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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Oct 26. 2023

낯선 두 사람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2

 

선선한 가을 이후로 이현의 게스트 하우스에 손님이 끊긴 지는 오래되었다. 


 “엄마는 겨울이 싫어.”


 “왜? 겨울엔 일도 안 해도 되고 놀면 되는데...”


 “재이야. 어른이 되면 말이야.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해야 돈을...”


 이현은 말끝을 흐렸다.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현의 대답을 기다리는 재이에게 굳이 ‘돈을 못 벌어 걱정’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엄마도 노는 게 좋지. 하지만 사람들이 오면 더 북적이고... 그냥 사람 사는 것 같잖아.”


이현은 대충 둘러댔다. 하지만 재이에게 거짓말은 잘 통하지 않았다.  


 “에잇... 거짓말.... 엄마는 그럼 이 마을에 왜 왔어. 언제는 조용해서 왔다며. 사람들 많이 없어서...”


 “... 이 녀석, 아까 엄마가 하라는 숙제는 다 했어?”


 이현은 시키지도 않은 숙제로 화제를 바꿨다. 


 ‘그래,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비수기가 되면 돈을 못 벌어서 걱정이긴 하지만 정작 거문마을에 온 이후로 정말 돈이 없어서 밥을 굶은 적은 없었다. 여긴 낯선 사람에게도 인심이 좋았다. 이현이 거문마을에 정착한 것은 아름다운 해안 때문만은 아니었다. 


 “벌어지지 않은 일에 미리 걱정하지 마.” 


 작은 꽃집 할머니가 이현에게 늘 하던 말이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고, 쉬어갈 거면 이왕에 잘 쉬어.” 


 라니 엄마가 자주 하는 말이다. 

 

 거문마을 사람들은 싸우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평생 싸우기만 한 이현에게 '받아들이는' 일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 같은 날은 이현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주말 동안 커피도 없이 지낼 생각에 애꿎은 자신의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아! 맞다! 라니집에는 커피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현은 김이 서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려 간밤의 추위를 이겨내고 서있는 자전거를 바라보았다. 


 ‘아침부터 꽁꽁 언 자전거 타고 달리려면 단단히 무장을 해야겠군.’ 


 이현은 자전거 뒤로 새워둔 자신의 차로 시선을 옮겼다. 네 개의 문짝에는 각기 다른 긁힌 자국들이 선명한 딱 봐도 오래된 차였다. 이현에게도 매서운 바람을 막을 수 있고 자전거보다 훨씬 빠른 차가 있었다. 문제는 재이였다. 재이가 어릴 때부터 재이는 차멀미를 하곤 했다. 이현은 재이를 차에 태우고 다니려면 언제든 토를 받아낼 비닐봉지, 뚜껑 달린 빈 통, 깔끔한 재이의 입을 바로 닦을 휴지들까지 모두 짧은 재이의 팔이 닿는 곳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현이 아무리 준비를 단단히 하였더라도 혼자 모든 뒤처리를 해야 하는 재이를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현은 차를 탈 일을 아예 만들지 않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재이를 마을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준 후 곧장 집으로 와 이현 혼자 차를 타고 도심으로 나가곤 했다. 재이가 좋아하는 곰보빵도 사고, 동네 서점에도 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필요한 책을 얼른 계산해 올 뿐, 여유 있게 구미에 당기는 책을 열어 볼 시간은 없었다. 모든 볼일을 제시간에 마쳐야 이현이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코스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단골 카페에 가서 그날의 커피를 한잔 마시며 천천히 일주일을 버틸 커피원두를 고르는 것이 이현의 마지막 코스였다. 모든 쇼핑을 끝낸 후 카페 문을 나올때면 왠지 모르게 매일 듣던 방울 소리도 더 경쾌했다. 이현이 나온 카페 안에는 그녀가 세심하게 고른 커피원두의 향이 남았다.


 ‘주말 동안 마실 커피원두도 남겨두지 않다니...'


 이현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질끈 묶었다. 그리고 재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재이야. 라니 얼굴도 볼 겸 한번 다녀오자.”


 재연이가 옷을 입느라 분주해진 엄마를 보며 한마디 했다.


 “싫어. 나는 안 가고 싶어.”


 “그래 추운 겨울 아침에 커피를 가지러 가고 싶진 않겠지. 당연해.”


 “응, 너무 춥단 말이야.”


