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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an 29. 2024

9. 특이한 첫 손님들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그냥 모른 척 좀 해주면 안 되나."

 이현은 한주에게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한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너무 반가워서 그랬어요. 갑자기 선생님이 사라지셨거든요. "

 "너희 학교 선생님이셔?"

" 네. 국어선생님이에요. 오랫동안 계셨어요. 입학하기 전부터 있었다고 들었어요. 여하튼 우리 학교에서 인기가 제일 많았었던 선생님이었어요."

 야구부 옷을 오늘은 입지 않고 하얀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한주는 훨씬 더 고등학생 다워 보였다. 이현은 한주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미스테리한 이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던 차에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손님들이 올 시간이야. 그리고 한주야, 저쪽이야. 네가 이제 있을 곳."

 수호가 카페 바 뒤편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한주는 무언가에 홀린 듯 그 문으로 들어갔다. 창고인 줄 알았던 작은 방안에 커다란 오븐과 냉장고가 들어가 있었다. 조그만 탁자와 책, 그리고 제빵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와. 이건... 죽여 죽네요.”

 한주는 큰 짐가방에 넣어온 자신의 물건들을 그곳에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그 작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호와 기훈은 흐뭇하게 한주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도 미스터리야."

 '누가 누굴 보고 미스터리 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이번에는 혼잣말을 마음속에 삭혔다.

 "저 덩치를 어떻게 믿고 빵을 맡겨요?"

 이현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다 말고 결국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믿어요? 누구를?"

 이현의 질문에 수호가 답했다. 

 "믿을 필요는 없어요. 어차피 가게에 필요한 제품이고, 빵을 팔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저 녀석이 그 역할을 해주면 좋고 아니어도 괜찮아요."

 "혹시 신부님이나, 스님이세요? 아니면 뭐 수행자?"

 커피를 추출해서 시음하던 기훈이 이현의 말에 고개를 활짝 젖히며 크게 웃었다. 너무 크게 웃는 탓에 한주가 놀랐는지 방 안에서 머리를 쑥 빼서 카페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현은 수호를 따라 만화책을 제 자리에 꽂고 난 다음 가게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화책들을 보러 오는 아이 덕분에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카페 안을 누비고 다니며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아서일까. 카페의 젊은 주인 두 남자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하면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다. 수호는 그런 걸까? 단 한 번도 조바심을 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정말 그는 수행자인 걸까? 그래서 이 시골에 들어와서 카페를 차린 걸까? 손님이 있건 없건 한결같은 젊고 잘생긴 주인의 태도는 미스터리다. 이현은 자신과는 사뭇 다른 수호의 행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현은 올해 온 첫 손님이 자신의 여관에 어떤 평점을 줄지가 가장 궁금했다. 좋은 평점은 또 다른 좋은 평점을 이끌어낸다. 삶도 그렇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을 이끌지만, 나쁜 일은 한순간에 나쁜 일들을 몰고 온다. 모든 일에서 그녀는 그런 안 좋은 일들이 조금이라도 일어날 까봐 사실은 두려웠다. 그런데 왜 저들은 두려움이라곤 없는 걸까? 



 정오가 되자 손님이 뜸해졌다. 배가 고프다며 나온 한주는 아까 혼자 가버린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한주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현이 간단하게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어제 만들어놓은 카레가 가득 담긴 냄비를 주방에서 데워 간단히 먹을 채비를 해서 카페 맞은 편의 네모 박스 같이 생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에는 수호가 남아 있기로 했다. 아직 이야기 중인 손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는 안 들어오셨어요. 선생님 수업이 재미있다고 몇몇 범생이 녀석들이 말을 했어요. 특히.... 음..... 특히.... 제 여자친구가요."

 "오. 여자친구?"

 한주가 놀리듯 말하는 기훈을 쳐다보았다. 기훈이 다시 표정을 고쳤다. 이미 헤어진 모양이다. 

 "네, 여자친구였던... 그 애... 그 애가 선생님과 정말 친했어요. 그러니까 선생님과 친하던 몇 명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이 선생님 마을시인클럽에 가입했어요. 그 클럽은 그냥 동아리 활동이죠. 뭐, 바둑반이나, 테니스 같은 그런 거 있잖아요. 저는 야구부니까 뭐 그런 동아리는 들어만 봤지만요. 그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 대학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할 정도로 애들이 좋아했어요. 내 여자친구... 그러니까... 그 여자친구였던 그 애도 들어가려고 그 전날부터 기도를 하더라고요. 애들이 많아서 결국 제비 뽑기로 정해졌던 모양이에요. 한 반에 한 두 명 많아야 세내 명이 들어갈 수 있는데 모든 반에서 세내 명씩 들어가니까.... 여하튼 인기가 엄청나게 많았대요."

