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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Nov 09. 2023

6. 그녀의 이름은 손해안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이건 웬일이야. 설마. 아까 그 손님이?’ 


 이현의 머릿속에 별안간 별의별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왠지 아까부터 그 손님 왠지 우울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마, 아닐 거야.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어.’ 


 나는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음은 몹시 두려웠다. 


 거실에 있던 재연이 나를 따라왔다. 


 “엄마 무슨 일이야?”


 “나도 몰라. 넌 여기 있어.” 


 “아니야 나도 갈래.”


 “아니야. 엄마가 먼저 보고 올게. 위험할 수도 있어. 여기 있어. 알았지?”


 ‘이 여자손님은 이미 숨이 막히는 듯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받지 않아야 했다. 아니, 내가 무슨 수로? 이번 달 생활비도 이미 바닥이 났다. 나는 돈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 사업이다. 이런 말썽이 생길 줄도 모르고 난 카레를 만들고 있었다니, 나는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에도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2층의 손님 방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문을 열지 말지 선택권도 없었다. 그때 하얗게 질린 얼굴의 손님이 불쑥 방에서 튀어나왔다. 


 “어머! 깜짝이야.” 


 이현이 문 앞에 온 줄 몰랐는지 손님은 두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손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이현이야말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둘러 손님을 향해 물었다. 손님이 말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였다.


 ‘진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것일까?’


 이현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손님이 이현을 가로막았다. 


 “아니... 저.... 들어가시면 안돼요.”


 “아, 아까 소리도 지르시던데... 도움이 필요하신 거 아닌가요?”


 손님은 망설이는 표정으로 한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체념한 듯 이현을 향해 소리쳤다.


 “벌레가 있어요. 벌레가... 그것도 정말로... 아주 아주 큰.”


 “아. 벌레.....”


 이현의 목소리에 느껴지던 긴장감이 사라졌다. 그녀의 후들거리던 다리도 곧이어 멈췄다. 


 “정말 다행이에요.”


 “네? 벌레가 있는 게요?” 


 “아니 아니요, 벌레가 있는 게 다행히 아니라, 손님이 무사해서 다행이라고요.” 


 “저는 무슨 일이 생긴 줄만 알았어요.”


 “아, 끔찍하죠... 저는 벌레를 많이 무서워해요.”


 “제가 잡을게요. 문제없어요. 기다리세요.”


 이현이 방 안으로 들어가 큰 창문 앞에 있는 탁자 밑에서 쉬고 있는 벌레를 찾아냈다. 그것은 창 밖에서 들어온 사슴벌레였다. 


 '뭐야. 난 또 엄청나게 끔찍한 벌레인줄... 하긴 나도 처음에 이사를 왔을 때 온갖 벌래들을 상대해야 했지...'


 이현은 재이의 벌레 채집통을 가지고 와서 사슴벌레를 넣어두었다. 그리고 재이더러 채집통을 가지고 뜰로 나가게 했다. 그리고 방 안 구석구석에 벌레 퇴치 스프레이를 뿌렸다. 오늘 하루를 이 방에서 묵어야 하는 손님이지만 할 수 없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면 냄새는 좀 나겠지만 늦은 밤가지 벌레 생각에 잠을 못 잘 가능성은 줄어들 테니. 


 “밖에서 들어온 녀석이니까, 걱정 말아요. 흔한 일은 아니에요. 손님이 많이 보고 싶었나 보네요. 저 녀석이.”


 손님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던진 농담에 정작 손님은 별 반응이 없었다. 


 “고마워요.”


 하지만 그녀는 감사하는 일에 인색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제가 벌레를 무서워해서...”


 “뭘요. 제가 할 일인데요. 약을 쳤으니 잠깐 나가 있어야 해요. 거실에서 좀 쉬면 어때요? 아니면 옆 방을 쓰셔도 되고요.”


 “그럼 거실에 있을게요.” 


