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배롱 여행기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드라마는 <미스터 션샤인>이다.
그래서 드라마 방영이 끝나자마자 <미스터 션사인> 촬영지라는 곳은 전국 곳곳 찾아다니며 드라마의 여운을 느끼곤 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바로 논산이다. 곳곳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촬영지들이 있었지만 어찌 됐건 <미스터 션사인>의 핵심인 근대 한양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곳. 두 주인공이 거닐던 거리와 글로리호텔, 그리고 동매가 있었던 곳까지. 논산의 선샤인 랜드다.
당연히 다녀왔다. 드라마만큼이나 촬영지는 마음에 쏙 들었고 개화기 의상을 빌려 입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관광객들을 구경하며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온 것 같은 착각도 들었더랬다.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 논산은 <미스터 션사인>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계기로 그 이미지가 바뀔지도 모르겠다. <미스터 션사인> 촬영지에 가려져 미처 몰랐던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소들. 특히 배롱나무가 예쁘게 핀 그 장소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봅시다, 배롱.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종학당이라는 곳이다. 종학당은 집안 자제들을 위한 사설 교육 기관이다. 파평 윤씨 윤순거가 자신의 땅에 파평 윤씨 자녀와 친척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일종의 사립학교인데 그 위치가 기가 막히다. 이래서는 공부가 되겠나 싶을 만큼 종학당에 걸터앉아 보는 경치는 참 아름답다. 앞으로는 저수지가, 뒤로는 산이 있어 휴양 즐기기엔 딱이다.
이 아름다운 경치 때문인지 여러 드라마 촬영이 이곳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종학당을 관리하시는 분께서 귀띔해 주시길, 우리 가족이 간 전날에도 드라마 팀이 하루종일 촬영을 했단다.
좋은 경치만큼이나 종학당은 아름다운 배롱나무로 유명하다. 배롱나무를 찍으러 이곳으로 출사를 오는 사람들도 많다.
배롱나무의 꽃은 여름에만 볼 수 있는 꽃이다. 개화기간이 100일 정도여서 백일홍이라고도 불렸다는데 백일홍이 지금의 '배롱'으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주로 남쪽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배롱나무는 지난번 전주 여행 때에도 많이 봤었더랬다. 눈 돌리면 배롱나무였으니까.
그런데 논산 종학당의 배롱나무는 조금 다르다. 일단 보호수로 지정된 배롱나무의 수령은 200년이다.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나무의 수형도 예쁘게 잡혀 있었다. 마치 오래된 소나무가 그 위용을 뽐내듯 이 배롱나무 역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활짝 피어 있었다.
여기에 기와의 곡선과 어우러지니 그 아름다움은 배가 될 수밖에. 고즈넉한 분위기에 배롱꽃 피어있는 경치를 즐기시려면 종학당을 꼭 방문하시길 추천드린다.
또 다른 배롱나무 맛집은 근처에 위치한 명재고택이다.
앞서 종학당을 세운 윤순거의 아들, 윤증 선생이 지어 그의 호 '명재'를 따 명재고택이라 부른다. 그런데 짓기만 하고 윤증 선생이 진짜로 살았던 곳은 고택 옆의 초가라고 한다. 임금이 18번이나 벼슬을 제안했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성격을 알 것도 같다.
양반 가옥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명재고택이지만 후손분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이라 안을 구경할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후손분들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하니까. 그저 담장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요리조리 눈에 담아두는 수밖에.
그 아쉬움은 배롱나무로 달랠 수 있다. 명재고택 입구에 멋진 자태를 뽐내는 배롱나무 한 그루. 시기가 조금 늦은 터라 흐드러진 배롱나무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아름다움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