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부터 저녁 5시까지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블로그도 쓰며,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다.
호주에서 보내는 요즘 내 생활이다.
누군가가 본다면 여유롭게 지낸다며 부러워할 수도 있는 생활.하지만 그 여유 속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다.
왜냐하면 나는, 4개월 차 백수 워홀러이기 때문이다.
집에만 있어서 너무 답답할 때 자주 찾는 집앞 공원.
같이 사는 요한이를 포함하여 가족, 친구들까지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지만,평일에 집 아니면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스스로가 한심하고 처량하게 느껴진다.
이러면 한국에서 백수생활했던 거랑 뭐가 다른가 싶다.특히 평일 아침에 한산한 마트에서 장 볼 때나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보여줬을 때는보이기 싫은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내내 불편하다.
이런 마음이 신체적으로도 나타나는 건지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다.불안도도상당히 높은지 누가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밤에는 집에 혼자 있지도 못하겠다.마음도 몸도 불편하고 힘드니 무기력해진다. 구직을 할 기운도, 용기도, 의욕도 다 떨어지고 있다.
지원하면 뭐 해, 자기소개서 열심히 작성해서 넣어보면 뭐 해, 어차피 연락도 안 올걸 뭐 하러 해.
사실 호주에 와서 일을 하나도 안 한건 아니다.
한인 키친핸드 잡을 3주 동안 하긴 했었다.
키친핸드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알겠지만 주방 안에서 물 맞아가며 정신없이 그릇을 닦아야 하는 일이다. 시급은 꽤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체력적으로 상당히 부담이 많이 가는 일이었고,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건 내 예상을 훨씬 벗어난 일이라 미래를 생각해 봤을 때 좋은 경력은아니었다.
여기는 사장은 호주인이고 헤드셰프는 한국인인 커피도 팔고 브런치도 파는 카페 겸레스토랑이었는데, 바깥에서 손님 응대하는 건 다 호주 친구들이고 주방에서 불, 물 맞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아시안인 요상한 근무 환경이었다.
그 아시안들도 대부분 한국인이어서 영어를 쓰는 일은 거의 없어서 영어를 안 쓰는 환경도 내 호주워홀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결국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3주 일하고 얻은 건 조금만 무리해도 시큰해지는 손목과 손바닥 흉터, 그리고 그만둔 지 한 달이 지나도 받지 못한 일주일치 급여다.
밥과 커피는 잘 줬던 애증의 직장. 돈이나 빨리 달라고요.
생활비가 부족해서 당장 마음이 급한 건 아니지만
이 급여를 아직도 못 받는 것도 상당한스트레스라서 이미 예민해진 마음을 더 모서리로 몰아넣고 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을 벌어서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은데 내 자유는 항상 어딘가 빠져있다. 마음과 정신이 편하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일이 힘들고...마음이 불편하고 도망가버리고 싶어 진다.
이렇게 힘들 때 브런치를 써야지. 내 우울과 불안을 글로 승화해야겠다.남자친구, 가족을 포함하여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채 처리되지 않은 내 감정을 쏟아내어 그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말아야지.그들마저 내 우울과 불안으로 물들게 하지 말아야지.목표가 너무 높으니 현재의 내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때까지는 얼마를 벌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이 정도는 만들어놔야 하는데' 하는 기대와 걱정이 쌓여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결국엔 무기력해져서 현재의 내가 아무것도 안 하게 되어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마음을 편하게 먹는 일이지 싶다.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 같다가도 새로운 길이 열리는 내 워홀 생활
그래도 희망이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작년 말부터 시작한 블로그에 재미를 붙여서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방문자수나 이웃의 수가 꽤 많이쌓여서 조만간 애드포스트 신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돈은 아니겠지만 이것도 좋은 시작이자 성과이니 감사히 여기며 더 정진하려고 한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보려고 한다.이렇게 기약 없는 구직생활을 계속하면서 마음고생, 시간 낭비를 하느니막막하고 어렵더라도 제대로 된 하나를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덜 보는 장사라는 판단이 섰다.
선택과 집중.시간이 많지 않은 나에게 지금 가장 잘 적용되는 말이다.
다른 목표를 가지고 온 호주지만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목표를 수정하는 것, 그래서 늘 원했던 디지털노마드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것.
내가 생각했던 그런 워홀은 아니지만 감사히 여기며,마음을 편히 먹고 장기투자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준비해 봐야겠다는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