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2개월 차에 발견한 맘 카페의 매력
임신 초기, 예상치 못했던 임신 사실에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고 일단 가입한게 시작이었다. 뭐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접속한 대한민국 대표 맘 카페라는 그 온라인 커뮤니티는 처음부터 나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아니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자신의 임신/출산 소식과 난임의 어려움 같은 이야기를 여기에다 공유하고, 소아과 의사에게 물어야 할 의료 지식을 여기에다 묻고, 당근마켓으로 가야 할 중고물건을 여기에서 팔고 있는 것인가. 게다가 게시글의 상당수가 물건 공구나 홍보성 내용이라, 실질적인 육아 노하우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오히려 난잡하게 느껴졌다. 각종 카페 활동 관련 규칙과 공지사항들도 눈을 어지럽혔다. 출산 준비물을 검색해보다가 끝도 없는 물건 리스트에 결국 학을 떼고 나왔다. 왜 맘 카페가 엄마들 사이에서 성행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게시판별 용도와 목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몰랐던 과거의 나. 요즘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공간을 들락거린다. 특히 아기에게 수유를 하는 몇 십분 동안 자유로운 한 손으로 쉽게 할 수 있는게 스마트폰을 보는 일이라 더 자주 접속하게 된다. 내가 보는 게시판은 딱 두 개인데, 하나는 미국 맘들을 위한 방, 다른 하나는 신생아 맘들을 위한 방이다.
미국 맘들 방은 그야말로 미국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필요한 갖가지 육아 정보와 미국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상담글, 미국 쇼핑몰 세일행사와 관련된 글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의 '국민 욱아템'을 대체할 수 있는 미국 육아 용품에 대한 정보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 필요한 민원/행정 업무 절차라든지, 코로나 PCR 검사와 관련된 정보 같은 것도 공유받을 수 있어서 유용하다. 단점은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에 갑자기 눈독을 들이게 된다는 점 정도. 하지만 이건 쇼핑 욕구를 조금만 참으면 되니까 괜찮다. 하지만 신생아 방에 대한 감정은 조금 복잡미묘하다.
사람들이 신생아 방에 접속하는 주요 목적은 늘 동일하다. '우리 아기가 월령에 맞게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이다. 우리 아기가 혹시 지나치게 적게 혹은 많이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아기처럼 잠을 잘 못 자고 보채는게 정상인지, 내가 엄마로서 우리 아기에게 뭔가 잘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등등. 문제는 우리 아기의 안녕을 위해서 접속했으면서 게시글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리 아기와 남의 집 아기의 좋아보이는 점들을 비교하게 된다는거다. 다른 집 아기들은 이맘 때 여섯 시간씩 잔다던데 왜 우리 아기는 세 시간 밖에 못 잘까. 다른 집 아기들은 네다섯 시간씩 안 먹고 잘 놀고 잔다는데 왜 우리 아기는 두 시간 마다 배고프다고 보챌까. 다른 집 엄마들은 벌써 수면교육을 시작했다는데 나도 얼른 더 공부해서 뭔가를 시도해봐야 하는게 아닐까. 사소한 것들을 하나 둘 비교하기 시작하면 점점 우리 아기의 단점들만 부각되고 나는 세상 부족한 엄마가 된다. 그렇게 자괴감에 빠지고 밤은 깊어가고 눈은 아파오지만 생각이 복잡해져 잠은 오지 않고... 다음 날 남편에게 '우리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라며 안 잡아도 될 트집을 잡게 되는 거다.
신기하게도 친정엄마가 미국에 와계셨던 기간 동안에는 아무리 아기가 울어도 엄마가 잘 달래주시고 안아주셨기 때문인지 '내가 잘 하고 있나?'라는 걱정이나 불안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엄마는 아기에게 얼마를 먹여야 한다, 언제 재워야 한다, 어떻게 재워야 한다, 같은 것들에 대한 특별한 규칙이나 기준이랄 것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그 때마다의 아기의 요구사항을 잘 들어주셨다. 소위 '요즘 육아방식'에 대한 정보가 없으셔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엄마가 아기를 돌보시는 방법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던 그 기간 동안에는 '아기가 잘 크고 있는게 맞나?' 같은 걱정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맘 카페 같은 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맘 카페 접속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까지 내가 느꼈던 불안감이 사실은 맘 카페의 부작용이자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오히려 그 시간에 아기를 더 잘 관찰하고 요구사항을 더 잘 알아주는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거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한동안 의식적으로 맘 카페 접속을 자제해왔다. 그러나 친정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시고, 혼자서 아기를 젖 먹이고 재우는 시간이 길어지자 다시 스마트폰을 손에 쥐는 시간이 늘어나고... 맘 카페 접속을 재개하게 되었다.
다만 이번에는 나의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 내 아기를 다른 집 아기와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보니까, 맘 카페의 무수한 상담글, 고민글들이 비로소 엄마들의, 그러니까 나와 비슷한 입장에 처한 30대 전후의 여성들의, 수다로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가 이만큼씩 먹는게 괜찮은게 맞는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다기 보다는, 아기의 적정 수유량이 요즘 최대 관심사인데 이런 이야기는 맘 카페가 아니면 어디 가서 할 데가 없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이다. 우리 아기가 열 시간 동안 통잠 자는 이야기도, 몇일 만에 수면교육에 성공한 혹은 실패한 이야기도 다 같은 맥락이다. 이런 주제로 수다 떨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데, 남편의 미적지근한 호응만으로는 부족하고, 부모님한테 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비슷한 나이대의 아기가 있는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정말 입이 근질근질한데 이야기 할 사람이 없는 거다.
그렇게 보면 세상 모든 엄마들 (특히 신생아를 둔 초보 엄마들) 너무나 귀엽고 또 한편 짠하다. 조금이라도 더 잘 해보고 싶어서 맘 카페에 글을 올리고, 다른 경험자들에게서 확인받고 또 확인해주고... 그들의 인생 최고 우선순위가 '신생아 돌보기'인 그 상황 자체가 같은 육아 동지로서 가슴 찡하게 짠한 것이다!
오늘은 신생아 방에 올라온 어떤 게시글을 보고 그 애틋함이 극에 달했다. 백 몇 십일 된 아기를 둔 엄마가 올린 글이었는데, 요지는 '귀하게 낳은 우리 아가, 자기 속도로 잘 크고 있으니 너무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재촉하지 말아요. 우리 엄마들도 너무 잘 하고 있어요. 화이팅!'이었다. 오 어찌나 아름다운 글이었는지. 본인도 이미 육아로 지치고 힘들텐데 다른 엄마들을 토닥여주는 글을 쓸 여유까지 있다니, 그리고 그 내용이 이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심금을 울리다니. 스크롤을 올리다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녀에게 찐한 연결감을 느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맘 카페의 매력에 흠뻑 취해버린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