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Wind가 멈춘 날, 내 호기심은 커졌다
지난 몇 년 사이 재생에너지 가운데에서도 해상풍력(offshore wind)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었다. 최근 미국에서 Ørsted의 해상풍력 ‘Revolution Wind’ 프로젝트가 공정률 약 80%에 이른 상태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공사 중지(stop-work) 명령’으로 멈춰 선 사건을 보면서, 정책과 정치가 에너지 전환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거칠게 영향을 미치는지 실감했다. 올 6월 중국 출장을 가며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본 바다 위, 묵묵히 돌아가던 풍차들을 보았던 기억도 겹쳤다. 여기에 기업들의 RE100 움직임과 기후위기 대응의 긴급성이 맞물리며, 청정에너지 전환의 핵심 축으로서 육상풍력(onshore)과 해상풍력(offshore)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세계의 에너지 믹스를 보면 여전히 석유, 석탄, 천연가스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세계 전력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은 약 30%를 차지하며 꾸준한 성장을 하였다. 성장을 이끈 주역은 태양광과 풍력이다. 전력 ‘믹스’ 관점에서 풍력은 약 4% 안팎으로 아직 미비 하지만, 전 세계 누적 풍력 설비는 1TW(테라와트)를 돌파했고, 그중 해상풍력 누적은 약 83GW로 총 풍력의 약 7%를 차지 하고 있다. 아직 비중은 작지만 해상은 증가 속도가 빠르다.
해상풍력의 비중 확대는 입지의 확장성과 높은 이용률(capacity factor) 덕분이다. 육상은 주민수용성·토지확보·경관 이슈 등으로 성장 여력이 점차 제약을 받지만, 해상은 상대적으로 넓은 후보 해역과 더 좋은 바람 자원을 기반으로 중장기 성장잠재력이 크다.
유럽(EU/영국 포함)은 해상풍력의 선도 지역이다. 유럽은 2024년 말 풍력 누적 285GW 중 37GW가 해상이며, 2030년 60~90GW, 2050년 300GW 이상을 노리는 로드맵을 갖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해·발트해 중심의 해상 송전/연계망(HVDC) 구상도 진척 중이다.
중국은 2021년 단숨에 세계 1위 해상풍력 국가로 올라섰다. 현재 37GW 이상을 가동 중이며, 국유기업 주도로 대규모 단지를 계속 세우고 있다.
미국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2030년까지 30GW, 2050년 110GW를 목표로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동부 연안의 얕은 바다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등 심해 연안은 부유식 풍력으로 개발하려 한다.
일본은 2040년까지 30~45GW를 목표로 하고 있다. 국산화 비율을 높이고, 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며 시장 기반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 현재 설치된 해상풍력이 0.2GW 남짓이지만, 2030년까지 14GW 이상을 세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다만 인허가와 주민수용성 문제로 속도가 늦어, 제도 개선과 공급망 육성이 관건이다.
해상풍력의 가장 큰 장점은 바람의 질이다. 바다는 지형 장애물이 없어 바람이 강하고 일정하다. 그 결과 해상풍력 발전기는 육상보다 훨씬 높은 이용률(40~50%, 때로는 60%까지)을 보인다. 이는 같은 용량이라도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한 육상에서는 소음 등으로 인한 주민 민원, 경관 훼손, 토지 확보 문제에 부딪히지만, 해상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사회적 갈등이 상대적으로 적다.
물론 단점도 분명하다. 건설·운영비용이 더 크고, 해상공사·전용 항만·설치선·해저케이블·해상 변전소 등 인프라가 추가로 필요하다. 어업권·항로·군사구역과의 조정, 해양 생태계 영향 최소화 같은 과제도 따른다. 그럼에도 각국이 해상풍력에 집중하는 이유는 입지 확장성과 안정적인 발전량이라는 장점이 장기적으로 비용 하락과 맞물려 전력 시스템의 핵심 축이 될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해상단지는 터빈을 세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터빈에서 생산된 전력은 해상 변전소(OSS)에서 전압을 승압(Voltage-Up)해 송전 손실을 최소화한다. 해안에서 수십~수백 km 떨어진 단지는, 일정 거리(통상 80km 내외가 분기점) 이상이면 고전압 직류(HVDC)가 경제·기술적으로 유리하다. HVDC는 장거리에서 손실이 적고, 다중 단자 구성을 통해 복수 국가·복수 단지 간 전력 연계에도 강점을 보인다. 최종적으로 해저케이블 → 육상 변전소 → 계통(Grid)에 접속되어 도시와 산업으로 전기가 흘러간다. 유럽 북해는 이미 HVDC 초연결망 구상을 추진 중이고, 한국도 대규모 해상단지 확충 시 서해–수도권 연계 같은 해저 HVDC 시나리오를 검토할 수 있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해상풍력은 한국에 적합한 카드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는 국내 바람 자원을 활용해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연료 수입 의존을 낮출 수 있다. 육상은 산악지형·주민수용성 제약이 큰 반면, 서해·남해·동해 연안은 풍부한 잠재력을 지닌다.
속도와 실행력이 관건이다. 목표 대비 설치가 더딘 만큼, 특별법 기반의 원스톱 인허가, 어업·지역과의 공정한 보상·협의, 계통·항만 등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 동시에 국내 공급망을 키워야 한다. 한국은 조선·해양플랜트, 중공업, 케이블 등 강점을 보유한다. 이를 대형 터빈·하부구조·해저케이블·설치선·O&M까지 확장해 전 밸류체인을 구축하면, 내수 확대와 함께 해외 프로젝트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정부 목표(2030년 14.3GW, 2038년 40.7GW)와 최근 입찰 성과는 산업기반을 다지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출 전략이 중요하다. 유럽·미국·아시아 신흥국의 해상·부유식 시장이 커지는 만큼, 한국 기업은 설치선·해상변전소·부유식 플랫폼 등에서 조선·중공업의 비교우위를 살려야 한다. 내수에서 쌓은 실적·레퍼런스는 해외 입찰 경쟁력으로 직결된다. 금융·보증, 표준·인증, 외교·ODA 연계 지원까지 민관 합동 패키지를 마련하면 파급효과는 더 커질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바다의 풍차가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왜 바다 위에서 돌고 있을까?” 답은 단순하지 않았다. 바람의 질, 에너지 안보, 기술, 산업, 기후가 얽혀 있다. 지금 한국은 호기심을 넘어, 해상풍력을 국가 에너지 믹스의 전략적 축으로 격상할 시점에 와 있다. 멈춰 선 프로젝트의 뉴스가 일시적으로 불확실성을 키울 수는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해상풍력은 미래 전력망의 핵심이자, 우리 산업과 수출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