 뜨다 만 카레 한 숟가락을 크게 떠서 입 안에 욱여넣고 씹으면서 한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뭐부터 말해야 할지를 몰라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카레를 밥에 싹싹 비벼서 한 숟가락씩 입으로 가져다 넣으면서 한주는 불과 1년 전 이야기를 마치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하듯 천천히 곱씹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남아 있는 맞은편 카페 안에 큰 창문으로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수호의 모습이 보였다. 수호는 손님들이 무언가를 필요로 하기 전에 이미 그것이 무엇인지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조급하거나 서두르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테이블 위에 놓인 책 쪽으로 향한 그의 시선 아래 날카로운 콧날이 멀리서도 도드라져 보였다. 이현은 창밖을 바라다보면서 해안의 이야기, 그러니까 그 국어선생님, 그러니까 지금 내 여관에 묵고 있는 그 여자손님의 1년 전 이야기를 들었다. 기훈의 표정은 별로 변함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남은 카레 밥을 그만 먹었다. 이현은 몇 번이고 물을 마셨다. 


 수호는 창 너머로 이 쪽을 바라보았다.

 '한주 녀석이 이야기가 길어지네.' 수호도 슬슬 배가 고파졌다. 창 너머로 보이는 기훈이 녀석은 아직 올 생각이 없다. 이현은 뭔가가 목에라도 걸린 듯 연거푸 물을 마셔대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얼굴 위로 내려오는 갈색 앞머리가 눈을 찔러대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이현이 앞머리를 걷어내자 둘의 눈이 마주쳤다. 이현이 수호에게 자신은 다 먹었으니 여기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수호는 알겠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카페 건물을 유유히 걸어 나와 마주 보는 네모난 간이 건물로 들어왔다. 수호의  등 뒤로 따뜻한 햇살이 따라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른한 봄날이었다. 카페는 여전히 손님이 드문드문 오고, 이현의 여관에도 이제 손님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비록 오늘 떠날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손님이긴 하지만. 

 "좋아. 모든 게, 순조로워." 

 이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네?"

 기훈은 한주의 이야기를 듣다 말고 이현을 쳐다보았다. 

" 아. 제 호텔이요." 

 이현은 자신의 숙소를 여관이라고 했다가 호텔이라고 했다고 때로는 게스트하우스라고 했다.

 "이번 해도 순조롭게 잘 된다고요... 일종의 주문이죠, 뭐."

" 첫 손님이 중요한데, 왠지 느낌이 별로네요."

 한주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뭔가가 목에 채이는 듯 물을 마셔댔던 이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첫 손님도 별로였는데요, 뭐."

 그때 들어온 수호가 말을 했다. 씩 웃으며 능청스레 말을 하는 모습이 그다지 밉지는 않았다. 

 :첫 손님이 누구였는데요?"

 한주가 물었다. 

 "음, 한 꼬마랑 엄마. 돈도 안 내고 커피를 마셨지, 아마도?"

 "아... 제가 그때 돈을 안 냈나? 지금 낼게요. 지금 낸다고요. 치사하게 그때 그 일을 가지고 아직 마음에 담아두다니... 그때는 영업 시작..."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기훈이 당황한 이현을 보고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나가요. 제가... 그래서 제가 카페 알바를 한다고요. 얼마나 제가 잘하는데."

 이현이 재빨리 일어나 수호가 서 있는 문 앞을 지나가려는데 수호가 그의 긴 팔로 이현을 막았다.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이현이 수호의 가슴팍 앞에 서서 수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후리지아 꽃 향기가 났다. 노란 후리지아 꽃을 집에 사다 놓으면 집 안에 퍼지는 향기였다. 이현은 우울할 때마다 후리지아 꽃 한 다발을 사다 집에 꽃아 두었다. 아무 희망이 없는 집 안에 유일하게 꽃이 자신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향기가 있으면 위로가 되었다. 그 후리지아 향이라니.

 "이건 향수예요?"

 이현이 코를 킁킁 대며 수호에게 물었다. 

 "향수는 안 뿌리는데?" 

" 너무 좋은데?" 

 이현은 그의 가슴팍 쪽에 오는 자신의 얼굴을 그의 셔츠에 바싹 같다 붙이고 마치 강아지가 주인의 냄새를 맡듯 다시 냄새를 맡았다. 

 "특이해들."

 작은 소란을 남의 마을 불구경하듯 바라보던 기훈이 말을 했다. 

 이현이 수호의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저기, 손님이 오고 있어요."

 다들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정말 세네 명으로 무리지은 손님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현은 후리지아 향을 풍기는 수호의 곁을 가까스로 비켜 창고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손님을 맞았다. 

 "우리 첫 손님이 우리 가게 일꾼이니까. 꽤나 괜찮지."

 기훈이 이현과 한주를 번갈아가며 말했다. 

 "아, 저 누님이 첫 손님이었구나." 

 한주는 대수롭지 않은 듯 밥을 싹싹 긁어먹었다. 

 "여하튼 국어 선생님을 오늘 만난 건 정말 뜻밖의 일이었어요."

 "아무에게도 말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지 않니?"

 기훈이 한주에게 말했다. 

 "그럼요. 뭐. 말할 사람이 이제는 없어요. 저도 아웃사이더예요. 국어선생님처럼."

 수호의 날카로운 콧날 위, 사슴같이 순진한 눈동자가 약간 흔들려 보였다. 그리고 감색 비니아래 감춘 기훈의 장난기도 잠시 사라졌다.





 p.s 외딴 거문 마을, 아이와 둘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이현의 시선으로 마을에 생긴 카페와 손님들의 이야기들을 그려내보고 있어요. ^^ 따뜻한 시선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들을 쓸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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