 출근 첫날을 맞이하는 디자이너와 아이스브레이킹하는 자리에서 말이죠. “잠깐만, 영어로 해야 돼요?” 하며 당황하는 표정을 보는 게 정말 재밌거든요. 그래도 신입분이 도망가기 전에 한국어로 바꿔 말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다시 제대로 인사해보자면,
안녕하세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윌슨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프로덕트 디자이너입니다. 한국에서 일한 지 5년이 되었고, 최근 2년 동안
삼쩜삼 디자인팀의 일원으로 일하게 되어 매우 영광입니다!
외국에서 커리어를 쌓는 경험은 분명히 많은 도전의 기회를 줍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안락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해 내야 하는 도전이 따르기도 합니다.
사실 한편으로는 외국인이 아니어도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커리어를 시작한 후 변화의 여정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니어 디자이너는 경력을 쌓이면서 점점 UX 이론보다 현장 경험에 의존하게 됩니다. 어떤 이론은 실제 현장에서 실효성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효과적인 디자인 툴이 나와서 몇 년 넘게 쓰던 툴을 버려야 했던 순간들을 기억하시나요? 사업의 유형, 조직 문화, 함께 일하는 매니저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우리가 지금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줍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이 우리 각자를 특별한 디자이너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외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일하는 이 독특한 경험이 디자인을 보는 관점과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언어 장벽과 문화 차이를 극복하면서 한국인 디자이너와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디자인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의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는 경험을 접해볼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인사이트 중 일부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국인이 아닌데 어떻게 한국인 사용자를 위한 디자인을 할 수 있나요?”
같은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저도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외국인으로서 한국인 사용자를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 많은 UX 전문가가 마주하는 함정인 허위 합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를 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사용자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사용자를 과대표하는 경향이 높아져 잘못된 디자인 솔루션을 내놓게 됩니다. 사용자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의적인 판단에만 부합할 뿐인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예시를 준비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사람을 위한 앱 디자인을 맡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양이를 싫어하지만 고양이 애호가를 위한 앱을 디자인해야 한다면 공감을 할 수 있을까요?
역할극 또는 사용자의 입장을 내면화하려는 시도는 사용자를 깊이 이해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제대로 된 사용자 공감법을 알아보기 위해 심리학자가 자폐를 가지고 있는 아동을 이해하는 방법을 예시로 들어보겠습니다. 심리학자는 자신에게 대입하여 자폐 아동을 이해하기보다, BOS(행동 관찰 검사표)라는 세심한 행동 진단 도구를 사용해 행동 패턴을 분석합니다.
한국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와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사용자를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심리학자처럼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면 사용자의 사고 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됩니다. 디자인이 심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크기가 큰 텍스트와 대비가 강한 색상이 저시력자들에게는 필요한 디자인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본인은 세련되고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해도 귀여운 캐릭터와 카피라이팅이 UI에 필요하다면 그렇게 디자인을 해야겠죠. 성숙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 자신과 사용자의 요구를 분리하는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외국어로 일을 할 땐 언어 장벽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한국말로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말이 막힐 때마다 한국인 동료들처럼 유창하게 설명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디자인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유능한 디자이너라고 생각했거든요.
부분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만약 디자인의 최종 목표가 상사나 동료를 설득하는 것이라면 말이죠.
카리스마와 발표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용자가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디자이너들에겐 사용자에게 사용 방법을 직접 설명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스티브 크루그가 책 "사용자를 생각하게 하지 마! (Don't Make Me Think)"에서 말했듯이, 웹 페이지는 자명(self-evident)해야 합니다. 즉, 대부분의 사용자가 화면을 보기만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바로 인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자명하게 만들 수 없다면, 적어도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사용자가 조금만 생각하면 될 정도로 명백(self-explanatory)하게 디자인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디자인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다르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디자인 그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하듯이 버튼에 적합한 카피라이팅을 사용하고, 화면에 적합한 제목을 사용하고, 적합한 정보 구조를 설계해 사용자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용성 테스트의 가장 큰 목적은 제품의 사용성 문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은 번거롭고 많은 시간을 필요로하기 때문에 바쁜 UX/UI 디자이너라면 선호하지 않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팀의 규모가 크다면 UX 연구원이나 CS 매니저가 배정되어 테스트 결과를 알려주고 수정이 필요한 기능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내용일 수 있습니다.
UX 리서처: "사용자가 이 버튼을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따라서 가시성을 개선해야 합니다.”
CS 매니저: "이 버튼을 내비게이션바 아래에 숨겨두면 사용자가 찾지 못해서 답답해할 거예요."
위 테스트 결과에 나타난 사용자의 페인포인트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나요?
서면 보고서를 보거나 팀원의 피드백을 듣는 것보다 직접 관찰한 사용자의 행동과 말 속에서 더 큰 임팩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특정 기능의 사용성 문제를 지나친 적 있습니다. 사용자가 버튼을 찾느라 20초나 허비하고 답답해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사용자를 직접 관찰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규모와 중요성이 드러났고, 개발 리소스가 제한된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우선순위로 정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성 테스트나 인터뷰는 디자이너와 사용자 사이 연결고리를 만들고 그들을 깊이 공감할 기회를 줍니다. 언어 장벽으로 인해 사용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머뭇거림, 답답해하는 표정 등 비언어적 표현이 때때로 사용자의 말보다 더 큰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어를 잘 알지 못해도 사용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사용자와의 작은 접점 역시 공감과 긴밀한 소통을 이루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얻은 인사이트가 여러분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서로 다른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기술과의 상호작용 안에서만큼은 비슷한 심리, 인지, 행동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이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포용적인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 검토 : 이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