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턴은 무얼 하나> 취업 편
그러니까, 이게 누굴 위한 지역인재인지 모르겠다니까요.
막내의 한숨이 공기를 메운다. 그놈의 '공'자가 붙은 기관엔 죄다 지역 할당제가 있단다. 지역의 인재를 채용해서 서울 쏠림을 완화하자는 취지다. 그래서, 이십 년을 지방에 살며 그 흔한 '메이저 인강'조차 듣지 않고 서울 명문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사정이 어찌 되었건 정부가 공인하는 지역인재가 될 수 없다. 계속되는 형평성 논란에도 주관기관 인사혁신처는 제도를 손보지 않는다. 부모님의 자랑이자 고향의 몇 안 되는 '서울로 대학간 애'였던 우리 인턴은 그렇게 비정규직 취업준비생으로 전락했다.
"고등학교 때 전교권 애들 있잖아요. 걔네들 다 국립대 가서 지역인재 썼어요. 공부 잘하던 문과 애들 다섯 명 중에 세 명이 그렇게 취업했다는데, 1등 해서 서울 간 저만 아직도 제자리예요."
수도권을 벗어나보자. '혁신도시'라는 이름을 달고 '공'자 기관 여러 곳을 모아둔 동네가 전국 각지에 여럿 있다. 막내가 가고 싶어하는 1순위 공기업은 2014년 대구 신서혁신도시에 새로이 둥지를 틀었다. 우리 회사에 오기 전에 일했던 광화문의 어느 준정부기관은 내년에 세종시로 이사를 간단다. 지역의 인재라 불리는 청년들은 반듯하게 짜인 혁신도시에 출근하기 위해 사활을 건다. 번듯하게 지어진 이전공공기관이 그들의 몇 안 되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하나 없는 지방의 인재는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공공의 색채를 풍기는 기관이나 지역 농협 같은 곳에 젊음을 바치거나, 고향을 뒤로한 채 서울로 떠나거나. 그들이 달려가는 도로엔 공장 기숙사나 프랜차이즈 자영업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귀향을 꿈꾸는 우리 인턴은 얼마 전 시중은행으로 전환한 대구은행의 채용 공고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일반금융 직무의 지원자격이 "최종 졸업학교 소재지가 지원하는 해당 근무권역과 동일한 자"이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에 위치한 지점에서 근무하고 싶다면 최종 졸업학교의 소재지가 대구경북 내에 있어야 한다. 태어나서부터 20년에, 코로나 3년까지 도합 23년을 대구경북에서 보낸 서울권 대학 졸업자는 무조건 수도권 권역으로만 접수하라니, "이게 무슨 지역인재같은 소리냐"며 그는 한탄한다. 서울에 고작 3년 남짓 살았다고 지원조차 못하는 상황이 억울하단다. 지하철역만 250개가 넘는 비대한 도시에서 공부하랴 대외활동하랴 생활비 벌랴 새빠지게 쏘다니다 겨우 내려왔더니 그의 앞에 놓인 건 혜택은커녕 역차별뿐. 그저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막내는 오늘도 구인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린다.
"어디서 봤더라, 청약에선 무주택 기간이 15년이면 가점이 만점이래요. 전 20년 넘게 같은 집에 사는데 집 앞 은행 채용엔 발도 못 들이미는데... 저 지난번에 중소 넣었던 거 면접 갔더니 고학력자라고 뭐라 한 거 아세요? 제가 그랬거든요. 여기 집 근처에서 진짜 제일 괜찮은 기업이라고, 저 그냥 본가에 살면서 오래 일하고 싶다 했는데 도통 못 믿는 눈치셨어요. 왜 너 같은 사람이 여길 오냐, 1년도 안 하다 나갈 거 아니냐, 자기들은 저만큼 똑똑한 사람 필요하지도 않다면서 계속 압박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이해는 가는데 억울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떨어지니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경북대 가서 지역인재 할당 받으면 이거보단 쉽게 공기업에 취업하지 않았을까, 뭐 그런... 대학 등록금만 오천 가까이 냈는데 하등 쓸모가 없다니까요. 이번 하반기만 해보고 안 되면 돈 조금만 더 모아서 서울 다시 갈까봐요. 아, 요즘에 누칼협 이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는 말이 있거든요?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 하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누칼협이라고 하더라구요. 니가 선택해서 서울 간 건데 왜 징징대냐는 건데... 가끔 아예 한국을 뜨는 게 맞나 싶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