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own Dec 16. 2023

시간여행자의 일기

비어있는 공간으로의 여행



누군가의 가벼운 질문이 괜스레 머릿속에 박혔다. 그 후의 기억은 추억으로 뒤바뀌어 현재도 미래도 살지 못하게 된 뒤집힌 시간이었고 장난이었을지 철학이었을지 모르는 질문은 여전히도 과거를 헤집어 마침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과거의 결괏값은 지금 현재이며 미래를 도출해야 하는 기본값 또한 현재이다. 그러므로 돌아가 과거의 숫자를 뒤집는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꽤나 흥미로웠다.


단순히 연산하자면 식이 성립이 되지 않기에 현재가 없어지거나 혹은 내가 아니게 되는 결과가 나오게 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가 강한 나는 어떻게든 나를 지키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고는 했다.


'내가 숫자인 것은 동일하기에 그게 분수이든 허수이 든 간에 수식사이에 끼어 적혀있다면 나일 것이니 과거의 잘못이나 후회 따위를 뒤집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미래를 원하지 않아 기본값으로서의 부호의 기능을 상실하고 음표로서 도돌이표가 되고자 한다면 과거에 수식을 바꾸어도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나 걱정들은 덜하지 않을까'


아마 궤변이라기보다는 과거로 여행하는 티켓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쉽게 얻을 수 없는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머릿속에 있는 단어와 문장들을 조합하고 저 깊은 곳에 있던 누군가의 문장까지 암표처럼 비밀스레 꺼내 겨우 과거로 돌아가는 티켓을 얻어내는 작업이 이번에 늘어놓은 궤변에 대한 그럴싸한 서사이자 금색 반짝이풀정도의 꾸밈 즉 바잉포인트였다.


어렵사리 티켓을 손에 쥐고난 후 볼펜을 들어 갈고리처럼 뇌리에 박힌 누군가의 물음표 위에 다섯 개의 선을 그어 물음의 의미를 지워버리곤 오선지 위에 굵은 매직으로 도돌이표를 그렸다. 그다음은 회상을 망상하려 눈을 감고 이미 한참을 만지작거려 부드러워진 티켓을 찢었다.


-


먼지 쌓여 곱게 말려있던 과거의 필름들은 어두운 공간 앞에 넓게 펼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며 차례대로 현상되었고 내 왼손엔 사건들의 내용들이 적힌 체크리스트와 오른손엔 채점을 위한 색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과거의 가장 큰 후회를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중 누락된 것을 찾는 것 혹은 누군가는 있지만 내가 없는 것을 찾는 행위이기에 십자말풀이처럼 물음에 물음을 타고 넘어가지 않아도 단순하게 내가 무엇이 누락되어 있는지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틀린 그림 찾기 같은 체크리스트에 빨간색연필로 누락되거나 잘못된 곳에 V자를 그어대고 나니 차라리 커다란 빨간색날의 핑킹가위로 자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중에도 가장 높이 솟은 빨간 울타리의 항목은 '관계'였다.


-


그렇게 장면들은 열심히도 넘어가고 지워졌고 내가 남긴 도돌이표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한 두세 번 정도 영상을 반복하며 보아도 여전히 돌아가 정정하거나 있고 싶은 곳은 없는 듯했다. 정확히는 그것마저 지금의 나는 용서했거나 잊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단순히 관계의 처음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넘겨가는 장면을 보고 있는 지금의 나도 그렇지만 저때의 나는 더 많은 것을 좋아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가까이에 잔뜩 두어 눈을 어디에 두어도 웃음이 지어지곤 했다. 지금처럼.


그래서 그렇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금 내 울타리에 가까이 들어온 것을 애써 보지 않으려 원시가 생긴 걸지도, 눈에 익으면 그것이 마음에 담길까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차게 흔들어대는 난시가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는 달리 외향적이라 많은 무리들의 인연들을 빠지지 않고 챙기고 도왔으며 그것이 금전적으로든 혹은 시간적으로든 또는 무엇이 가로막는다고 해도 딱히 상관없었다. 나는 그것들을 무시할 정도로 강인한 사람이었고 그건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주위에 무언가가 많아짐에 따라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자면 어느 정도 가려서 사람들을 사귄다던가, 정을 많이 두지 않는 편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숱한 배신과 실망에 얻은 건 위의 내용이었다.


'과거부터 거리감을 두고 어느 정도의 계산을 하며 재면서 인연들을 꾸려나갔더라면 지금의 인간관계보다는 훨씬 더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만남에는 당연하게도 헤어짐이 있었으나 그것이 지금 나를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남들처럼 이야기하는 안줏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이기도 하고 여전히도 정이 많은 처지라 나에게 해를 끼치고 헤어진 모두에게도 행복과 찬사를 보낸 후에 깔끔히 잊어버리는 편이라 더 감정에 미동이 없기도 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십 개 아니 수가지의 시퀀스가 지나가는 것에 지끈거리는 것이 아닌 무언가가 누락되어 텅 비어있음을 느꼈다. 사건과 사건사이 누군가가 강제로 뜯어버린 공간에 어둡고 공허한 정적이 담겨 생각이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영상이 반복될수록 반복되는 고통에 시선이 무뎌지고 눈이 감겼다. 비어버린 공간에는 찬 바람이 불어 건조하게 메말라 갔다. 시린 눈에는 눈물이 흘렀고 돌아가는 영상은 무심하게도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장면을 선택할 수 없었다. 다만 바람이 부는 비어있는 공간을 메워 지금 느끼는 고통을 지우는 것에 급급했고 나는 비어있는 공간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안에 꼭 쥔 티켓은 주위에 가득 매워진 어둠에 먹혀 검게 물들어 잿더미로 바뀌었고 잿더미엔 약간의 불씨가 남아있었다.


미약하게 뜨거운 잿더미를 눈가에 비볐다. 온통 어두워진 세상에 느껴지는 온기를 찾아 헤매었다. 그림자마저 회색인 세상 그 너머에서 눈을 뜬 건 내가 가장 어두워진 때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데미안 그 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