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소산오름에 사는 딱따구리

by 김용희

소산오름은 <제주시 아라일동 산 37-1>에 있는 오름이다. 이곳은 작은 편백 숲으로 걷기 아름답고, 평상이 많아 여름에 수박을 갖고 숲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내가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건 함께 동네를 산책하는 희 언니 덕분이었다. 언니는 이곳에 평상이 많아 쉬기 좋으니 언제 한 번 같이 가자고 했다.


'뭔가 좀 심심한 숲 아닐까?'


평소 걷기 좋아하는 나는 숲이 작고, 사람도 많다고 하는 이 소산오름에 선뜻 들어가진 못했다. 뭔가 복잡한 건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이 숲 건너편 <제주시 아라일동 산 67-4>이었다. 이곳은 삼의악 오름 관음사 코스로 숲이 깊고 사람이 없으며, 한 번 들어가면 만 보를 걸어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어서 강제운동으로 아주 좋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혼자 삼의악 오름으로 들어갔다.


'역시 너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이 정도의 경사 너무 좋다. 심심하지 않고 딱 좋아!'


삼의악 오름을 찬탄하며 신나게 혼자 걷고, 시원한 기분을 느끼며 나오려는 데, '이 시점에서 집으로 음식을 배달해 놓으면 내가 집에 갔을 때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원래 나는 숲에 들어가면 온전히 숲에 집중하고, 이런 생각을 잘하진 않는 데, 숲이 익숙하다고 좀 자만했던 것 같다.


산길을 내려오며, 배달앱을 켜서 주문을 넣으려는데 "꺅!" 계단에서 제대로 미끄러졌다. 이 정도면 거의 '조난 각'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엉덩이와 팔 뒤쪽이 아려왔다.


'지금 일어날 수 있는 건가?' 나는 스스로 물었다. 일어나기엔 너무 아팠고, 119를 부르기엔 좀 덜 아픈 애매한 상황이었다. '아, 조난은 이런 식으로 당하는 거구나.' 나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든 일어났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이 정도 다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지금 내가 여기서 못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일단은 일어났기 때문에 걸어졌다. 그나마 여기서 내려가는 길이라 몸이 좀 풀려 있어서 다행이었지, 준비운동 없이 떨어졌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침에 요가하고 온 것도 큰 부상을 막은 천운이라 생각했다. 두 명의 등산객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아마 이제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먼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나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게 인사했다.


'아휴, 빨리 일어나서 다행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누워서 저분들께 인사할 뻔했네.'


머릿속에 상황이 그려지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나는 다치지 않고, 아프지만 어쨌든 일어나 준 내 몸에게 감사하며 삼의악을 나왔다.




삼의악에서 넘어진 이후 나는 홀로 있는 숲에서 사고가 나면 정말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삼의악에 혼자 들어가는 것을 멈췄다. 대신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제주시 아라일동 산 37-1>에 있는 소산오름으로 갔다.


이 소산오름은 예전에 산신제를 지냈었던 오름이기도 하고, 고려 예종 때 송나라 호종단이 제주에 와서 명산의 모든 혈(穴)을 질러버리고 떠나던 날 갑자기 솟아나 한라산의 맥이 다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다는 전설도 있는 오름으로, 뭔가 알 수 없는 특별한 기운이 가득 찬 곳이다. 참고로 이 오름의 이름인 ‘소산’은 솟았다는 의미이다.


이곳에 가면 나는 항상 포근하고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여기가 마이클 A. 싱어의 『될 일은 된다』의 한 구절에 나오는 곳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책에는 마이클 싱어가 세상만사로부터 떨어진 고립된 장소를 찾다가 한적한 땅을 발견하고 그곳에 오두막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부드러운 능선의 언덕을 올라가 부지의 북쪽 경계를 이루고 있는 울타리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목초지가 야트막한 내리막 경사를 그리며 펼쳐져 있었고 그 끝에는 일렬로 늘어선 나무를 따라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땅의 북쪽 면 전체가 이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풍경을 굽어 보고 있었다. (...) 숲은 고요하고 아늑했다. 마치 자궁 속에 있는 것 같았다. (...) 그리고 돌아온 순간, 나는 내가 드디어 집을 찾았음을 깨달았다.


-마이클 A. 싱어 『될 일은 된다』, p.73.」


'이곳이 꼭 책에 나온 그곳 같잖아.'