 이현과 손님은 같이 계단을 내려왔다. 재이는 채집통을 들고 대문을 열어 나가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다시 들어오고 말았다.


“엄마 비가 너무 와.”


“그래? 그럼 나가지 마. 내일 하자.”


 이현이 재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 손님을 향해 말했다.


“참, 카레를 만들고 있어요. 같이 저녁을 먹어도 좋아요. 여기 비가 와서 나가기도 힘들고, 배달음식도 안 되는 곳이에요. 혹시 일정이...”


 “없어요. 아무 일정도.”


 “우리도 없어요.”


 주로 식사를 준비하고 난 후에 이현은 재이를 데리고 3층으로 가서 따로 식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고 덩그러니 혼자 빗소리를 들으며 식사를 하는 일은 너무 처량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손님의 여행일정을 짜는 일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올해 첫 손님으로 왔고 때마침 아무 손님도 없으니까. 이현은 그녀에게 최대한 친절하고 싶었다. 아마 라니 엄마가 이현을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맞춤식 서비스하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니까.’


 이현은 라니엄마의 동그란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우리 숙소는 그때그때 서비스도 달라지고... 홍보도 체계적이지도 않지. 라니 엄마의 말처럼 후기를 써주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난 상관없어. 하지만 어떤 손님이건 최선을 다해 친절할 것. 그게 나의 방식이야. 


 다른 사람에게는 수지가 맞지 않는 방식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현은 그런 방식이 편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현의 게스트 하우스에는 어떤 나쁜 후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종종 벌레들이 들어오기도 했고, 표지판도 제대로 없어서 손님들이 차를 몇 번이고 돌려 찾는 곳이었다. 하지만 주인의 수지타산 안 맞는 운영방식 때문에 여전히 손님이 찾아왔다. 그리고 한번 찾은 손님은 대게 다른 손님이 또 소개를 해주었다.  








 “그나저나 비 오는 날 카레라니. 역시 나의 선택은 멋졌어.”


 이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접이식 호두나무 식탁의 양쪽 날개를 펼치고 식탁보를 깔았다.  


 “밖이 엉망진창일수록 안은 아늑하게 꾸며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인적이 드문 시골에 집 안 마저 온기가 돌지 않으면 매우 비참한 기분이 들 것만 같거든요.”


 이현은 길게 늘어진 베이지 색 체크무늬의 테이블 보 위에 진한 갈색의 카레가 그득 담긴 세 개의 푸른 그릇을 세 사람의 자리에 조심스레 놓았다. 그리고 찬장에서 투명한 노란색 장식용 촛대를 꺼내 초를 언진 후 촛불을 켰다. 촛대를 탁자 위에 둔 후 거실의 창문에 걸린 모든 커튼을 쳤다. 그리고 외부와 단절된 고요한 곳에서 손님과의 불편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왜 우리 집에 왔어요?”


 재이가 침묵을 깼다. 


 “재이야 그런 걸 왜 물어. 실례야.”


 “아니에요. 뭐.”


 “아니에요 정말. 대답 안 하셔도 되고요. 전 그런 건 안 물어요. 손님의 개인사이기도 하고 뭐 저도 그런 것에 딱히 관심도 없고 해요.”


 겨우 깨진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손님, 이현, 재이조차도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규칙을 깬 건 바로 이현이었다.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이곳을... 우연히요?”


 “음 그런 샘이죠. 저는 좀 멀리 가고 싶었는데, 갈 힘이 없었어요. 며칠 쉬다가 여행을 가려고 해요. 멀리로요. 그리고 오랫동안.” 


 말을 마친 그녀의 얼굴이 다시 슬퍼 보였다.


 “아, 그전에 약간의 준비체조 같은 거예요?”


 “하하하. 엄마 준비체조가 뭐야. 하나 둘하나 둘 이런 거?”


 재이가 카레에 비빈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짧은 양팔을 길게 쭉 펴고 아래위로 힘차게 올렸다.


 “비유하자면 말이지. 재이야.”


