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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는 고강도 극기훈련

by 이신우

오랜만에 체중을 쟀다. 체중계에 표시된 숫자를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다. 처음엔 체중계가 고장이 났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바닥 수평이 맞지 않아서 정확한 측정이 안되었을 거라 생각하고 몇 번이고 체중계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체중을 쟀다. 결과는 똑같았다. 그럴 리 없다며 다른 장소에 있는 체중계를 찾아 다시 재 보았다. 결과는 똑같았다. 체중이 엄청 증가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 체중 보다 약 6~8kg 이 정도가 많이 나가는 것이다. 고등학교 이후 최고치 몸무게를 찍었다. 충격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마른 적이 없었다. 통통과 뚱뚱의 경계에 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체육학과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도 많이 했지만 먹기도 또래 친구들 보다 두 배는 더 먹은 기억이 난다. 키는 160cm가 좀 안되는데 몸무게가 58kg이 나갔으니 결코 날씬한 몸매는 아니었다.


1999년은 IMF가 터진 다음 해라 우리 집도 마찬가지 사실 부모님이 나를 대학에 보낼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대학교 입학급과 등록금을 친지들에게 빌려서 내주셨다. 무거운 마음에 대학교 1학년 생활을 시작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경주마 기수 시험을 준비했다. 경주마 기수 시험은 대학 입학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합격을 하면 학교를 휴학하고 기수 생활을 하면서 직접 돈을 벌어 학업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체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고 특별한 결격사유는 없었지만 경주마 기수에게 가장 중요한 체중만이 맘에 걸렸다. 신체검사가 4월이었는데 3월부터 필사적으로 체중 감량에 돌입했다. 합격 기준은 48kg 이하. 약 한 달 만에 10kg을 빼야 하는 상황이었다. 48kg은 중학교 1학년 때 몸무게였는데 어쨌건 신체검사 통과를 위해서는 10kg을 감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살.. 지금 생각하니 참 무모하게도 체중 감량을 한 것 같다. 하루 한 끼 그것도 과일 몇 조각 먹고 땀복입고 유산소 운동을 몇 시간씩 했다. 신체검사 이틀을 앞두고는 물도 한 방울 먹지 않았다. 거의 한 달 만에 48kg을 맞췄다. 더 확실해야 된다는 생각에 신체검사가 있는 당일에는 몇 그램이라도 빼보겠다고 새벽에 사우나에 가서 몸에서 나올 수 있는 땀은 다 뽑았다. 수분 섭취가 없어서 땀도 많이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땀이 나오기는커녕 피부만 말라버리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서 그만하고 시험장에 갔다. 신체검사는 가까스로 통과를 했다. 체력 테스트는 체육과 학생답게 당당히 남녀 통틀어서 상위권 성적으로 합격을 했다. 신체검사와 체력 테스트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동안 먹지 못하고 고생한 보상으로 목구멍까지 차도록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거울 속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었고 체중계는 53KG.


신체검사, 체력테스트, 말 기승 테스트, 최종 면접까지 치르고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경마는 능력 있는 말과 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말에게 기수 몸무게를 포함하여 말 등에 짊어지는 부담 중량 조절로 능력 편차를 좁힌다. 부담중량이라 함은 기수 몸무게와 기수가 입고 있는 유니폼, 말안장, 안장 패드 복대 등 경주마가 경주에 뛰기 위해 필요한 장구 무게까지 전부 포함한 것을 의미한다. 선수 시절에는 체력관리보다는 체중 관리가 더 우선시 되었다. 왜냐하면 체력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내가 기승하는 경주마의 부담중량을 맞추지 못하면 기승 자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담중량이 높은 말은 웨이트 패드를 추가해서 부담중량을 맞출 수 있지만 부담중량이 낮은 말은 내 몸무게를 빼지 않는 한 기승 기회를 얻을 수 없다. 당시 부담중량 기준은 최저 중량 48KG이었다. 48KG 부담중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내 몸무게만 46KG을 맞춰야 했다. 몸무게를 맞추지 못하면 기승기회를 잃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맞춰야 했다. 월, 화 쉬는 날에는 그나마 먹기는 했지만 체중 감량에 대한 공포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는 못했다. 수요일부터는 한 끼(?) 아니 반 끼라는 표현이 오히려 적절하겠다. 그렇게 먹고 땀복을 입고 유산소운동을 한 후 사우나에서 땀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있다가 쓰러져 자는 게 일상이었다. 웬만한 기수들은 하루에 마음먹고 빼면 3KG 정도는 뺄 수 있는 기본적인 노하우가 나름 하나쯤은 있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감독이 되었을 때 가장 좋은 것은 체중에 대한 스트레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그때 그 시절 어떻게 그렇게 무식하게 체중 감량을 했는지 내가 그런 시간을 보내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었다. 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늘 체중에 대한 강박은 있었다. 수년간 어렵게 관리해온 마른 몸을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초창기 1년쯤은 선수 생활 체중을 어느 정도 유지를 잘했다. 그러다 서서히 나태해지더니 조금씩 조금씩 체중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1KG, 2KG 정도 체중이 늘어났을 때는 과거 선수 시절 경험에 대한 자만이 있었는지 이쯤이야 하루 이틀이면 뺄 수 있다 생각하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 생각이 틀렸다. 최근 확인한 몸무게에 충격을 받고 다이어트를 시작해 봤는데 운동도 예전만큼 할 수 없었고 절박하지 않으니 음식 앞에서 유혹에도 쉽게 넘어갔다. 한두 시간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것은 일도 아니었는데 지금은 2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목표 체중은 50KG인데 500G 빼기가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그동안 다이어트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선수 시절 다이어트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절박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어쩌면 초인이나 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다이어트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동안 자만하고 몸 관리에 나태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뼈저리게 했다. 다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이어트를 시작해 볼 계획이다.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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