 “그래. 맞아. 하지만 라니네엔 만화책이 많을 텐데? 너 알지? 라니 아빠가 만화책 자주 사 오는 거. 오늘 가면 몇 권 빌려올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때로 많이 좋아하는 대상을 들키는 일이 종종 약점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현은 조금 전에 들었던 재이의 약점을 이용한 샘이었다. 다행히 재이는 만화책이라는 말에 바로 마음의 빗장이 풀린 듯 보였다. 재이는 순순히 하나뿐인 겨울잠바를 다시 입혔다. 등 쪽으로 영어로 상표가 새겨져 있는 단조로운 검은색 패딩이었다. 벗었던 옷을 다시 입는 재이의 얼굴에는 귀찮음과 설렘이 공존했다. 이현의 눈에는 재이의 설렘이 더 커 보였다.


 “라니네 다녀와서 아침 먹자. 너는 만화책 보고, 엄마는 커피 마시고?”


 “좋아.” 


 재이가 입꼬리를 올리고 씩 웃으니 입술 안으로 하얀 이가 드러났다. 

 두 사람 모두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밖으로 나왔다. 검은색 자전거를 만져보니 아직은 차갑다 못해 얼음 같았다. 마치 냉장고에 얼려둔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대는 느낌이었다. 이현이 두툼한 장갑을 주머니에서 꺼내 끼고는 재이를 먼저 뒷 안장에 앉혔다. 재아기 6살 때 산 유아안장이 아직도 쓸만했다. 이 시골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귀한 물건이기도 했다. 이현은  장갑을 낀 손으로 재이의 안장을 여러 번 문지른 후에 입에 바람을 한가득 넣어 안장을 향해 불었다. 따뜻한 입김이 차가운 안장 위에 앉았다. 재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엄마의 행동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자 타볼까?”


 대답이 없었다. 재이는 귀마개를 하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귀여운 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어? 머라고?"


 “자 이제 탈까? 귀여운 곰?”


 “응?... 응!” 


 복숭아빛의 두 볼이 씰룩거리더니 작은 입술이 주욱 찢어지며 눈은 반달이 되었다. 콩같이 작은 코도 덩달아 찡긋했다. 다리를 굽혀 재이를 번쩍 안아서 뒷안장에 앉힌 후에 고개를 숙여 안전벨트를 매 주었다. 이현은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재이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현은 서서 페달을 몇 번 더 세차게 눌러 밟았다.

 

 "재이야. 안전벨트 잘 매 졌지?"


 고개 숙여 벨트를 꼼꼼히 매었던 자신을 떠올리며 이현은 생각했다. 


 ‘그렇게 안전하게 살아오면 뭐 해. 지금 내 삶을 봐. 나는 안전벨트를 꼭 맸다고.  뭐가 더 안전한지 내 머리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벨트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자, 엄마 꽉 잡아!" 


 조용한 시골 마을에 이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현과 재이는 어느새 울창한 숲을 나와 구불구불 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현이 속도를 올리자 재이는 뒤에서 두 팔로 엄마를 꼭 감싸 안았다. 살결을 파고드는 추운 공기에 재이는 가느다랗게 실눈을 떴다.  아침 겨울바람이 아이에게는 너무 찼다.  얼른 달려서 라니집으로 가야 했다. 이현이 추운 겨울 아침부터 자전거를 타고 라니집으로 가는 것은 꼭 커피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화책을 떠올리며 씩 하고 웃던 재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이현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갔다. 속도가 어느 정도 붙자 이현은 다리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페달을 살짝살짝 돌려만 주었다. 어느새 거문해변이 환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에 겨울바다가 반짝이는 광경이 눈에 펼쳐졌다. 


 '여전히 굉장해. 여긴' 


 거뭇거뭇하고 매끈한 돌들이 모래대신 백사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거문마을. 이현과 재이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우연히 이 거문바다에 도착했을 때 이현은  바닷가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 위로 지는 해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살게 될 거라고는 결코 생각지도 예상치도 못했다.


 “엄마, 추워.”

 재이가 뒤에서 두 팔로 힘껏 이현을 안으며 말했다.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욱 차가웠다. 


 “꼭 잡아. 번개처럼 빨리 갈 거니까...”


 이현의 등뒤로 자그마한 생명체의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거문바다가 휘황찬란하게 펼쳐지는 장면은 언제나 멋졌다. 하릴없이 바닷가에 앉아 재이의 모래놀이를 지켜보던 그때, '이곳에 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꽁꽁 얼었던 이현의 마음이 거문해변의 따뜻한 햇살에 녹아버렸다. 거문바다를 보며 달릴 때면 이현의 머릿속엔 언제나 같은 영화가 재생되었다.


