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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Jul 09. 2023

가내수공업

조화로운 생산방식



레버를 내려 뜨겁게 달궈진 일자형 쇠막대를 비닐에 찍어 밀봉시키는 것이 녹색 컨베이어 벨트 위의 마지막 절차였고 어렸을 적 손을 들고 서있는 게 제일 지루하고 힘들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는 일이었다.


일머리가 좋아 어떻게든 손을 덜 들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컨베이어벨트의 속도를 계산하며 밀려들어오는 포장지들이 내가 표시해 둔 빨간색 선을 지나가면 4초 뒤 내가 레버를 내리는 행동을 해야 했고 나는 그 4초간 잠시 멍하니 팔을 나무늘보처럼 축 늘어놓은 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뛰어든 경우라 내가 맡은 일에 책임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딱히 열심히 해서 어떤 자리, 예를 들어 책임자 또는 관리자 등의 진급을 생각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조금 더 효율적이고 내가 편한 방식으로 하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내 라인을 맡고 있는 관리자가 내 일머리를 좋게 봐주는 바람에 급여가 올라 그만두기에는 아쉬운 액수의 금액이 통장에 찍히는 상황이다.


그래도 뭔가를 만들어내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에 약간의 기쁨을 서서히 느껴가는 중이지만 레버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내리는 것은 나에게 4초라는 시간을 생산해 주었고 그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며 남아있는 건 굳게 잠긴 포장지 무더기뿐이었다.


공장에 들어와 생산직으로 포장지라도 찍기 전까지의 생활은 생산성이라고는 전혀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무던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대충 만든 밥을 먹거나 친구를 만나 술을 먹거나 가끔 슬프고 행복해 때로는 망상을 하며 이것저것 시도하는 상상을 하고는 핸드폰으로 내일 할 일들을 찾아 타임테이블을 세세히 머릿속에 그리다 새벽이 넘은 시간에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잠에 들어 점심즈음에 일어나고는 '그래도 생각이라도 했으니 다음에 하면 되겠다.'라고 합리화하곤 다시 침대에 누워버리는 비생산적인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은 멈추지 않았는데, 나는 이것을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갈증을 해소해 줄 만한 생산적인 하루는 어떤 것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많은 돈을 번다거나 대단한 지식을 깨우친다거나 혹은 인간관계로서 정말 좋은 성과가 일어났다거나 등의 다양한 것들을 생각해 보았는데 어느 정도 조화로운 부분의 생산이 보이기로도 느껴지기로도 가성비가 좋은 생산이라고 결론 내렸다.


내적으로 생산하는 계획, 꿈, 마음 등의 추상적인 것들과 외적으로 생산하는 물질, 화폐, 글 조금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생산과 보이는 생산이 어느 정도 스토리텔링이 되어 이어져야 그 물질은 빛이 나는 듯했다.


외적 생산 물질의 성질은 요즘 여러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딩이라는 부분도 이와 비슷한 결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덴티티가 없어 속이 비어있으며 직관적이고 덩그러니 놓여 어디론가 방향성 없이 놓인 철판 위의 정사각형 모형 정도의 외적 생산물들은 접하기 쉽고 가벼우며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나 혼자 생각하고 계획하며 머릿속에는 수십 가지의 방안과 수단이 있지만 외적으로 보이는 건 없기에 조화로움이 필요한 것 같다.


보여주기 위해 행동하는 건 허울뿐이라 보이지 않는 생산이 보이는 생산이 되도록 또는 보이는 생산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것을 내 안에 들여 정사각형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의 조각상이 되도록 다듬어 두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사람의 유형은 각기 달라 결이 나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내적 생산을 많이 하는 편이다.


흘러가는 녹색 컨베이어 벨트를 보며 골프장에 무빙워크를 설치한다면 무빙워크에 잔디가 있어 컨베이어벨트랑 비슷하지 않을까라던가 머릿속에 분필을 하나 만들어 칠판 같은 벨트에 규격에 맞는 라인을 그어 불량을 빨리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궤변과 상상을 많이 하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항상 마음만 먹고는 실천을 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내성적이라 표현을 못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어 새로운 인간관계를 생산한다던지 또는 발전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두 가지 생산분야에서 오랫동안 고착화되어 서로 내, 외적의 생산이 어려워 난항을 겪는 일이 허다했고 나 또한 그랬다.


내적인 사람은 별모양을 그려놓고 만들 줄 모르고 외적인 사람은 정사각형을 만드는데 급급해 별모양을 그려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을 만들기 마련인데 그 별모양은 오븐을 사면 사은품으로 지급되는 보편형 별모양 쿠키틀 정도의 퀄리티라 정작 내가 그리고 싶었던 별은 아닌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는 하루종일 레버를 내리는 힘든 과정을 통해 외적인 생산을 했고 나를 위해 외적인 생산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모르게 내적인 생산을 하는 경험을 살짝이나마 맛본 케이스다. 이 경우에도 자신의 지식에 취해 또는 4초의 시간에 만족해 버리는 정도라면 그 앞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알아서 밀려들어오는 생산물에 마무리만 짓는 행위보다는 내가 설정한 의도하에 밀려들어오게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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