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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May 15. 2024

15. 이현의 아침 루틴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episode 15. 



 이현이 눈을 떠보니 해안은 집에 없었다. 어제 단호박 수프를 먹다가 스르르 쓰러지는 해안의 모습을 본 이현은 하마터면 놀라자빠질 뻔했다. 


'내가 단호박수프에 독이라도 탄 건 아닌가?'


 이현은 곧장 전화를 걸어 동네의 유일한 약국 희동이 삼촌을 불러서 이현을 살펴보도록 했는데 다행히도 맥박과 호흡도 정상이라 지켜보기로 했다. 해안은 혹시 모르니 응급차를 부르자고 했지만 희동이 삼촌은 괜찮을 거라고, 지켜보자고 하면서 아마도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라고 했다. 


 이현은 자신이 처음 이 거문마을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 작은 꽃 집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가 구워준 진달래 전을 먹던 날, 이런 것도 먹을 수 있냐며 묻다가 잠들어 버렸다. 집의 마당에 누워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단잠에 빠졌다 일어나 보니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와 있었다. 옆에는 쌕쌕거리며 잠든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낯선 곳, 낯선 사람 하지만 이 모든 낯섬이 당시에는 큰 위안이었다. 

 어떨 때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가 있다. 그런 때는 기나긴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그간 미뤄왔던 잠으로 온전한 정신을 밀어내버린다. 


 ‘그런 때가 있었지. 나도.’


해안이라는 손님은 자신과 처지는 달라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신경 쓰이네... 정말”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안이 없었다. 


 “뭐야. 말도 없이 떠난 건가?”


 방을 둘러보니 가져다 둔 물 잔이 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방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떠나진 않았네.”


 이현은 아무도 없는 아침을 즐겼다. 아이를 키우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으로서 아무도 없는 아침이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귀한 시간이었다. 부엌으로 내려와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3층의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끼익, 끼익"

 "짹짹, 짹짹"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간혹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이 왠지 꽤 조화로왔다. 

 게스트하우스 3층의 다락방 천장에  뚫어진 유리창을 통해 하늘을 곧장 볼 수 있었다.. 이현이 의자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살짝 열자 시원한 아침 바람이 불어왔다.

 

 "와..."


 바람과 함께 들어오는 아직 아침 햇살이 아직 그리 따갑지 않았다. 곧 뜨거워질 것이다. 그전에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다짐과는 다르게 이현은 느릿느릿 걸어가 방에 있는 요가매트를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온몸을 한껏 웅크렸다. 그리고 다시 어깨와 허리를 폈다. 곧이어 숨은 참았다가 다시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제 이현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새의 지저귐 뿐이었다. 햇살은 소리가 이현의 온몸을 내리쬐고 있었다. 이현이 자신의 두 팔을 뻗어 늘어지게 하품을 한바탕 했다. 


"철퍼덕"


 그리고 난 후  바닥에 어깨부터 허리까지를 자신의 몸을 한 껏 쏟아부었다. 


 “후우우우우우우, 휴우우우우우...”


 바람이 부는 방향을 따라 마당에 심은 나뭇잎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흔들던 기억의 잔상이 점점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트랜귈리티.”


 그녀가 조용히 읇조렸다. 손님이 올 때마다 그들은 뭔가를 남긴다. 그들의 흔적은 손님마다 다르다. 이번에 온 손님은 떠나기 전에도 요란하게 자신의 흔적을 남겨댔다. 

 그 흔적은 바로 나 자신의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이현은 3층 방 안에 머물렀다. 그녀의 거친 숨이 점점 편안해졌다. 이제 그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가 않았다. 이현의 마음속에 요동치던 파도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제 잔잔한 물결의 흐름을 되찾았다. 그녀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제야 이현은 매트를 천천히 접어 방 한편으로 치우고 의자에 올라서서 열었던 창문을 닫고 천천히 3층 다락방을 걸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소란스러운 하루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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