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결혼식에 대한 부모님의 생각
2015년 12월 27일 일요일 점심.
창원의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 두 가족이 만났다. 나와 내 부모님, 그리고 남자친구와 그의 부모님.
외국에서 근무 중인 남자친구의 사정 때문에 상견례 날짜는 조금 급하게 잡혔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을지 일주일을 고민했지만, 결국 평소에 입는 옷들로 짐을 꾸려 김해로 내려갔다. 같은 문제로 마음이 어지러웠던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아빠를 상대로 패션쇼가 한창이었고, 남자친구네 집에서는 시아버님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새 아이템을 장만하셨다. 어딘가 캐주얼하고 수수해보이는 내 옷들이 못마땅하셨던 아빠는 토요일 저녁 집에 도착한 순간부터 일요일 점심 직전까지 근처 아울렛에 가서 새 옷을 사오라는 잔소리를 내내 늘어놓으셨다.
우여곡절 끝에 두 가족이 만났고, 우리는 어색하지만 따뜻한 그런 시간을 보냈다. 어색하지만 따뜻한, 그런 시간.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여러 이야기가 오갔고, 남자친구가 우리의 결혼식 계획에 대한 스피치를 시작했다.
우리 커플은 처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부터, 작은 결혼식 형태로 식을 올리자는데에 동의했었다.
어설프게 바로크 건축 양식을 흉내낸 대형 예식장의 흰색 기둥이나 대리석 바닥, 신부가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그 뒤를 따라다니며 드레스 모양이며 화장을 고쳐주는 낯선 예식장 이모, 여러 개의 홀 중 어떤 홀이 내가 가는 결혼식인지 찾아헤매야 하는 그 번잡한 기분 들은 처음부터 나와 맞지 않았다. 하객들과 잠깐 사진 찍고 식 끝나고 밥 먹고 집에 가는 결혼식 문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남들이 하는 방식을 특별한 이유 없이 그대로 좇아가기를 꺼리는 사람이었으므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셀프 웨딩', '작은 결혼식'과 같은 컨셉에 이끌렸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결혼식을 꿈꾸지만, 결혼식 하객의 대부분은 사실 상 부모님의 손님이기 때문에 하객 수에 제한을 두기가 어렵고, 또 그간 뿌린 축의금에 대한 재수거(?)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작은 결혼식의 꿈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 커플의 경우, 그런 점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대한민국 신혼 부부들의 평균 결혼비용이 5천만원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에 분개하시는 분들이었고, (여기에 집값을 더하면 평균적으로 2억이 넘는다고 한다)
남자친구의 부모님 역시 허례허식은 타파해야 마땅하며, 대학까지 부모가 보내줬으면 그 이후부터는 자식이 부모에게 손벌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었으므로,
"저희가 모은 돈으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가까운 분들만 초대하여 작지만 뜻 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두 부모님들께서는 반대는 커녕,
"너희가 좋은 선례를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너희처럼 작은 결혼식을 지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우리를 엄청 기특히 여겨주셨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천만 원 단위의 축의금을 거절하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미안한 소리 해가며 결혼식 초대를 자제한다는게 결코 쉽지 않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들만 초대하여 총 하객을 100명 내외로 제한하기로 했기 때문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빠가 다니신 회사의 직장 동료분들, 엄마의 오래된 동창 친구들, 10년 넘게 산 아파트의 친한 이웃들에게 '작은 결혼식이라 초대를 못해 미안하다'는 의도치 않은 쓴소리가 전달되어야 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서도 이 달갑지 않은 과정을 똑같이 겪으셔야 했다.
뿐만 아니다. 나와 내 남자친구 역시 왠만큼 자주 보는 친구들이 아니고서야 하객으로 초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널리 알리기기가 조심스러웠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나 결혼해. 그런데 작은 결혼식이라 초대는 어려울 것 같아'라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 3자를 통해 결혼 소식을 전해들었거나, 결혼 사실을 뒤늦게 알게된 친구들은 '서운하다'고 감정을 표하거나, '네가 결혼 이야기를 주위에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던데...'라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가 부모님께서는 우리의 뜻과 취지를 이해해주시고 실천에 앞장서주셨다. 우리가 결혼식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부모님들께 가장 감사했던 부분들 중 하나다.
물론 작은 결혼식에 대한 저항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부모님보다 조금 더 보수적이시고 '전통적인' 결혼 방식에 익숙하신, 할머니를 비롯한 친척 어른들께서는 나와 부모님을 크게 호통치시며 '친척들 다 부르지도 않는다니, 그게 무슨 결혼식이냐'며 꾸짖으셨다. 결국 중간 지점에서 애매하게 타협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자랑스러운 시어머니께서는 "마음이 불편하긴 하지만, 원래 관습을 타파한다는게 당연히 불편하고 어려운거야~'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점심식사를 겸한 상견례 자리에서 두 가족은 서로가 생각하는 작은 결혼식에 대한 이미지와 생각을 나누었고, 양가 부모님 모두 '작지만, 초라하지 않은 결혼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부하셨다. 대형 예식 업체의 도움 없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멋진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하객들에게도 내심 보여드리고 싶으셨던 것 같다.
상견례를 위해 남편이 귀국한 것은 12월 26일 토요일. 상견례는 27일 일요일. 상견례에서 이야기된 결혼 예정일은 5월 29일 일요일.
남편은 크리스마스 휴가에 맞춰 일주일 동안만 귀국한 것이었으므로, 1월 3일 일요일에 출국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결혼식 전 까지 남편이 한국에 다시 들어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으므로, 우리는 주어진 일주일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계획하고 결정해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꽤 많은 것을 결정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