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우 Feb 10. 2024

지상 최고의 맛집 요리

엄마의 밥상

엄마를 만났다.

지방에서 살고 계시는 엄마는 설 명절을 맞아 오빠가 살고 있는 의왕으로 오셨다. 과천에 살고 있는 나는 명절에 멀리 창원까지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는다. 대신 부모님이 설 명절엔 나와 가까이 사는 친오빠 집으로 오셔서 명절을 보내고 가신다. 오빠는 부모님이 오시 면 언제나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간다. 사실 나는 부모님과 사이가 오빠 만큼 가깝지는 않다. 그건 아마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닐까.. 혼자만의 이유를 굳이 만들어보면 그렇다.

오빠는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까지 부모님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으니 특히 엄마와 오빠사이는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부럽다거나 질투가 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살갑게 엄마를 대하는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다.


1년에 거의 한 번 엄마를 만난다. 이번 같은 명절에. 그 의미는 엄마가 만든 음식을 1년에 한 번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 같이 학교급식을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몇몇 기숙사가 있는 특수학교를 제외하면 대부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던 시설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루에 세 개씩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를 다니던 기억이 있다. 고3 즈음에는 내가 워낙 먹성이 좋기도 했지만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해서 엄마는 넉넉하게 도시락을 준비해 주셨다. 등교 전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좋아하는 돌솥비빔밥과 소고기뭇국을 준비해 주셨다. 일반 비빔밥도 아닌 누룽지가 바닥에 눌어붙어서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먹을 수 있는 돌솥비빔밥을 꼭 해주셨다. 그날그날 신선한 생선구이도 빠짐없이 상에 올라왔다.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내 도시락 뚜껑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엄마는 365일 보온도시락에 도시락을 싸주셨다. 밥은 늘 그날그날 지어진 잡곡밥이었고 언제나 따뜻한 국과 고기반찬도 빠짐없이 챙겨주셨다. 따뜻하게 먹으라고 여름이든 겨울이든 보온도시락에 꼭 담아 보내셨다. 나의 책가방은 책 대신 도시락 세 개와 간식거리가 들어있었다. 책은 학교 개인 사물함에 있어서 책을 가득 싣고 등하교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일까? 아마도 공부에 별 취미가 없어서 책을 들고 다니지 않았던 게 아닐까.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대학교 진학은 목표했던 대로 했으니 부끄러울만한 기억은 살짝 미화시키는 걸로 하자.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맛있는 도시락을 먹는 재미가 그나마 학교가 싫지 않은 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맞다.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였다. 엄마는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늘 반찬도 넉넉하게 싸주셨다. 맛은 말해 뭐 해. 지상 최고의 맛이다.

오후 3시 즈음이었을까. 6시까지 오빠가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낮에 엄마와 오빠가 시장을 함께 보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6시 정도면 저녁준비가 다 되어서 내가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시 정각에 맞춰서 오빠네로 갔다. 식탁에는 하나씩 완성된 요리접시가 차려지기 시작했다. 그중 소고기수육이 군침을 돌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오빠가 한마디를 했다. 사실 본인은 돼지수육이 먹고 싶었는데 내가 소고기 수육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돼지고기를 포기하고 소고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소고기 수육 이외에도 소라 데침 요리도 있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비빔밥의 주재료인 각종 나물들 까지. 모두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유독 가족들에게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하다. 가족들로 인한 지난날의 힘듦이 이유일까. 식구들끼리 모이면 지난날의 얘기는 하지 않는다. 무언의 약속처럼.. 식구들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배려하는지 마음속으로만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해주신 밥이 세상 그 어떤 맛집의 요리보다 맛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오늘의 요리는 지상 최고의 맛집 요리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의 숨은 맛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