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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누 Jun 06. 2024

16. 다섯 사람

몽글몽글 카페 사람들 ep 16


"시골에 카페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왜요? 요즘 시골에도 카페가 많아요."


"그렇죠. 하지만 여긴... 좀 그렇잖아요?"


"음... 여기는 좀.... 그렇긴 하죠."


이현이 낯선 표정으로 여자 손님을 바라보았다. 며칠간을 가뭄에 비 한 방울 못 받은 양 말라죽어가던 꽃이 한순간에 살아난 것 같았다.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은 변해있었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오 마이 갓.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는 커피 없이는 못 살아요."


이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열을 올려 말했다. 


"커피가 없으면 하루가 무미건조하다니까요."



"아니 대체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예요? 카페 안에서도 다 들리네!"


예술가 포스의 사장님이 대문을 열고 나와 있었다. 오늘은 한 참 유행했던 레게 스타일의 알록달록한 색상의 비니 모자를 쓰고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앞치마가 참 어울려요."


"내가 안 어울리는 게 있나? 뭐 새삼스럽게..."


해안이 능청스러운 예술가 사장의 대답에 활짝 웃어 보였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커피 향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커리 룸 안에서 고소한 빵 냄새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이현이 두 손을 활짝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기훈이 이현을 따라 두 팔을 크게 벌리는 가 싶더니 곧장 바 안으로 들어가 원두를 한 움큼 퍼서 그라인더에 넣었다. 


"수호가 사온 새 원두! 묵직하고 쌉싸름한데 끝 맛은 달지. 아마 이 원두는 호불호가 갈릴 수가 없다고 했어. 그래도 나는 신맛이 나야 좋긴 한데..."


"킁킁, 음... 산미는 느껴지지 않을 향이네요. 뭐. 나는 좋아요."


이현이 코를 킁킁거리며 원두를 향해 다가가자 기훈이 두 손으로 원두를 감싸며 말했다.


"음... 일단 마셔보자고요."


"아직 안 마셨어요?"


"두 손님이 오면 같이 마시려고. 기다리는 맛이 있잖아. 원래 음식은 기다리면서 맛이 더 상승하는 법이지."


"그런데 수호 씨는요?"


"나 찾았어요?"


때마침 수호가 베이커리 룸 안에서 나왔다. 수호가 해안을 향해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이현에게는 눈을 찡긋 해 보였다. 


'이렇게 하니 손님들이 자꾸 오지.' 


이현이 수호의 눈인사를 보며 속으로 생각하다가 답인사를 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오히려 고개를 푹 숙이고 해안을 향해 돌아서버렸다.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다. 아직 영업 전이었다. 이현이 카페로 오다가 바닷가에 있는 해안을 발견하고 카페로 가자고 꼬셨더니 해안이 잠시 생각하더니 좋다고 했다. 해안의 얼굴은 달라져있었다. 아마도 오늘은 다른 날이 될 거라고 이현이 생각했다.


"선생님, 오셨어요."


베이커리 룸에서 한주가 나왔다. 야구부 옷을 벗고 하얀 가운에 기훈의 모자를 쓴 한주의 모습도 새로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일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응. 안녕. 한주야."


해안이 한주를 향해 웃어 보였다.


기훈과 수호가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손님이었지만 이곳 거문 마을에서는 달랐다. 대부분 이방인이고 손님으로 왔다가 손님으로 간다. 손님이 그저 손님으로 남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둘이 화해하는 모드네?"


수호가 나지막이 읊조리며 한주가 나온 베이커리 룸으로 들어갔다. 그때 수호가 긴 팔로 이현의 어깨를 감쌌다. 이현은 소스라치게 몰랐다. 하지만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하며 수호의 팔이 이끄는 데로 베이커리 룸으로 함께 들어갔다. 


"나는 커피를 만들어보겠습니다."


기훈은 바 깊숙이 들어가 그라인더에 커피를 넣고 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갈리는 기계들이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기훈은 굳이 낡아빠진 수동 그라인더를 꺼내 팔을 돌리기 시작했다. 


"허허... 나는 좀 멋진 몸매를 원해서..."


