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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wn Nov 04. 2023

데미안 그 후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한 개의 세계를 부숴야 한다."


지겹게도 단단한 껍질을 그에 준하는 강도의 두들김으로 부쉈다. 나는 대체적으로 편협하여 자존감이라는 화려하고 반질거리는 날개에 비루하고 얄팍한 품을 가진 나비 같은 존재였으며 예상했던 황금빛 갈기를 가진 사자나 용맹하고 사려 깊은 미어캣이 아니라는 것에 실망했다.


그럼에도 반짝이는 무언가에 비춰 나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자유롭게 비행했다.


그러나 껍질을 깨버린 후, 나의 날개는 펄럭이며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지만 결코 날개를 꺾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일 멋지고 아름다운 날갯짓을 상상하며 여러 곳과 여러 날을 버텨갔지만 결국 나는 한계에 도달했고, 등 뒤에서 팔랑이는 날개의 바람 소리보다 그저 내가 날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노랫소리가 절실해졌다.


그렇게 나는 껍질 안의 포근한 안정감을 필요해했고 어딘가의 벽에 부딪혀 머리를 비벼대곤 했다. 그것이 단단하고 높다란 성문이건 거친 표면의 흙벽이건 간에 나의 비행에는 안주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껍질 안에 있다는 착각이 들 때까지 날개가 찢기건 이마가 벌겋게 달아오르건 간에 나는 온몸을 벽에 비벼 또 다른 세계에 안주했다.


"내가 안주하는 껍질은 내 양분을 빨아먹으며 굳은살처럼 배겨 단단해진다. 껍질은 곧 세계이다. 세계는 나로 인해 파생된 차게 굳어버린 가치관이나 아집 따위이며 눈내리는 날의 솜사탕 혹은 소시지 위에 감긴 크루아상 같은 것이다."


다음의 세계를 부숴야 할 때 나는 담쟁이덩굴이 되기를 소원했다. 나는 여전히 연약하고 의존적이기 때문에 또다시 벽을 찾아 헤맬 것이고 또다시 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벽을 휘감아 품에 안고서도 다음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벽은 그리 높지 않았고 벽 너머의 세상까지 나의 줄기찬 생각은 뻗어나갈 것이기에 벽을 부수지 않고서도 언젠가는 도달해 다른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깨어야 할 방주 또는 안주의 세계는 파도가 굽이치고 바람이 빗발친다. 그러나 무한하지 않은 그것들은 언제나처럼 벽에 부딪힌다.


내가 품은 벽은 비바람과 게거품을 문 파도를 같이 견뎌주었고, 나의 의지로 버려져 부식되기 전까지 혹은 휘감아 올라 벽 너머의 잔잔한 호숫가로 넘어가기 전까지 그대로 있었다.


안주할 곳은 껍질 안과 밖이 아닌 내가 비빌 벽이었고 벽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뿌리내려 타고 올라갈 벽을 찾는 것은 나의 의지였다.


약간의 기대감과, 적당한 크기의 의심과, 꽤나 많은 품을 가지곤 비벼 넘기에 알맞은 벽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의 끝, 안주의 옷소매에 달린 마지막 단추를 풀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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