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한 마디

잠들기 전, 하루치 수다 - 또다시 길어지고 있는 주저리주저리 일기

by 블랙스톤

언젠가 한 번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쓰지 않았던 글이다.


여전히 지나고 보면 시간은 빠르다.

하루는 지겹고 지루하기만 한데 돌아본 일 년은 겨우 한 문장으로 요약이 되고 만다.


십 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기술을 배우다 좌절해서 일 년 놀았으나 텅장에게 밀려 다시 일을 시작했습니다.


퇴사 직후부터 지금까지의 일이니까 거의 2년에 가까운 일이 한 줄을 겨우 채운다.


인생은 다시 표류하고 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뭐라도 쓰기 위해 시간을 낸다. 그리고 그 시간에 이런저런 망상과 함께 글을 쓴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은 없다. 그저 매일을 쌓아 올린다. 전에는 걷는다는 생각이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에 걸맞은 글을 썼다. 공모전에 맞춰 글을 조형했다.

지금은 쌓아 올리는 느낌이다. 걷는 것은 방향이라도 잡게 되지만 이건 쌓아 올리는 거다. 그냥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그저 아구를 맞춰서, 어제에 이어서, 허공으로 쌓아 올린다.

공모전을 바라볼 때의 회사는 그저 다니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회사원이 하루의 여백에 글을 끄적이고 있는 느낌이다. 결국, 그렇게 되었네.


책상 위는 언제나 어질러져 있다. 나만 아는 방식으로 물건을 툭툭 던져 놓는다. 왼쪽에는 정리된 물건, 오른쪽에는 바로 들고나갈 물건. 애매한 건 가운데에.

오른쪽에 쌓인 물건 중 가장 오른쪽에는 로또가 몇 개나 쌓여있다. 사놓고서 확인도 안 한 종이들. 어차피 안 될 거니까. 그런데 또 생각나면 혹시나 싶은 마음에 사게 되는 그것.


지금의 글쓰기는 내게 로또 같은 것인가 보다. 혹시나 싶어서 자꾸 하게 되는데 확인도 해보지 않는 간절함.


이래서 조금 대충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어쩌다 보니 난 또 진심으로 일을 하고 있다.

하긴 애초에 예상했던 일이기도 하다. 손에 익을 때까지만 집중해 보자,라고 내게 다짐했던 일이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간다.

일 년이나 했음에도 손에 익지 않을 리는 없으니 그냥 편한 걸 하는 거다. 하루를 관찰하고 생각한 것들과 엮어서 글로 만드는 것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게 편하니까.

그렇게 난 다시 회사원이 된 거다.

시간에 여유가 나면 친구들의 부름을 거절하지 않는다. 술을 마시고 회복하는 중에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머리가 아프니 다시 글을 쉬게 된다. 친구들과의 시간은 편하고 좋으니까.


글쓰기는 재밌다. 나를 즐겁게 한다. 행복하게 한다. 그렇지만 내 경제적 활동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마음의 가장 안쪽에 넣어두게 된다.

내 책상처럼 가장 안쪽에, 왼쪽에, 정리된 물건들 사이에 놓아둔다. 정리를 해두었기에 손이 잘 가지 않고 자꾸 눈으로만 보게 되는 오래된 물건처럼.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늘 자꾸 눈이 가고 생각만 하던 것을 정리한다. 내 마음을 조금 다잡아 본다. 더 열심히 써야지. 방향에 맞춰서 써야지.


'이바구'는 사실 단편 소설집으로 생각했던 소재였다. 뭐 하나라도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공모전마다 다 덤벼보기 위해 만든 체계였다.

처음에는 '천일야화'처럼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들을 쭉 나열하려 했다. 누보로망이나 엽편 소설, 혹은 미니 픽션 방향으로 틀을 잡았다. 쓰다 보니 전혀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말이 많다. 현실에서 느끼는 것들을 말해봤자 알아봐 주지 않기에 글에다 다 토해내는 건지, 글에서도 말이 많아진다.

