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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쥐꼬리 Apr 26. 2024

나는 어쩌다 한 달 만난 그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갔는가

다사다난했던 국제연애의 시작



그동안 내가 올린 브런치 포스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와 내 남자친구 요한이는 국제커플이다. 요한이는 오스트리아인, 나는 한국인. 그런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우리의 첫 만남 얘기는 나름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많은 감탄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국제커플인 우리의 첫 만남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우리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바야흐로 작년 2월, 나는 공무원 의원면직을

하게 되면서 1년 2개월간의 힘든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누가 보면 겨우 1년 남짓한 공직생활에 뭐가 힘드냐며 콧방귀를 뀔 수도 있겠고,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면서 귀한 자리를 왜 그렇게 빨리 그만뒀냐며 힐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적은 보수에 비해 과도한 책임, 시장통처럼 무분별한 업무 분장, 직장 내에서의 은근한 괴롭힘과 멸시는 점점 더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매일 업무 걱정에 시달리는 삶은 내가 바라던 것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30년 뒤의 내 모습이 나와 사무실에 하루종일 앉아 있는 무기력하고 책임 회피만 하는 상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의원면직 결정을 내렸고, 2023년 2월, 드디어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가족 외에는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자연인(?) 신분을 회복하여 신난 나는 가장 먼저 일본 도쿄행 항공권을 끊었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걱정과 일상 속에서 아무 걱정 없이 좋아하는 여행지를 여행하는 것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도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미다강

사실 도쿄 이후에도 예정된 다른 나라, 도시 여행 일정이 있었기에 숙박비가 비싼 나라, 일본에서 호화롭게 호텔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은 비교적 저렴한 호스텔에 묵는 것이었는데,

기숙사처럼 한 방에 여러 개의 2층 침대가 있었고 그중 침대 하나만을 내가 사용할 수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나름 작은 사물함도 안에 있고 무엇보다 낯선 여행지에서 맘 놓고 쉴 수 있는 온전한 내 공간이라는 생각에 이 공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고, 애정이 갔다.


그렇게 며칠 동안 혼자 고즈넉이 가보고 싶었던 곳에 가고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으며 알차게 '혼행(혼자 여행)'을 즐기고 있을 무렵, 생각보다 빨리 위기에 닥치고 말았다.


바로 '외로움'이란 녀석이 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고 만 것이다. 자취나 자립은 아직 어려워도

혼자 하는 여행만큼은 자신 있던 나인데 여행지에서만큼은 외향적이라서 그런지 차가운 도시와 냉정한 사람들에게 적응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 호스텔 안에 투숙객을 위해 마련된 카페 겸 바 공간이 있는 걸 알게 됐는데,

그 이후로는 공부도 할 겸 외국인 친구도 사귈 겸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바 공간에서 공부하면서 자주 마셨던 생맥주

그렇게 그곳에서 일하던 일본인 스태프들과도 친해지고 장기 투숙객들과도 오며 가며 자주 마주치다 보니 서로 통성명도 하고 자체적으로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친해졌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것도 즐거웠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삶, 모토 이야기를 듣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고 영양가 있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이 굉장히 새롭고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전에 짧은 관광을 마친 나는  바 공간에서 책을 읽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말을 시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더니, 머리칼은 물론, 눈썹과 속눈썹까지, 얼굴의 모든 털이 금발에 파란 눈의 남성이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맥주 맛있냐고 물어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그는 자기 이름을 '요하네스'라고 소개하며 자연스레 내 옆자리에 앉았고,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다른 투숙객들과 함께 어울리며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늦은 밤까지, 혹은 밤을 새우면서까지 술 마시며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재미있고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내 여행의 다음 일정을 과감하게 모두 취소해 버리고 도쿄에 계속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와 이렇게 계속 지내면서 그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고 나와 잘 맞으면서, 앞으로의 계획(호주 워킹홀리데이)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그가 곧 오스트리아로 돌아가야 했던 것인데, 왜냐하면 일본에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온 그의 비자가 곧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함께 오스트리아로 날아갈 결심까지 하며 그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고 내심 나를 좋아했던 그는 내 고백을 받아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 아사쿠사의 한 호스텔

그렇게 모두의 신기함과 의아함을 한 몸에 받으며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고 당장 3일 뒤면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그는 나와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 일정을 미뤘고, 나는 그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그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편도 항공편을 예약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2주간 일본 여행을 더 즐기다가 그가 먼저 오스트리아로 날아갔고, 정확히 하루 뒤,

나도 그를 따라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나는 만난 지 한 달 된 외국인 남자친구를 따라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우리의 시작은 이러했다. 누가 보면 남미새도 이런 남미새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아무 남자를 따라가는 남미새가 아니라 요한이한테 미친 새*, '요미새'였다.


지금, 스스로 생각해 봐도 작년의 나는 정말 기절할 정도로 무모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행동 덕분에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곁에 있는 사랑스러운 그를 보면, 나의 무모함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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