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쥐꼬리 Mar 22. 2024

호주 워킹홀리데이 4개월 차,  아직도 백수입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워홀 생활과 그 속에서의 새로운 발견



새벽 5시 30분에 기상.

남자친구 요한이와 함께 아침 준비해서 먹고, 필요하면 샌드위치를 점심 도시락으로 싸준다.

요한이가 출근하고 나면 6시 15분.

이때부터 저녁 5시까지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블로그도 쓰며, 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다.

호주에서 보내는 요즘 내 생활이다.


누군가가 본다면 여유롭게 지낸다며 부러워할 수도 있는 생활. 하지만 그 여유 속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 불안하고 초조한 상태다.


왜냐하면 나는, 4개월 차 백수 워홀러이기 때문이다.



집에만 있어서 너무 답답할 때 자주 찾는 집앞 공원.



같이 사는 요한이를 포함하여 가족, 친구들까지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 않지만, 평일에 집 아니면 아무 데도 갈 곳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스스로가 한심하고 처량하게 느껴진다. 

이러면 한국에서 백수생활했던 거랑 뭐가 다른가 싶다. 특히 평일 아침에 한산한 마트에서 장 볼 때나 할 일 없이 집에 있는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보여줬을 때는 보이기 싫은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마음이 내내 불편하다.


이런 마음이 신체적으로도 나타나는 건지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불안도도 상당히 높은지 누가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밤에는 집에 혼자 있지도 못하겠다. 마음도 몸도 불편하고 힘드니 무기력해진다. 구직을 할 기운도, 용기도, 의욕도 다 떨어지고 있다.

지원하면 뭐 해, 자기소개서 열심히 작성해서 넣어보면 뭐 해, 어차피 연락도 안 올걸 뭐 하러 해.






사실 호주에 와서 일을 하나도 안 한건 아니다.  

한인 키친핸드 잡을 3주 동안 하긴 했었다.

키친핸드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알겠지만 주방 안에서 물 맞아가며 정신없이 그릇을 닦아야 하는 일이다. 시급은 꽤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체력적으로 상당히 부담이 많이 가는 일이었고,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건 내 예상을 훨씬 벗어난 일이라 미래를 생각해 봤을 때 좋은 경력은 아니었다.



여기는 사장은 호주인이고 헤드셰프는 한국인인 커피도 팔고 브런치도 파는 카페 겸 레스토랑이었는데, 바깥에서 손님 응대하는 건 다 호주 친구들이고 주방에서 불, 물 맞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은 다 아시안인 요상한 근무 환경이었다.

그 아시안들도 대부분 한국인이어서 영어를 쓰는 일은 거의 없어서 영어를 안 쓰는 환경도 내 호주워홀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아니라서 결국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기서 3주 일하고 얻은 건 조금만 무리해도 시큰해지는 손목과 손바닥 흉터, 그리고 그만둔 지 한 달이 지나도 받지 못한 일주일치 급여다.



밥과 커피는 잘 줬던 애증의 직장. 돈이나 빨리 달라고요.



생활비가 부족해서 당장 마음이 급한 건 아니지만

이 급여를 아직도 못 받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라서 이미 예민해진 마음을 더 모서리로 몰아넣고 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은데 돈을 벌어서 완전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싶은데 내 자유는 항상 어딘가 빠져있다. 마음과 정신이 편하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일이 힘들고... 마음이 불편하고 도망가버리고 싶어 진다.


이렇게 힘들 때 브런치를 써야지. 내 우울과 불안을 글로 승화해야겠다. 남자친구, 가족을 포함하여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채 처리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어 그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지 말아야지. 그들마저 내 우울과 불안으로 물들게 하지 말아야지. 목표가 너무 높으니 현재의 내가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이때까지는 얼마를 벌어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이 정도는 만들어놔야 하는데' 하는 기대와 걱정이 쌓여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결국엔 무기력해져서 현재의 내가 아무것도 안 하게 되어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마음을 편하게 먹는 일이지 싶다.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 같다가도 새로운 길이 열리는 내 워홀 생활



그래도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작년 말부터 시작한 블로그에 재미를 붙여서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방문자수나 이웃의 수가 꽤 많이 쌓여서 조만간 애드포스트 신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돈은 아니겠지만 이것도 좋은 시작이자 성과이니 감사히 여기며 더 정진하려고 한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보려고 한다. 이렇게 기약 없는 구직생활을 계속하면서 마음고생, 시간 낭비를 하느니 막막하고 어렵더라도 제대로 된 하나를 시작하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덜 보는 장사라는 판단이 섰다.

선택과 집중. 시간이 많지 않은 나에게 지금 가장 잘 적용되는 말이다.


다른 목표를 가지고 온 호주지만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목표를 수정하는 것, 그래서 늘 원했던 디지털 노마드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것.

내가 생각했던 그런 워홀은 아니지만 감사히 여기며, 마음을 편히 먹고 장기투자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준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호주에서 쉐어 구하는 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