자연히 글이 길어진다. 글이 길어지면서 설정이 생기고 허술한 설정을 싫어하는 성격 덕에 한두 번 쓸 이야기에 보여주지도 않을 뒷배경을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배경을 그려놨으니 보여줄 글을 쓰는 것은 서너 시간이면 뚝딱이다.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버려지는 배경이 한 무더기가 된다.

아까우니 언젠가 비슷한 배경이 필요하면 또 가져다 쓴다. 결국 참신하지 못한 글이 튀어나오고 나는 내 습관에 발이 묶이게 된다.


그래도 쓴다. 허공에 쌓아 올리는 시기이기에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

말은 해야 전해진다. 전하지 못한 말은 마음에 남아 그 자리를 움푹 파이게 한다. 말을 글로 예쁘게 성형하는 과정을 숨 쉬듯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말, 어떤 마음이든 모두 글로 예쁘게 성형해 낼 수 있어야, 그래야 작가가 될 수 있겠지. 그런 면에서 난 아직도 독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이바구'를 일주일에 한 번 연재하고 비정기적으로 시나 괜찮은 문구를 올리고, 판타지 소설 하나를 쓰는 것이 처음의 구상이었다. 그러다 여유가 나면 일기도 한 번씩 쓰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편 쓰기도 버겁다. 막상 쓰는 데는 서너 시간이면 되는 것이 구상하는 데만 일주일 가까이 걸린다. 위에서 말했던 보여주지도 않을 배경에 힘을 쏟고 있는 탓이다.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나에게 설명하기 위함이다. 배경 좀 대충 잡아도 된다. 보이는 부분만 쓰자. 애초에 나는 짧은 글을 쓰기 위해 시작한 거다. 지금은 어디가 단편 모음이냐.

글로 써서 박제해 두면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질 때마다 조금 자제가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다.

반대로 이걸 써놓으면 짧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것에 집착할 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쓰지 말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해야지. 뭐. 어쩌겠나.


'이바구'는 계속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터는 용도로 계속 쓸 예정이다. 가끔 시나 짧은 묘사를 써서 올리는 '닿지 못할 말'도 하나 굴릴 생각이다. 판타지는 모르겠다. 일기는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쓴다. 쓸 예정이다. 그리도 되도록이면 짧게 쓰려고 노력할 거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편이 아니라 두 편 혹은 세편이 될 수 있도록 해봐야지.

혹여 한편이 올라가면 그건 또 말이 길어진 거겠지. 하루의 어디쯤에 서서 주저리주저리 미친 듯이 털고 있는 거다. 지 혼자 히죽거리면서.


인생은 쉼 없이 돌아가는 거고 잠깐 쉬고 싶다고 쉬어버리면 그 쳇바퀴에 털썩 앉아버린 대가로 이리저리 정신없이 굴러다니게 된다.

일 년을 쉬며 통장을 텅장으로 만들었다. 십 년 경력은 단절되었고 나름 대기업을 다니다 직원 대여섯 명인 회사로 들어왔다.

그 대가로 나는 글쓰기를 얻었다. 바친 건 여러 가지인 것 같은데 얻은 게 너무 적다.

그래서 조금 더 얻어보기로 했다.

얻기 위해선 더 머리통 터지게 들이박아 봐야지. 공모전도 다시 확인해 봐야겠다.


오늘의 글은 다짐이다. 바라는 글이기도 하고 간절하게 목표를 설정해보는 글이기도 하다.

결론은 항상 같다. 더 열심히 써야지. 다 때려치우고 글 쓰러 왔으면 더 열심히 써야지.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좋지 못하면 방향성의 문제니 다시 한 번 점검해야지.

알지만 하기 어려운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글이다.

그렇게 출근 전 새벽에 앉아 주저리주저리 주접을 떨고 있는 글이다.


아, 이제 살살 졸리네. 너무 일찍 일어났나.

-제목은 짧게인데 전혀 짧지 않다. 여전히 나는 수다쟁이, 누군가에게 말을, 마음을 전하고 싶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