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광에 비친 당신의 습관을 찍어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문장 속에 있는 반복된 단어들을 한 조각남은 건조한 식빵처럼 오밀조밀 뜯어 듣는 건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일정한 언어의 반복을 인지하지 못하고 습관이 생긴 누군가의 주사 같은 도돌이표 앞의 검은 온점들은 메들리처럼 반복되었고 나 또한 그들의 습관에 취하게 되었다.
내게 습관이 있다면 또한 그것을 인위적으로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면 그건 아마도 오래된 짙은 갈색의 나무를 깎아 금장으로 장식한 상자 안에 부드럽고 빨간 벨벳의 내포장위 덩그러니 놓인 신선하고 따뜻한 알일 것이다.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작게는 문장의 완성이나 크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미쳐버릴 것만 같을 때에 되뇌는 주문정도가 되겠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이 요동치기에 그렇다.
습관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자주 하던 행동이나 관철하는 가치, 등뒤로 숨긴 손에 쥐고 있는 애착배게의 닳고 해진 모서리처럼 습관이란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나만의 레시피 같은 것이다.
정확히는 소금이나 후추 등 각종 향신료같이 간과 향을 맞춰주는 재료들의 선호도라고 해도 무방하다. 각자의 입맛에 맞는 향과 간이 다르고 짠기와 달콤함의 역치가 다르기 때문에 습관은 본인의 간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는 즐겨 쓰는 향이 있고 다만 그것이 대다수에게 악취가 나거나 혐오스러운 평판을 받는다면 적당한 선에서 쓰레기통에 박아두는 편이 좋다. 나 또한 쓰레기통이 가득 차있다.
그러기에 누군가의 익숙함을 잠시나마 맛보게 되는 게 좋다. 그게 나에게 맞지 않아 쓰거나 떫다면 식기를 내려놓으면 되기에 적당히 즐길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예외는 존재한다. 억지로나마 잠시동안만이라도 견뎌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열매를 수확하는 체험을 하러 갔는데 하필 은행나무가 탐스럽게 열리는 가을이라 냄새나는 은행을 머리 위에 떨어질 걸 알면서도 털어야 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처럼 굽이쳐 밀려들어오는 파도 같은 서사보다는 밀물에 젖어들수록 짙어지는 백사장의 모래바닥 또는 건조하게 빛나는 거친 모래알갱이보다 밋밋하고 부드러운 모래덩이가 되고자 한다.
습관은 강한 역광처럼 누군가의 실루엣을 빛으로 포장해 담아둔 검은색 이모티콘 혹은 흑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