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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Mar 13. 2024

13.책임지는 사람, 그리고 책임을 지우는 사람.

해안의 이야기 _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13

 어떻게 교장선생님이 그 자리까지 갔는 줄 모른다. 그 선생님은 악명이 높았다. 수업은 재미가 없었으며 외모는 형편없었고 아이들을 때리거나 모욕하는 일은 교묘했다. 착실하기만 했던 해안은 고3 때까지 선생님에게 특출 나게 튀는 법이 없었다. 교우관계도 원만했다. 가끔 지각을 하거나 매점에 덧신을 신고 가지 않아 혼나긴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해안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맞아보았다. 그것도 그의 신발로 해안의 머리를 가격했다. 이유는 사소했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했다. 그날은 아이들이 들떠 있었다. 첫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그날 교장선생님에게 불려 갔다. 모의고사 성적이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담임선생님의 얼굴을 읽는 아이들은 없었다. 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안도 첫 모의고사 성적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웅성거리는 아이들 틈으로 해안은 모의고사 시험지를 보고 있었다. 


왜 이딴 걸 틀렸을까? 바보, 멍청이. 이렇게 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갑자기 웅성거리던 소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몰랐다. 


 이해안!


 그제야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네? 저요?


그래 너.


아... 네..


그거 들고! 


담임은 내 책상에 놓인 모의고사 시험지를 가리켰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그런데 왜 나를? 내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온 걸까? 아니면 너무 못 나온 걸까? 답지를 내지 않은 것일까?


내 자리에서 교탁까지 다섯 걸음이면 갈 거리였다. 하지만 생각은 복잡했다. 곧 생각이 멈췄다. 


교탁에 낸 모의고사 시험지 뭉치가 둘둘 말려서 해안의 얼굴을 사정없이 갈겼기 때문이다. 


그 후의 일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허스키한 담임의 목소리가 고3 학급 전체에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퍼졌고 내 마음에 드는 의문은 단 하나였다.


난 잘못한 게 없다. 


복도에 나가 계속해서 벌을 서는 동안에도 내 안에 하나의 생각은 그거였다. 


난 잘못한 것이 없다. 


서울대를 지망하고 있던 우리 학급의 반장 선혜는 특유의 마른 몸을 휘청이며 나중에 나에게 왔다. 


해안아. 너무 속상해 마. 선생님이 누군가가 책임져야 했다고....


책임? 무슨 책임?


우리 학급이 꼴등이래. 모의고사 성적. 그래서 교장한테 혼났나 봐.


본... 보기가 필요했대... 그러니까 네 잘못은 없는 거야. 



모의고사 뭉치로 머리를 맞을 때보다 더 아팠다. 담임의 슬리퍼로 머리를 맞을 때보다도 더 아팠다. 


내 잘못은 없는 거다. 그런데 왜. 내가 책임져야 하는가.








아픈 마음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고 3 생활은 지옥이 되어버렸다. 매일같이 나를 본보기로 삼았다는 그 담임을 전하던 반장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잘못이 없는 거야. 그래서. 



수능시험을 못 보았다는 것과 내가 임용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나의 첫 남자친구는 군대를 갔고 결국 헤어졌다는 것, 우리 부모님의 경제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그 사건과는 무관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까. 벌어진 사건과는 무관할지 모른다. 하지만 모든 것에서 느껴지는 그 무력감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를 유일하게 받아주었던 한 사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되어 온 날, 그날 나는 그 담임선생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학생과 담임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기간제 교사와 교장이었다. 


인생은 굴레다. 지독하게 불행한 인생의 수레바퀴. 도대체 나는 이 굴레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번 생에는 안된다. 왜냐고? 나는 힘이 없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모면한다.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있는 사람의 책임이 되어주면 된다. 힘이 없다는 것은 잘못하지 않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나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내가 질 수 있는 책임은 그것 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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