 '재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현이 문득 궁금해져서  재이를 바라보기 위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어라? 근데 이게 뭐지?”


 끼익. 브레이크를 밟자 자전거 바퀴가 멈쳤는데 바퀴에서 마치 탄 내가 나는 것 같았다. 


 “엄마, 깜짝 놀랐잖아요.”


 재이가 볼멘소리로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현은 뒤로 돌아보며 재이의 안전벨트를 재빠르게 풀어 주었다. 


 “왜요? 여기 왜 섰어요?”


 아직 라니집에 가려면 멀었다. 거문해변의 중간에도 못 왔다. 이현이 손가락을 들어 건물을 가리켰다. 여긴 바로 거기였다. 여기는 이현이 꽁꽁 얼었을 때 몸을 녹였던 바로 그 집이 있는, 작은 꽃 할머니 집이었다. 


 '작은 꽃 할머니네, 그 집에 누가 온 거지?'


 익숙한 할머니네 넓은 마당, 대문에서 왼쪽으로 보지 못하던 큰 유리창이 달린 사각형 모양의 건물이 서 있었다. 투명한 창문 안으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현이 장갑을 벗고 재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작은 꽃 할머니네 대문을 천천히 열었다. 


' 삐익' 

 대문을 열다가 문득 위로 올려다보니 나지막한 담 중앙에 동그랗고 조그마한 나무 무늬의 간판이 걸려 있었다. 할머니의 글씨체와 꼭 닮은 작고 귀여운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몽글몽글 카페. 아. 이게 카페 이름인가?'


 그런데 여기 왜? 작은 꽃 할머니 집은 마당이 꽤 넓었다. 제일 처음 거문해변에 왔을 때 이현은 민박집을 알아보기 위해 이 집의 대문을 열었다. 열어젖힌 대문 뒤로 보이는 마당에는 작은 꽃들이 한없이 가득 피어있었다. 연노랑색, 하얗고 파란색, 복숭아 색, 다홍색 세상에 있는 모든 색깔은 다 모여 있는지도 몰랐다. 각기 다른 꽃들은 대부분 아주 아주 작았다. 도심에서 자란 이현은 평생 보지 못한 다양한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었다. 문을 여는 소리를 드고 한 할머니가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정원에 앉아서 고개를 숙여 꽃에 물을 주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우린 민박은 안 해요. 대신 묵을 만한 곳을 알려줄까?”


 하얗게 센 머리는 귀 아래까지 내려왔다. 작고 동그란 얼굴에는 주름이 보였지만 하얗게 센 머리카락에 비하면 얼굴이 훨씬 젊어 보였다. 검버섯도 주근깨도 없는 깨끗한 얼굴이 신비로웠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이런 시골 바닷가에 뭔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집은 별로 특이할 것이 없었지만 이현이 흘긋흘긋 대충 보아도 집 안 구석구석이 정성스레 가꿔지고 있었다. 갈색 대청마루는 윤기가 흐르고 있었고 대청마루 안쪽으로 보이는 부엌은 전혀 촌스럽지가 않았다. 고급진 흑갈색 원목으로 상부와 하부가 단단하게 고정된 이국적인 부엌이었다. 이현은 인테리어 잡지에서 이런 집을 본 적이 있는 것만 같았다. 


 “집이 참 예쁘네요. 여기 사세요?”


 "그럼. 여기 살지... 그럼. 우리 꼬마는 몇 살일까?"


 할머니는 여기저기 꽃밭을 다니고 있는 재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세 살이요."


 "아이고, 작기도 하네. 꼬마야. 이리 와. 금방 찐 고구마 줄게. "


 처음 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재이는 집 안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이현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계획도 없이 재이의 손을 잡고 거문바다로 왔었다. 그때의 재이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었고 그때의 이현은 지금보다 훨씬 불안했었다. 하지만 작은 꽃집 할머니집에 들어선 순간 어떠한 안전장치도, 계획도 필요하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온 것만 같았다. 생전 처음 느끼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날, 이현은 작은 꽃집 할머니에게 고구마와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와 해변 끝쪽 언덕에 자리한 민박집 이름과 전화번호가 새겨진 종이조각을 건네받고서야 그 집을 나왔다. 


 "작은 꽃 할머니 집이 팔린 게 틀림없어."


 "몽글몽글 카페라니.. 그것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에게. "


  서운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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