나는 마이클 싱어의 책을 읽다가 문득 나도 작은 숲을 갖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상상에 빠진 적이 있는데, 마침내 정원과 같은 이 작은 편백숲을 발견해서 기뻤다. 소산오름은 편백의 향이 가득하고, 바닥에는 까만 제주 흙으로 덮여 있는 아늑한 곳이다. 나는 이곳의 느낌이 좋아 매일 찾아갔고, 이 숲이 주는 편안함 덕분에 다녀오면 늘 기분이 좋았다.


아마 내가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 숲 앞에는 안내도와 함께 <편백나무 숲, 피톤치드의 효능>이라는 안내판이 있는 데 그냥 읽기만 해도 몸이 절로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편백나무는 측백나무과이며, 우리 몸에 이로운 치유 물질 피톤치드를 침엽수 중에서 가장 많이 방출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 '피톤치드'는 나무나 식물이 내뿜는 성분으로 해충이나 벌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 우리가 산림욕을 하게 되면 기분도 상쾌해지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데, 이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피톤치드다. 피톤치드에는 항균효과, 스트레스완화, 신체진정작용, 면역력 강화와 같은 효능이 있으며, 오전 10시 ~ 2시 사이에 가장 많은 양이 나온다고 알려져 있다.」


피톤치드를 맡기 위해서는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시간을 맞춰서 가면 좋았겠지만, 일정이 늘 그렇게 맞지는 않았다. 나는 피톤치드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이 숲을 찾았다. 아무 때나 가도 이 숲은 늘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사람들은 오전 9시경이 되면 한 둘씩 들어오고, 오후 4시~5시가 되면 모두 다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겨울이 되면 오후 4시경 이 숲에는 아무도 없어서 좀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은 사람이 없을 것 같았지만,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는 비가 와도 한 두 사람은 계속 이곳을 찾아왔다.


이 숲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뒤 이 숲의 가장 예쁜 시기는 편백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가을이라는 것을 알았다. 편백잎이 온 산을 황금빛으로 덮어 버리면 내 마음속 잃어버렸던 풍요로움과 영감도 함께 폭발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직접 느끼는 편백잎의 색감과 바닥에 밟히는 낙엽의 생생함은 작은 사진에 모두 담기지 않아 아쉬움만 남겼다.


아름다운 소산오름




소산오름에 처음 갔을 때, 많은 사람이 맨발로 길을 걷고 있는 게 보였지만, 나는 선뜻 맨발로 걷진 못했다. 왠지 좀 창피하기도 하고, 내 나이에 맨발로 걷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특히 맨발로 걸으면 발을 다 버리는 데, 그 뒤처리가 너무 귀찮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리 몸에는 30∼60mV의 양전하가 흐르는 데, 맨발 걷기를 하며 발과 땅과 만나는 순간 0V가 된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나는 흥미가 돋아 관련 기사를 천천히 읽어 보았다. 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몸은 원래 활성산소가 있는데, 이 활성산소의 역할은 몸의 곪거나 상처 난 곳을 치유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한다. 하지만 몸이 다 치유되고 나면 활성산소가 몸 밖으로 배출돼야 하는데, 몸속 양전하 때문에 배출되지 못하고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멀쩡한 세포를 공격해 몸에 병이 나는 것이라고 했다. 맨발 걷기를 하기 위해 땅과 접지(earthing)하는 순간 몸이 0V가 되면서 활성산소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아, 이 무슨 참신한 이야기인가?'


나는 살짝 호기심이 동했다.


그러다 같은 날 요가에 갔는데, 웬일인지 잘 되던 동작도 안 되고, 그날따라 낑낑거리게 됐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은 뻣뻣해진 내 몸을 보다 못해, 나를 엎드리게 한 뒤 발을 밟아 주셨다.


"아!"


아픔에 괴성을 지르고 있는데, 요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용희 씨, 발바닥이 엄청나게 뭉쳤네요."


나는 발바닥에 근육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지만, 그게 뭉칠 수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오늘따라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 게 혹시 나에게 소산오름에서 맨발로 걸으라는 신호 아닌가? 사람들도 많이 걷는 데, 내일은 나도 한 번 걸어봐야지.'


그렇게 결심하고, 다음 날부터 나는 소산오름을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흙의 감촉은 그야말로 황홀했다. 공중에 둥둥 부유하던 내 몸에 새로 두꺼운 뿌리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인간은 불안정해지고, 어떻게든 두 발을 땅에 오롯이 붙이고 서 있을 때, 더 강인한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려면 흙을 밟아야 하는 거였다.


