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할 때가 자주 있다. 그런데 자꾸만 남들은 이 감정조차 사치라고 한다.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주위 사람들은 내가 많은 것을 이루었고,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많은 걸 얻었다. 안정적인 직업을 비롯해 하고자 했던 일들을 실패 없이 이루어 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롯이 그만큼 행복할 수만은 없다. 나보다 백만 배 더 가진, 이룬 사람조차도 불행할 이유가 존재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덜 가진 사람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왜 그런 걸까. 그리고 나는 또 ‘왜 만족하면서 살지 못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만족하면서 사는 삶은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인 듯하다. 더불어 나의 결핍과 낮은 자존감이 만족을 모르게 만드는 것 같다.
나도 만족하고 감사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싶다. 구멍 난 그릇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이 아닌,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고 살면 그것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뒤처지는 것이라 생각이 늘 발목을 붙들었다. 그러니 마음에 여유가 없고 항상 누군가가 뒤에서 쫒아오는 것처럼 불안감에 휩싸여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 나이에 대학교를 휴학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들었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삶을 헤쳐나가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막연한 미래가 두려웠다. 빛 한줄기 없는 깜깜한 산속을 홀로 오르는 심정이었다. 뭐든 해야 했고 눈앞에 닥친 경쟁에서는 살아남아야 했다. 불확실한 나의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오르막길을 자전거 페달 밟듯이 하루하루를 살았다. 페달을 멈추는 순간 미끄러져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한 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면서 숱한 날 이런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다. ‘삶이란 이런 것인가? 하루하루가 힘들고 고단한 삶을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걸까?’ ‘삶의 의미는 뭐지?’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행복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그렇게 삶을 비관하고 자기만족을 모르며 지내던 중 우연히 한 시사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젊은 구직자들은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취업이 힘들어서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50대, 60대 중년들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직장에서 조기 퇴직을 하게 되어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는 심정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모아 얘기했다. 그들의 자녀들이 아직 초·중·고생들인 중년들도 꽤 많았는데 여전히 열심히 일해야 하는 시기에 실직을 당해서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얘기를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입장을 바꿔보니 나 역시 지금 이 직장을 잃으면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앞길이 막막할 텐데 지금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너무 모르고 나보다 나은, 더 잘나가는 사람들만 쳐다보며 불행을 자처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어머니는 칠순이 넘으셨다. 그리고 13년째 건물 청소일을 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청소일을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늘 말씀 하신다. 여전히 체력이 받쳐 주니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 나이에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나는 그 나이에도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가 늘 안타까운 심정이었는데 정작 어머니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TV 속에서 만난 구직자들이나 나의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행복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높은 지위를 얻고 대단한 명성을 얻으며 큰 부를 축적하면 과연 행복해질까? 그렇게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온 것도 사실이다. 1등을 하면 행복하고, 그러지 못한다면 불행해질 거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인정을 받아야만 행복하고, 그러지 못한다면 난 평생 불행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조금 다르게 생각해본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나의 미래에 대한 꿈을 꾸며 그 꿈을 이뤄가기 위한 과정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어떤 제약도 없이 내가 원하는 꿈을 누구 방해도 없이 꿈꿀 수 있으니까. 나도 이제 불안함, 초조함 없이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며 살고 싶다. 사람마다 각자의 결승선이 다르니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결승선까지만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해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어쩌면 행복은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다. 다만 그것을 볼 마음의 눈이 떠 있어야 그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 행복을 보는 눈이 감겨 있으면 그 눈을 뜨기 전까지는 행복을 볼 수 없다. 나는 이제 용기 내어 눈을 떠보려 한다. 그동안 외면하고 보지 않았던 행복의 진짜 모습과 마주해보려 한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이 순간 신선한 공기와 사랑하는 가족과 건강한 몸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음에 만족한다. 나의 막막한 미래에 대한 진짜 대비는 바로 이 순간을 기억하며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