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높이기
인간은 삶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기 위해 살아야 한다 배웠다.
그렇다면 삶의 질과 양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삶의 질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윤택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질 증가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주체적 삶을 살지 못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그러지 않으려면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결국 이 질문들은 '나는 누구인가?'로 귀결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면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그것을 얻기 위해 지금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지금 당장 어떤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삶의 질이 끊임없이 증가한다.
그렇다면 삶의 양은 어떤가? 이 말은 언뜻 생각하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살기'같은 걸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양을 증가시킨 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삶의 질 증가와 함께 지식의 양, 경험의 양을 증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내가 어떤 것에 호기심이 있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이는 곧 호기심 해소를 위한 지적 욕구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지식을 쌓으면 지식의 양이 늘어나고, 이 지식을 경험으로 옮기기 위해 실행을 하면 경험의 양 또한 늘어난다.
삶의 질과 양을 증가시킨다는 것은 한마디로 철학적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삶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의 뇌는 기본적으로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구조로 짜여 있다. 자신이 아닌 부모의 의지로, 또는 주변 사람의 영향으로 얻은 지금의 상태가 만족스럽다면 우리의 뇌는 더 이상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그저 지금을 유지하기 위해,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전 긍긍할 뿐이다. 이런 본능을 누르고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대단한 의지가 필요한 일이며, 이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거나 만들어서 변화를 시도하는 '문화적 존재'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文化(문화)란 무엇인가. 한자어 文(문)은 문자, 문학, 예술 등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적이고 예술적인 활동을 말한다. 化(화)는 변화, 발전, 영향을 의미하며,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文化란 문자, 예술, 교육등이 사람에게 미치는 변화, 발전, 영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축약할 수 있다.
철학적 삶을 산다는 것은 문화적 존재로의 도약을 의미한다. 아이폰을 만들어 스마트폰의 시대를 연 스티브 잡스, 전기자동차와 AI로 세상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은 모두 문화적 존재다. 세상은 문화적 존재들이 있음에 진화한다.
나는 나 자신의 진화로 인해 세상의 진화를 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철학적 삶을 산다는 것은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길이다. 그 길엔 끝이 없겠지만, 끝없이 즐거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