나는 왜 그동안 흙이 주는 에너지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흙을 밟으면 밟을수록 내 몸이 더 건강해지고 깨어나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이곳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마음에 핸드폰도 하지 않고, 늘 혼자 조용히 몸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맨발로 걷는 것은 무척이나 아팠다. 삼의악에서는 만 보를 걸어도 지치지 않던 나였는데, 소산오름에서는 맨발로 이천 보 정도 걸으면 쉬어야 했다.


‘이렇게 나약한 나인데, 신발 신었다고 너무 자만하면서 산을 오르내렸군. 앞으로는 절대 자만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맨발 걷기를 하면서 점점 더 겸허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발이 너무 아파서, 조금 걷다 쉬고, 조금 걷다 쉬고 해야 했지만, 한두 달 꾸준히 찾아간 결과 숲 속을 빠르게 걸어도 아프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몸의 변화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숲을 찾았다. 발이 뻐근해서, 글이 잘 안 풀려서, 새로운 생각이 필요해서... 그렇게 매일 오는 나를 보며, 이 숲을 자주 찾으시는 분들이 하나 둘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여기 오는 많은 사람이 대부분 내게 맨발 걷기로 몸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흙이 주는 생명력이 엄청나다는 걸 알았다. 두 다리만 땅에 착 붙일 수 있으면 우리는 혹시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는 것 아닐까?'


여기 숲은 그리 크지도 않은 데, 이 작은 땅이 인간에게 그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숲을 좀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잠깐 와서 흙을 밟는 것만으로도 병이 나을 수 있다면, 후손을 위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런 뻔한 말을 하는 것보다는 숲이 주는 강한 생명력을 믿고, 우리가 나중에 늙거나 아플 때를 대비해서 갈 수 있는 숲도 좀 남겨둬야 하지 않나? 하는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는 만나는 사람에게 소산오름 맨발 걷기를 추천했고, 나의 지인들은 나를 따라 종종 이곳을 방문했다.


"자기야, 여기 정말 좋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아."


"뭔가 딱 집어 말할 순 없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


"덕분에, 신기한 경험을 하네요."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고, 나는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행복한 경험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덩달아 행복해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내가 맨발 걷기 하는 걸 보고 자주 말을 걸었다.


“맨발로 걸으면 좋아요?”


“네 좋죠. 맨발로 한 번 걸어보세요. 맨땅에 발이 닿으면 좀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 맨발로 걸으면 몸에 있는 활성산소도 다 빠져나간다네요.”


가끔 내 말을 듣고 궁금한 마음에 흙을 밟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오늘은 어디선가 ‘딱딱 딱딱 딱딱딱’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딱따구리 소리였다. 이곳은 딱따구리가 많이 산다. 실제 모습을 볼 수는 없는데 어딘가에서 나무 쪼는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딱따구리의 모습을 한 번 보려고 소리가 나는 나무 위를 쳐다보면 딱따구리의 모습은 늘 찾을 수 없다. ‘소리는 가까이서 들리는 데 어디 있지?’ 하면서 두리번거리며 딱따구리의 행적을 찾는다. 볼 때마다 딱따구리를 발견하지는 못했었는데 오늘은 운이 좋게도 어설픈 딱따구리를 만났다.


딱따구리 소리에 오른쪽을 쳐다보니 큰 오색딱따구리 수컷이 먹이를 잡으러 나무를 '톡톡' 두드리면서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동영상을 찍었다. 나무에 수직으로 붙어서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딱따구리는 부지런히 부리로 '톡톡' 나무를 두드리며 먹이를 찾고 있었지만 두드릴 때마다 계속 헛방이었다.


'큰 오색딱따구리야.

너도 나도 열심히 살았지만

오늘도 우리는 헛방이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잠시 생각하다가 자연에서 딱따구리가 벌레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저리 노력하며 살고 있는 데,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참고로 머리 꼭대기가 붉은 큰 오색딱따구리는 수컷이다.





지난겨울 눈이 내리기 전까지 난 소산오름을 방문했다. 겨울 산은 무척 춥고, 맨발로 걷기는 어렵다. 하지만 난 이곳을 너무 좋아해서 눈이 오기 전까지 최대한 산을 걸어보기로 했다. 겨울은 산꼭대기부터 내려오기에, 지대가 조금 높은 소산오름의 흙은 차갑고 또 차가웠다.


