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이사장이 불구속 기소됐다. 이사장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욕이나 해볼까 하는 치기 어린 마음으로 기사를 찬찬히 읽다가, 문득, 어딘가 이상했다. 혐의는 '업무상 배임', 5년여간 230차례에 걸쳐 업무추진비 약 2천만원 상당을 사적으로 사용했단다.
'5년여간, 230차례, 1960만원'을 환산해보자. 1년에 392만원, 한 달에 326,666원, 회당 8,521원. 권익위 조사 결과 사용처는 정육점, 백화점, 반찬가게 등이라고 한다. 비싼 물건을 샀다면 분명 헤드라인이 바뀌었을 테다. 예를 들어볼까. <'법인카드로 디올백 구입' 유시춘 EBS 이사장 불구속 기소>. 유시춘이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만 어쩐지 백화점에서 명품백보다는 식재료를 살 것만 같다. 참고로 2024년 9월 기준 KBS 이사장 월급은 직무수당 4,720,000원과 회의수당 900,000원을 합쳐 562만원이며,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로 쓰는 것은 명백한 죄다.
구직자들에게 두 가지 당부말씀을 드린다. 첫째, 공공이나 정치와 엮이면 곤란해진다. 상대적으로 다니기 편한 직장이라 여겨지는 공기업에 간다면 날씨 좋은 가을에 휴가 쓰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시라. 10월에 있을 국정감사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법인카드로 무소불위를 누리고 싶다면 공공의 성격을 띠는 회사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국정감사에서 털리지 않는다면 이렇게 권익위가 흔들어준다.
삥땅을 노리는 이들에게는 공공기관 대신 보험사의 영업직을 추천한다. 규제가 빡세지곤 있다지만 아직은 잠재 후보자들과 소고기를 먹으러 다녀도 괜찮다. 디올백을 살 수는 없겠지만 점심식사 정도는 법카가 상당 부분을 보장해준다. 대형 손보사 기준 초봉은 월 300으로 시작하니, 오래 다니면 EBS 이사장 월급도 금방 뛰어넘을 수 있다. 아무렴 법카 보기를 본디 돌같이 해야 하지만, 때깔 고운 소고기의 유혹을 뿌리치기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