조용한 카페에 잔잔한 음악과 더불어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소리가 어우러져 퍼지고 있었다. 








해안은 한주를 보며 한 팔을 들어 손가락으로 카페 중앙에 있는 동그란 탁자를 가리켰다. 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로 가서 해안이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여전히 예의가 바르구나. 한주는!"


"그럼요. 저는 예의 빼면 시체죠."


"능청스러운 것도 그대로고."


"선생님도 그대로세요. 아니 더 좋아 보여요."


해안이 편안하게 웃어 보였다. 


"고마워. 어쩌다 여기로 온 거야? 학교는 그만둔 거야?"


"네. 학교는 그만뒀어요. 어차피 야구 아니면 학교 의미도 없었으니까요."


"야구가 전부였잖아."


"뭐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다른 거 할 것도 없으니까... 나는 예은이처럼... 아... 죄송해요."


해안이 다시 한주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한주는 예은이의 이름을 말한 자신을 향해 팔을 들어 주먹으로 머리를 살짝 쥐어박고 있었다. 


"한주야. 이건 내 문제야. 내 잘못은 아니지만, 이건 나의 문제야. 그리고 선생님도 이제 선생님이 아니야. 네가 더 이상 야구부가 아닌 것처럼. 나는 여기 놀러 온 손님이야. 우린 어쩌다 친해졌고. 그러니까 이제 누나라고 불러. 내가 여기 있는 동안. 사실 당장 떠나기엔 여기가 좋아졌어. 카페에도 자주 올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제 손님 혹은 누나라고 불러도 돼. 부탁할게."


"네. 선생님... 아니... 누... 나.."


한주는 쥐어박던 손을 살며시 무릎 위에 놓고 해안을 향해 웃어 보였다. 


"고마워. 제법 제빵사 다워 보이는 걸."


"자, 커피가 다 됐어요. 커피를 못 마시는 제빵사님 빼고 다 모여요."


모두 카페의 홀로 나와 수호가 내려놓은 커피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훈의 레게스타일의 모자처럼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의 커피 잔에서 방금 내린 뜨거운 커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모든 것이 완벽한 아침이야."




이현은 속에 말을 밖으로 내 뱉어내고는 노란 커피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현이 뻗은 손과 수호가 뻗은 손이 부딪혔다. 하필 둘 다 노란 커피잔에 손을 뻗었다. 수호가 이현에게 양보하며 말했다. 


"취향이 비슷하네요."


"너는 노랑이면 질색이지 않냐?"


기훈이 수호를 보며 묻자 수호가 말했다. 


"응. 나 말고. 어떤 사람이랑 취향이 비슷하다고." 


어떤 영문인지 모르고 이현은 노란색 잔에 따라진 검정에 가까운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는 중이었다. 


"취향은 바뀔 수 있죠. 그리고 결코 같은 취향은 없어요. 같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죠."


"소울 메이트를 믿어요?"


가만히 셋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해안이 초록색 커피잔을 손에 쥐고서 물었다.


"아니요."


동시에 기훈과 이현이 대답했다. 이현은 눈살마저 찌푸렸다.


수호는 아무 대답 없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설마 수호 씨는 믿는 거예요?"


이현이 수호에게 묻자 수호가 이현을 향해 눈을 찡긋 해 보였다. 


"글쎄요, 취향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생각도 바뀔 수 있죠. 그저 조금 마음을 열었다고나 할까. 다들 마음을 조금 더 열어봐요. "


"그럼, 수호가 뭐... 많이 변했지. 원래는 내가 로맨티시스트였다고요."


"글쎄, 로맨티시스트라고 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는 않기로 했다고나 할까... 뭐..."


좀처럼 당황해하지 않던 수호에게도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엿보이자 해안이 말했다.


"영혼이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이죠.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 아닐까 싶네요. 그나저나 커피가 정말 맛있어요."


"아. 그런데... 커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현이 해안에게 물었다. 


"아. 조금 더 마음을 열어보려고요. 훗... 그리고 뭐 취향은 변하는 거죠." 


"음... 뭐야. 나만 융통성 없는 사람 같잖아."


이현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창 밖에서는 낯선 얼굴의 손님들이 카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카페의 분주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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