 “네. 그런 샘이죠. 뭐 정확히 말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고요. 준비체조가 준비가 될지, 실전이 될지 잘 모르겠어요. 계획을 세우지 않은 건 처음이에요. 저는 뭐든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거든요.”


 “왜 이번 여행은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어요?”


 이현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물었다.


 “글쎄요. 때로 사람은 변하기도 하니까요.”


 손님의 목소리도 차분해졌다. 


 “하지만 천성이 변하기는 어렵죠.”


 이현으로서는 손님의 말을 반박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대화를 더 길게 끌어가고 싶어 질문을 던졌다.


 “천성이 변할 만큼 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죠. 인생은.”


 손님의 목소리가 침착하다 못해 고요해졌다. 


 “큰 사건이 있었군요.”


 이현의 말을 끝으로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재이는 벌써 자기 할당량을 비우고 거실의 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정말로 아늑해요. 여기. 오래 사셨어요?”


“아니요. 여기 원래 부부가 살던 곳이에요. 예전에 티브이에도 나올 정도로 잘 지은 건물이에요.”


“그 부부는 이 집을 팔았나요?”


“처음에는 제게 빌려줬고요, 나중에는 결국 팔았죠.” 


“아픈 사연이 있나 보네요. 이렇게 잘 지은 집을 팔다니.”

“그런데... 혹시 엄마세요?”


 손님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이현에게 물었다.


“네 그럼요. 엄마라고 부르긴 하는데 얼굴만 봐서는 이모 같네요.”


“호호호호 그래요?”


 웃음을 감추려고 해도 잘 되지 않을 정도로 기쁜 말이었다. 이현은 예쁘다는 말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이 더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거울 한번 쳐다볼 시간이 없는 이현이었다. 때로는 화장품이 떨어져 바르지 못하고 잠들 때도 많았다. 그러니 그런 칭찬은 왠지 자신의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작은 칭찬스티커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손님은 정말 젊지요?”


“아 젊다는 건 몇 살 쯤일까요. 저는 곧 30을 앞두고 있는걸요.”


“어머 어머 어머 이런, 그럼 아주 핏덩이죠. 난 그보다 열 살이 더 먹었는걸요.”


 이현은 두 살은 깎은 것이 마음에 걸려서 말끝을 살짝 흐렸다. 


 ‘20대의 막바지, 나도 그렇게 힘들었지 않나. 한 고개를 넘어갈 때마다 힘에 겨워서 어디라도 쓰러져서 울고 싶은 날이 오지 않나. 그런 날에 전화 한 통 할 곳이 없어서 이불속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며 슬피 울던 날이 있지 않나. 나도 그런 날들을 지났다.’




 “아직 핏덩이요? 그럼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게 좋겠어요.”


 손님이 한 말에 이현은 더는 묻지 않았다. 대신 이현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새로 꺼냈다.


 “맥주 한잔 더 할래요?” 


 “그럴까요?”


 재이가 한참 블록놀이를 하는 동안 둘은 맥주 두어 잔을 더 기울였다. 그리고 남은 카레에 땅콩까지 해치웠다. 재이가 잠이 오는지 자꾸만 이현에게 와서 안기는 바람에 더는 이야기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이현은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님에게 말했다. 


 “참 여긴 숙박부를 기재해요. 아주 예전처럼요. 왜 산티아고에 가면 그렇게들 하잖아요. 이렇게 생긴 종이에 자기 이름을 적고요.”


 이현은 방명록 겸 숙박부를 펼쳤다. 손님들도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있어서 좋다고, 신중하게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사진을 찍고는 했다.



 손 해 안.

 2023년 4월 18일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거문마을에 입성해서 카레를 먹다. 그리고 사슴벌레를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날. 



 손님은 두어줄 심사숙고 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려 갔다. 이현에게 그녀의 얼굴은 슬퍼 보이기도 했지만 아주 해맑아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과 어울리는 얼굴이다.’

 이현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마도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단지 잠깐동안 빛을 잃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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