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말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때는 2008년,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나는 뉴욕 소재 컬럼비아 공대 석사를 막 시작한 풋풋한 유학생이었다. 당시 군 복무를 마치지 않았던 나는 세 학기 만에 코스워크와 논문을 끝내고 박사로 바로 진학할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와 병역특례를 할지 두 갈래 길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전자공학의 회로 트랙을 밟고 있던 나는 컬럼비아에 계신 세계적 거장 Yannis Tsividis 교수님의 수업을 매 학기마다 들었다. 학부 때부터 수도 없이 이름을 듣던 그분의 강의를 직접 들을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친한 형과 새벽까지 과제를 붙잡고 씨름하고, 프로젝트에 몰두하며 그의 직관적 문제 풀이와 깊이 있는 통찰을 한 줄이라도 더 배우고 싶어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어느덧 두 번째 학기가 끝나가던 5월, 여러 고민 끝에 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당시 이수한 학점은 26.5점으로 졸업을 위해 남은 학점은 3.5. 마지막 학기에 박사 준비나 병역특례를 위한 집중을 위해, 2학점이나 3학점이 대부분이었던 과목을 2개 이상 듣기도 싫었고, 내가 우상으로 생각하는 교수님과 의 마지막 한 학기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제안을 드린 것이다. 놀랍게도 교수님은 흔쾌히 “함께 실험해보자”며 직접 주제를 주셨다. 오디오 시스템에서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할 때 주파수 스펙트럼에 맞춰 비트 수를 최적화해 전력을 최소화하는 회로 설계—디테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흥미진진한 주제였고, 교수님께서는 특별히 예외적으로 3.5학점으로 변경도 해 주셨다.
그 후의 한 학기는 나의 작은 연구 인생이었다. 매일 연구실에 살다시피 하며 빵판(브레드보드) 위에 수많은 트랜지스터와 칩, 저항을 올리고 Matlab으로 데이터를 뽑아가며 끊임없이 실험을 반복했다. 박사과정 선배와 매주 데이터를 공유하고 토론하며 60페이지가 넘는 논문을 완성했고, 12월 초 교수님께 제출했다. 덤으로 교수님은 MIT, 스탠퍼드 등 내가 꿈꾸던 박사 과정 지원을 위해 직접 추천서까지 써주셨다. (결국 LG전자 병역특례로 진학은 못 했지만 지금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성적표에는 통상 잘 주지 않는 A+. 4.0 만점에 4.3이라는 숫자는 내 뉴욕 유학의 화려한 마침표였다.
시간이 흘러 16년 뒤, 당연히 은퇴하셨을 거라 생각했던 교수님이 여전히 한 과목을 가르치고 계시다는 소식을 웹사이트에서 보았다. 망설임 끝에 메일을 드렸더니 반갑다며 “화요일 오후 1시에 오라”는 답장이 바로 왔다. 작은 초콜릿을 들고 찾아간 그의 사무실은 그때 그 자리, 그 모습 그대로였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미소로 “당연히 기억한다”며 맞아 주시던 모습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날 우리는 한국의 경제 기적, 세계경제포럼과 다보스, 그리고 내 근황까지… 방대한 주제를 넘나들며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대 초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새벽까지 공부하던 내가 문을 두드렸던 그 사무실에서, 이번엔 담담히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때로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공간과 사람, 그리고 마음이 있다는 것. 그 날의 만남은 내게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 준 값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