나는 붙이는 핫 팩이 도움이 될까 싶어 발 등에 붙이고 걸어보았지만, 핫 팩은 주머니 안에 보온이 되는 공간에 있어야 작동하는 건지 차갑고 무겁기만 했다. 가끔 불량이 있어 핫 팩이 터지는 경우에는 산을 오염시킬까 봐 그 뒤론 핫팩을 포기했다. 핫 팩이 효과적이면 산행하시는 분들이 발등에 붙이고 하시겠지... 아무도 하시는 분들이 없으신 걸 보면 역시 핫 팩은 별로 효과가 없나 보다 생각했다. 우리는 신발이라도 신을 수 있지, 새들은 어떻게 이런 추위를 참고 견디는지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가끔 발이 너무 시려 편백나무 잎 위에 발을 대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그 위에 올라서서 걸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흙을 밟으면 건강해지는 데, 잘 모르고 이 추위에 편백나무 잎을 걷고 갈까 봐 나에게 해 주신 말씀이다.


"너어무 발이 시려서요..."


가까스로 대답하는 내게 아저씨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지나가셨다.


겨울 숲의 맨발 걷기는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 이곳을 좋아하는 안경 쓴 어머니와 뽀글 머리 어머니는 항상 계셨고 그 밖에도 가끔 오시는 단발머리 어머니와 방금 지나가신 아저씨도 늘 계셨다.


"자기야, 이리 와봐."


길을 걷고 있는데 단발머리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나는 너무 추워 말이 잘 나오지 않아 일단 가까이 다가갔다.


"이거 마셔봐."


겨울 숲은 너무 추웠고 온기가 그리워 냉큼 마셨다.


사계절을 숲에 오다 보니, 겨울 숲은 느낌이 정말 달랐다. 여름은 사람이 너무 북적여 서로 데면데면하고 겨울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온기를 나누는 사람끼리는 끈끈한 우정을 나눈다.


"이게 뭔 데요?"


한 잔 먼저 마신 후 내가 말했다.


"보이차."


"보이차요?"


"내가 매일 마시는 건데, 이걸 마시면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아."


나는 절대 팔랑귀가 아니지만 듣고 보니 나도 머리가 맑아지는 듯했다.


"이곳에 매일 오세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남편이 여길 좋아해서 따라오는 날 있고, 못 오는 날 있지."


단발머리 아주머니는 개인적인 말을 아끼는 분 같지만, 내게 몇 마디 건넸다.


"나도 자기만 한 나이대가 있었는 데... 자기는 여기 매일 오나 봐?"


"네, 글을 쓰고 있는데 좋은 생각을 하러 많이 오죠."


"나도 그럴 때가 있었는 데, 지금 하고 싶은 걸 많이 해둬요. 나이 들면 내가 누구인지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나는 애들 다 키우고 50에는 좀 살만하더니, 60이 넘으니 멍해지고 내가 뭘 좋아한 지도 다 까먹어 버렸어. 자신을 찾는 건 결국 젊을 때부터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할 수 있는 것 같아."


너무 추워하는 나를 보고 단발머리 어머니는 보이차를 다섯 잔이나 주셨다.


"자기야, 다 마셔."


보이차로 따뜻하게 배를 불린 나는 단발머리 어머니께 질문했다.


"저는 저를 특별히 힘들게 하는 사람도 없는데, 왜 힘들다고 느낄까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잠시 멍해졌다.


"누구나 그렇지, 하고 싶은 게 많으면 힘들다고 느끼고 자기가 가진 걸 잘 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늘이라도 가진 걸 쓰려 노력해 봐요."


나는 겨울 숲에서 현인을 만난 듯했다. 그 뒤로 단발머리 어머니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아직 어머니를 보진 못했다. 가끔 소산오름에 가면 나도 모르게 단발머리 어머니가 기다려진다.



나는 소산오름에 처음 가본 뒤 소산오름에 반해 사계절을 소산오름에서 보냈다. 어느덧 소산오름에도 봄이 왔다. 오늘도 나는 소산오름 주차장에 주차하고 맨발 걷기 하는 곳으로 내려가는 참이었다. 고사리 복장을 한 할머니 두 분이 헐레벌떡 나에게 뛰어오셨다.


“여기 고사리 어디서 따요?”


나는 제주 도민들은 나만 빼고 모두 고사리 따는 곳을 아는 줄 알았는데 신선한 질문에 당황했다.


“저... 여기는 고사리 따는 곳이 아니고 맨발 걷기 하는 곳이에요.”

그제야 할머니들은 서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린 여기 차들이 죽 서 있어서 고사리 따는 곳인 줄 알았어요.”


나는 멋쩍게 웃으며 할머니들을 배웅했다. 봄에 고사리 어디서 따는지는 나만 모르는 게 아닌가 보다.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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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넘치는 소산오름

딱따구리는 원래 만나기 힘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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